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어 사전 - 키치(Kitsch)

키치

Kitsch

 

 

‘싸구려’라는 뜻의 이 독일어가 싸구려의 처지를 면하게 된 것은 현대 문화의 한 풍조를 반영한다. 지금은 이 싸구려를 의도적인 조악함이나 복고적 성향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키치란 원래 19세기 말 독일에서 저급한 미술 작품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된 용어다. 그 이전까지 미술 작품은 주로 교회나 귀족 등의 의뢰인에게서 주문을 받아 제작되었으나, 19세기 후반부터는 화상(畵商)들이 화가들의 작품을 화랑에 전시하고,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예술), 이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미술 작품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19세기는 적어도 서유럽에 관한 한 풍요의 세기였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절정에 달했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토대로 하는 자유주의 이념이 사회에 팽배했으며, 봉건적 신분질서가 완전히 해체되고 경제력을 장악한 부르주아지가 사실상 사회의 지배계급이 되었다.

 

원래 부와 명예는 궁합이 잘 맞게 마련이다. 같은 시기에 조선의 상민들이 돈을 모으면 양반의 족보를 사들여 새로운 가문의 뼈대를 만들었듯이, 19세기 말에 돈을 벌 만큼 벌었다고 생각한 유럽의 부르주아지들은 경쟁적으로 귀족들의 문화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의 귀족들은 자국 내의 문화를 넘어 전 세계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으나(→ 오리엔탈리즘) 각국의 부르주아지들은 예전에 귀족들이 하던 것처럼 그림이나 조각 같은 미술품을 구입해 집안을 장식하고자 했다. 졸부가 흔히 그렇듯이 돈이 있다고 해서 없던 예술적 심미안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다. 그들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싸구려 미술품도 마구 사들였다. 실상은 진짜 고급 미술품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안목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키치 문화의 시작이다. 처음에 미술 용어로 사용된 키치라는 말은 점차 용도가 확대되어 저급한 미술품만이 아니라 조악한 패션이나 취향도 뜻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부정적인 의미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대중문화의 시대인 현대에 들어서자 키치는 싸구려의 이미지를 떨어버리고 대중적인 예술 장르로 의미가 전화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 워홀(Andy Warhol, 1928~1987)이나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같은 팝아트 미술가들이 통조림 깡통이나 만화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키치는 조잡하고 투박한 효과를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하나의 경향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일부러 어색하게 꾸민 패션이나 복고풍의 유행,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성향을 전반적으로 키치 문화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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