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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I. 결론과 더 읽을 것들 - 1. 장자철학의 고유성, 소통을 위해 거울과 같이 맑은 마음을 유지하라 본문

고전/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I. 결론과 더 읽을 것들 - 1. 장자철학의 고유성, 소통을 위해 거울과 같이 맑은 마음을 유지하라

건방진방랑자 2021. 7. 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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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통을 위해 거울과 같이 맑은 마음을 유지하라

 

 

장자철학을 이해하는 데 핵심 개념이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의존하지 않음이라고 번역되는 무대(無待)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이 기존의 연구자들처럼 절대(絶對)로 이해될 때, 결코 우리는 장자철학의 핵심에 이를 수 없게 된다. 반면 무대라는 개념이 꿈과 같은 일체의 매개에 의존하지 않음이라고 이해될 때, 우리는 그가 모색했던 삶과 소통의 진실에 이르게 된다. 절대라는 개념 속에서는 주체와 타자는 원리적으로 소멸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반면 무대가 매개에 의존하지 않음으로 이해될 때, 주체와 타자는 실존적으로 긍정될 수 있다. 매개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타자와 소통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비약을 수행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비약에 실패해서 주체와 타자 사이에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타자와 소통하려면 우리는 이런 심연을 건너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유한자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있다. 이 말은 인간이 그 자체로서 존립할 수 있는 신적인 실체(substance)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타자와 소통하면서 그리고 소통해야만 존립할 수 있는 존재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의 역량이 주어져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분명 유한자이지만, 제한적인 의미에서는 무한자의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자에게 인간은 유한한 무한자 또는 무한한 유한자라고 규정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무한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마음은 결코 우리의 실존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존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은 단지 인간의 구체적 실존의 양태인 무한한 유한자라는 통일성으로부터 무한성만을 부당하게 추상화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든 타자와의 소통은 무한한 유한자로서의 인간이 지닌 무한성의 측면인 마음에서 사유되고 모색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우리는 왜 장자가 마음이라는 존재론적 장소를 통해 소통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조건을 숙고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장자는 진정한 마음, 혹은 본래적인 마음을 거울로 비유한다. 거울은 자신이 조우한 어떤 것이든지 투명하게 비춘다. 이것은, 자신이 비추는 것이 추녀이든 아니면 미녀이든 상관없이, 거울은 타자를 있는 그대로 비춘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울의 잘 비추어내는 역량 자체를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거울이 잘 비추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그 거울을 들여다보아야만 하는데, 그 경우 우리는 거울 속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절대적 위치에 설 수 없다. 결국 거울의 밝음의 능력 그 자체는 오직 다양한 타자를 비춤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확인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이 맑다는 것은 오직 타자와 잘 소통하는지의 여부로서만 사후에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시도는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종적 목적이 아니라 타자와의 소통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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