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 & 연역
Induction & Deduction
어느 동사무소 직원이 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성(姓)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다.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모두 성이 최 씨라고 대답했다. 그 마을은 집성촌(集姓村)이었다. 직원은 서류에 마을 주민들의 성이 모두 최 씨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아뿔싸, 마을에는 박 씨가 단 한 사람 있었다. 16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귀납과 연역의 함정을 설명하기 위해 든 예다.
지식을 얻는 방법, 그리고 그 지식을 검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래로부터 진행하는 것, 즉 귀납(歸納)이고 다른 하나는 위로부터 진행하는 것, 즉 연역(演繹)이다. 동사무소 직원이 만나는 주민마다 성을 물어본 것은 귀납적 방법이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결론으로 마을 주민들이 모두 최 씨라고 생각한 것은 연역적 판단이다.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다.
플라톤(Platon, BC 427~347)이 말하는 인간의 인식 과정은 먼저 사물에 대한 추측에서 시작한다. 그 추측이 쌓이면 신념이 되고, 그 신념을 우리의 의식이 가공해 개념을 구성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귀납적 추론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붉은 장미가 화려하게 핀 꽃밭을 보고 “아, 장미는 붉은색이구나!”하고 결론을 내린다면 잘못이다. 장미는 흰색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의 모든 장미를 다 관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귀납적 추론은 참된 지식을 주지 못한다.
그럼 연역적 추론은 어떨까? 잘 알려진 연역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가 말한 삼단논법(三段論法)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대전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소전제)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결론)
여기서 대전제와 소전제가 참이면 결론은 당연히 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삼단논법을 가장 완벽한 논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연역법에도 역시 문제가 있다. 전제가 자명하다면 그 추론은 무조건 옳지만 전제의 자명함은 대체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모든 것은 늘 다른 것에 의해 증명되어야 하는데, 이런 방식은 결국 무한한 순환 논증을 낳는다.
아래로부터 추론하는 귀납법은 경험과 관찰에 의존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참 지식에 닿지 못하고, 위로부터 추론하는 연역법은 자명한 원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전제 자체를 증명할 수 없다. 이런 딜레마를 두고 베이컨은 개미와 거미에 비유했다. 지식을 추구하려면 거미처럼 자기 것을 내놓아서도 안 되고(연역법), 개미처럼 그저 모든 것을 끌어모아서도 안 된다(귀납법), 베이컨이 더 우수한 곤충으로 꼽은 것은 벌이다. 벌은 수집과 정리를 병행한다. 베이컨은 벌의 방식을 귀납법의 개선으로 간주하고 이런 정교한 귀납적 추론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귀납법의 근본적 한계를 명쾌하게 극복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후대의 영국 철학자인 흄(David Hume, 1711~1776)은 귀납적 지식이 순전히 습관에 의한 관념의 연상에 불과하다는 극단적 회의론까지 주장했다.
비록 나름의 장단점과 한계는 있지만 귀납과 연역은 지금도 논리학에서 지식을 검증하는 주요한 방법일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지식을 습득하는 주요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관찰을 중시하는 대개의 자연과학에서는 귀납이 우세하지만 수학 같은 기본적인 과학은 여전히 연역의 아성이다. 사실 양측이 논쟁에서 붙으면 아무래도 연역 측이 다소 우위에 서게 마련이다. 귀납적 추론은 단 하나의 반증에도 부정될 수 있지만, 연역적 추론을 객관적으로 부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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