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의 지도리[道樞]와 밝음을 쓴다[以明]의 의미
1. 수영을 배우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
이어지는 발제 원문을 보면 장자는 마음의 무대(無待)의 상태를 도의 지도리[道樞]라고 부르고 있다. 우선 원문을 자세히 읽어보도록 하자.
저것과 이것이 대대하지 않는 경우를 도의 지도리라고 부른다. 한번 그 축이 원의 중앙[環中]에 서게 되면, 그것은 무한한 소통을 하게 된다.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無窮.
여기서 도추(道樞)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무대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도추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몇 가지 비유를 통해 이 개념의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 우리는 돌아가는 물레의 중심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돌아가는 물레에 물건을 올려놓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약 중심에 정확하게 올려놓지 못하면, 그 물건은 바깥으로 튕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정확하게 그 물건을 돌아가는 물레의 중심에 올려놓으면 그것은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움직이면서 동시에 움직이지 않은 상태도 바로 A=-A라고 표현되었던 무대의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자는 이런 마음의 상태를 ‘원환의 중심을 얻은 것[得環中]’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또 도추를 소용돌이나 혹은 태풍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 소용돌이나 태풍의 주변부는 너무나 거칠고 위험하지만 그 중심부는 고요해서 맑은 하늘이 보일 정도로 안정되고 평온하다. 겉으로 보기에 이 중심부는 비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하게 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비어 있는 상태는 강렬한 소용돌이를 가능하게 하는 부동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용돌이 내부의 비어 있음은 외부의 강렬한 운동과 동시적인 사태인 것이다.
장자에게 남겨진 문제는 도추의 상태가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초월한 절대자의 경지로 오해될 여지가 있다는 데 있다. 장자는 이어지는 구절에서 도추의 상태는 마음이 자신의 본래의 자리를 얻어서 무한하고 복수적인 타자들에 대응할 수 있는 상태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여기서 잠깐 도추의 마음이 어떻게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지 비유적으로 설명해보도록 하자. 다시 수영을 예로 들어보자. 갓난아이를 물에 넣으면 그 아이는 자유자재로 수영을 하고 노닌다. 반면 어른은 물에 들어가면 허우적거리며 대개는 물에 가라앉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 마련이다. 도대체 갓난아이와 어른 사이에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어른들이 ‘물은 물이고 나는 나다’는 고착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갓난아이들은 이런 종류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처럼 물이 나와는 무관한 물로 현상하게 되면, 그 물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갓난아이들은 물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물처럼 느낀다. 이처럼 갓난아이들은 스스로를 물이라고 여기는 자피(自彼)의 상태에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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