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하고 요령이 있던 왕융
왕융간요(王戎簡要)
『晉書』. 王戎字濬沖, 琅邪臨沂人. 幼而穎悟, 神彩秀徹, 視日不眩. 裴楷見而目之曰: “戎眼爛爛如巖下電.”
阮籍素與戎父渾爲友. 戎年十五隨渾在郞舍. 少籍二十歲, 籍與之交. 籍每適渾去, 輒過視戎, 良久然後出. 謂渾曰: “濬沖淸賞, 非卿倫也. 共卿言, 不如共阿戎談.” 歷官至司徒.
해석
『晉書』.
『진서(晉書)』에 실린 이야기다.
王戎字濬沖, 琅邪臨沂人.
왕융의 자는 준충(濬沖)으로 낭야군(琅邪郡) 임기현(臨沂縣) 사람이다.
幼而穎悟, 神彩秀徹, 視日不眩.
어려서 영특하고 신비한 풍채가 수려하고 해맑았으며 해를 보고도 어지러워하지 않았다.
裴楷見而目之曰: “戎眼爛爛如巖下電.”
배해가 보고 그걸 지목하며 “왕융의 눈은 반짝반짝하기가 바위 아래의 우레 같구나.”라고 말했다.
阮籍素與戎父渾爲友.
완적은 본래 왕융의 아버지인 왕혼(王渾)과 벗이 되었다.
戎年十五隨渾在郞舍. 少籍二十歲, 籍與之交.
왕융의 나이 열다섯에 아버지 왕혼을 따라 낭사(郞舍)에서 지냈는데 완적보다 스무살이 어린데도 완적은 그와 교분을 나눴다.
籍每適渾去, 輒過視戎, 良久然後出.
완적은 매번 왕혼을 만나러 갈 적에 그때마다 지나다 왕융을 보았고 실로 오래된 후에야 나오곤 했다.
謂渾曰: “濬沖淸賞, 非卿倫也. 共卿言, 不如共阿戎談.”
왕혼에게 “준충(濬沖)은 깨끗함을 칭찬하니 자네【경(卿): 서주(西周) 및 춘추시대 때 생긴 신분계급으로 제후나 공 다음의 지위다. 『세설신어(世說新語)』를 보면 2인칭 대명사로 쓰인 예들이 많다.】의 무리가 아니라네. 그대와 함께 말하는 것은 왕융【아(阿): 애칭으로 쓰임】과 담소하는 것만 못하네.”라고 말했다.
歷官至司徒.
여러 관직을 거쳐 삼공(三公) 중 하나인 사도에 이르렀다.
참고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예((賞譽)」 편(篇)에 의하면 왕융과 배해는 젊었을 때 종회(鍾會)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종회는 위진시대의 명필 종요(鍾繇)의 아들이며 촉한을 멸한 것으로써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사마씨에게 빌붙고 명사들의 행동을 감시하였다 해서 한족에게는 악명이 높다.
아무튼 왕융과 배해가 돌아간 뒤에 종회는 측근으로부터 그들의 인상을 질문받았는데 그때의 대답이 바로 ‘배해청통 왕융간요(裴楷淸通 王戎簡要)’였다.
-『몽구』, 이한 지음, 권오석 옮김, 홍신문화사, 1998년, 16쪽
해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시대는 위진남북조시대라고 부르는 분열기였다. 난세에 성공하는 지도자는 바로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사람이다. 이 시대에 인간의 재질과 성품을 평가하는 재성지학(才性之學), 일종의 관상학에 대한 연구가 철학적으로 전개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왕융간요(王戎簡要)」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왕융과 「배해청통(裴楷淸通)」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배해는 누가 보아도 나무랄 데 없는 뛰어난 인물들이다. 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종회(鍾會)란 인물은 당시 재성지학의 대가였다.
종회가 앞의 두 인물을 평가한 것은 아주 이채롭다. 먼저 왕융은 어떤 일이나 문제의 핵심을 잘 간추리고 대책을 세우는 인물로 평가했다. 아주 똑똑하고 예리한 판단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래서 ‘간략하고 요령 있다[簡要]’고 했다.
이에 비해 배해는 청렴하면서도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흔히 청렴함이란 고집스러움이나 아둔함과 통할 수 있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잘 지키지만 융통성이나 분별력이 없을 수 있는데 배해는 청렴함과 함께 융통성과 적절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청렴하면서 융통성이 있다[淸通]’고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두 인물이 추천된 자리에 있다. 그 자리는 바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똑똑하고 업무 능력이 있는 인물보다는 청탁에 대해 단호하면서 많은 인물들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는 인물에게 더 적절한 자리였다. 결국 배해가 뽑힌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만약에 왕융이 다른 자리를 놓고 추천되었다면 선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절대적인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그릇과 그 그릇이 쓰일 자리의 크기가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중요한 기준인 것이다. 적절함, 알맞음의 덕이 결국은 인재 등용의 기준인 셈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적당한 사람을 그에 알맞은 자리, 즉 적재적소(適材適所)에 기용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말하기는 쉬어도 실행하기 어려운 평범한 진리 가운데 하나다.
-『몽구』, 이한 지음, 유동환 옮김, 홍익출판사, 2008년, 45~46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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