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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파시즘(Fascism)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파시즘(Fascism)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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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Fascism

 

 

대동단결(大同團結)은 좋은 말이지만 같은 뜻의 파쇼는 나쁜 말이다. 파시즘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뜻은 같은데도 응도(凝度)가 엇갈린 이유는 그 개념을 둘러싼 역사적인 맥락 때문이다.

 

파시즘이라는 용어는 고대 로마의 개선식(凱旋式)에서 사용하던 권력의 상징물인 파스케스(Fasces)에서 비롯되었다. 화려한 개선식이 벌어지면 릭토르 경관의 수행원들은 월계수로 장식된 막대기들을 묶은 다발을 들고 행진했는데, 이것을 파스케스(Fasces)라고 불렀다. 막대기들을 묶었다는 이미지와 권력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대동단결을 나타내기에 적합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파스케스의 현대적 용도에 처음으로 착안한 사람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권력자로 떠오른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였다. 전쟁 건부터 이탈리아는 유럽의 후발 제국주의 국가로 뒤늦게 뛰어든 식민지 쟁탈전에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개전 초기에 재빨리 3국 동맹에서 벗어나 연합국 측에 가담했으나, 고무신 바꿔 신은 팔자가 흔히 그렇듯이 전승국으로서의 혜택도 별로 누리지 못했다.

 

당연히 전후 이탈리아의 경제 사정은 무척 어려웠고 국민들은 무능한 정부를 호되게 비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솔리니는 당당한 풍채와 열정적인 연설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순식간에 국민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무솔리니는 옛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국민들을 현혹하면서 자신을 중심으로 단결하라고 외쳤다.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정치 체제가 바로 파시스모(fascismo, 파시즘) 정권이었다.

 

무솔리니의 성공은 개인의 영광과 국가의 발전을 혼동하는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고, 일약 파시즘이 세계화되는 시대를 열었다. 독일의 나치, 스페인의 팔랑헤, 일본의 군국주의 군부가 모두 1930년대에 등장한 파시즘 정권들이다. 선배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는 후배를 그냥 놔두고 볼 선배는 없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은 파시즘의 응징에 나섰고, 그 결과는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으로 터졌다.

 

 

군사독재의 경험이라면 우리 현대사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독재와 파시즘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일단 정권의 속성은 비슷하다. 그러나 독재는 독재자가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인 데 비해 파시즘은 국민의 다수가 정권을 지지하는 체제를 가리킨다. 1930년대 독일의 나치 정권은 실제로 많은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심지어 나치 정권의 반유대주의(홀로코스트)를 지지한 국민들도 적지 않았다오늘날 독일 국민들이 나치라는 말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이유는 조상의 그런 원죄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 주목하면 파시즘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난다.

 

 

파시즘에 관한 가장 천박한 분석은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와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 등 희대의 정신병자들이 대중을 선동하고 권력을 독점한 체제라는 설명이다. 주로 서구의 보수적 역사가들이 이렇게 주장하는데, 이들은 파시즘의 성립을 소수 전쟁광들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파시즘은 서구 역사의 사생아가 아니라 적자(嫡子). 제국주의 시대인 19세기에 식민지 쟁탈전에서 실패한 유럽의 국가들이 파시즘화되는 것은 필연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파시즘을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위기가 표출된 결과라고 간주한다. 그런데 후발주자의 입장에서는 파시즘의 역사적 필연성이 설명되지만, 이것이 파시즘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인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97~1957)는 파시즘에 관한 독창적인 심리적 분석을 시도한다. 그는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사회에 파시즘의 대중 선동이 성립할 수 있는 심리적 조건이 존재했다고 분석한다. 쉽게 말해 대중이 파시즘 체제를 원했다는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국민들은 스스로 파시즘의 억압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다. 심리적으로 이것은 마조히즘(관음증)에 해당한다. 라이히의 파시즘 이론은 사회경제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아니라 욕망무의식적 투여라는 관점에서 파시즘을 바라본 것인데, 이런 시각은 마르크스주의의 파시즘 분석을 훌륭하게 보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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