제90장(第九十章)
導河하사되 積石으로 至于龍門하며 南至于華陰하며 東至于底柱하며 又東至于孟津하며 東過洛汭하여 至于大伾하며 北過洚水하여 至于大陸하며 又北播爲九河하여 同爲逆河라 入于海하니라
積石, 龍門은 見雍州하니라 華陰은 華山之北也라 底柱는 見導山하니라 孟은 地名이요 津은 渡處也니 杜預云 在河內郡河陽縣南이라하니 今孟州河陽縣也라 武王師渡孟津者卽此니 今亦名富平津이라 洛汭는 洛水交流之內니 在今河南府鞏縣之東이라 洛之入河는 實在東南이로되 河則自西而東過之라 故로 曰東過洛汭라 大伾는 孔氏曰 山再成曰伾라 張揖은 以爲在成皐라하고 鄭玄은 以爲在修武武德이라 臣瓚은 以爲修武武德엔 無此山이요 成皐山은 又不再成이니 今通利軍黎陽縣臨河에 有山하니 蓋大伾也라하니라 按黎陽山은 在大河垂欲趨北之地라 故로 禹記之니 若成皐之山인댄 旣非從東折北之地요 又無險礙如龍門底柱之須疏鑿이며 西去洛汭 旣已大近하고 東距洚水大陸이 又爲絶遠하니 當以黎陽者로 爲是라 洚水는 地志에 在信都縣이라하니 今冀州信都縣枯洚渠也라 程氏曰 周時에 河徙砱礫이라가 至漢에 又改向頓丘하여 東南流하니 與禹河迹으로 大相背戾라 地志에 魏郡鄴縣에 有故大河하니 在東北하여 直達于海라하니 疑卽禹之故河라 孟康以爲王莽河는 非也라 古洚瀆은 自唐貝州로 經城北하여 入南宮하고 貫穿信都하니 大抵北向而入故河於信都之北하여 爲合北過洚水之文하니 當以信都者爲是라 大陸은 見冀州하고 九河는 見兗州하니라 逆河는 意以海水逆潮而得名이라 九河旣淪于海면 則逆河는 在其下流니 固不復有矣라 河上播而爲九라가 下同而爲一하니 其分播合同은 皆水勢之自然이니 禹特順而導之耳라 今按 漢西域傳의 張騫所窮河源에 云 河有兩源하니 一出蔥嶺하고 一出于闐하니 于闐은 在南山下라 其河北流하여 與蔥嶺河合하여 東注蒲昌海라 蒲昌海는 一名鹽澤이니 去玉門陽關三百餘里라 其水停居하여 冬夏에 不增減하고 潛行地中하여 南出積石이라하니라 又唐長慶中에 薛元鼎이 使吐蕃할새 自隴西成紀縣西南으로 出塞二千餘里하여 得河源於莫賀延積尾하니 曰閟磨黎山이라 其山이 中高四下하니 所謂崑崙也라 東北流하여 與積石河로 相連하니 河源澄瑩하고 冬春可涉이라 下稍合流하여 色赤하고 益遠에 他水幷注하여 遂濁이라 吐蕃亦自言 崑崙은 在其國西南이라하니 二說에 恐薛氏爲是라 河自積石으로 三千里而後에 至于龍門이어늘 經에 但一書積石하고 不言方向은 荒遠하여 在所略也라 龍門而下는 因其所經이니 記其自北而南則曰南至華陰이라하고 記其自南而東則曰東至底柱라하고 又詳記其東向所經之地則曰孟津, 曰洛汭, 曰大伾라하고 又記其自東而北則曰北過洚水라하고 又詳記其北向所經之地則曰大陸, 曰九河라하고 又記其入海之處則曰逆河라 自洛汭而上은 河行於山하니 其地皆可攷어니와 自大伾而下는 垠岸高於平地라 故로 決齧流移하여 水陸變遷하니 而伾水大陸九河逆河를 皆難指實이라 然이나 上求大伾하고 下得碣石하여 因其方向하여 辨其故迹이면 則猶可考也라 其詳은 悉見上文하니라
○ 又按 李復云 同州韓城北에 有安國嶺하니 東西四十餘里요 東臨大河라 瀕河에 有禹廟한대 在山斷河出處라 禹鑿龍門에 起於唐張仁愿所築東受降城之東하여 自北而南하여 至此山盡이라 兩岸石壁峭立하고 大河盤束於山峽間千數百里라가 至此하여 山開岸闊하니 豁然奔放하여 怒氣噴風하고 聲如萬雷라하니라 今按 舊說에 禹鑿龍門호되 而不詳其所以鑿이요 誦說相傳에 但謂因舊修闢하여 去其齟齬하여 以決水勢而已라 今詳此說하면 則謂受降以東으로 至於龍門은 皆是禹新開鑿이니 若果如此면 則禹未鑿時에 河之故道는 不知却在何處라 而李氏之學極博하니 不知此說又何所考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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