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지을 때 경계해야 할 것
文之體類十三, 而所以爲文者八, 曰神理氣味格律聲色. 神理氣味者, 文之精也; 格律聲色者, 文之粗也, 然苟舍其粗, 則精者亦胡而寓焉? 學者之於古人, 必始而遇其粗, 中而遇其精, 終則御其精者而遺其粗者, 今不能遇其粗而何以遇其精, 以至於御其精而遺其粗也?
世每以文爲小道而忽之, 是以文爲戲者也. 非文則道無以寓焉, 文與道相須, 不可歧而貳之也. 所以『易』文言, 爲文之祖, 而繫之末端, 以吉人之辭躁人之辭, 申複言之 文之不可不愼, 如此也. 何可以下筆不休, 無所裁制, 騁氣吊詭, 積字積句, 以爲文也? 此尤大戒也, 又何論於遇其精遇其粗也?
해석
文之體類十三, 而所以爲文者八, 曰神理氣味格律聲色.
글의 문체(文體) 종류는 13가지이지만 문장을 짓게 하는 것은 여덟 가지가 있으니 신(神)과 리(理)와 기(氣)와 미(味)와 격(格)과 률(律)과 성(聲)과 색(色)이다.
神理氣味者, 文之精也; 格律聲色者, 文之粗也, 然苟舍其粗, 則精者亦胡而寓焉?
신리기미(神理氣味)는 글의 정밀한 것이고 격률성색(格律聲色)은 글의 거친 것이지만 만약 거친 것을 버린다면 정밀한 것을 또한 어디에 붙이랴?
學者之於古人, 必始而遇其粗, 中而遇其精, 終則御其精者而遺其粗者, 今不能遇其粗而何以遇其精, 以至於御其精而遺其粗也?
학자는 옛 사람에 대해서 반드시 처음엔 거친 것을 만나고 중간엔 정밀한 것을 만나며 끝으론 정밀한 것을 부리면서 거친 것을 버리는데 지금은 거친 것을 만나지 않았는데 어찌 정밀함을 만나겠으며 정밀함을 부리며 거친 것을 버리는 데에 이르겠는가?
世每以文爲小道而忽之, 是以文爲戲者也.
세상엔 매번 문장을 작은 도구로 여겨 소홀히 해서 문장을 장난스레 짓는다.
非文則道無以寓焉, 文與道相須, 不可歧而貳之也.
글이 아니면 도는 붙이질 못해서 글과 도는 서로를 필수로 하니 나뉘어져 둘일 수 없는 것이다.
所以『易』文言, 爲文之祖, 而繫之末端, 以吉人之辭躁人之辭, 申複言之 文之不可不愼, 如此也.
『주역』의 문언(文言)은 글의 으뜸이 되었고 끝에 길한 사람의 말과 성급한 사람의 말을 달아서 거듭 다시 그것을 말했으니 글은 불가불 조심해야 함이 이와 같다.
何可以下筆不休, 無所裁制, 騁氣吊詭, 積字積句, 以爲文也?
어찌 붓을 쓸 땐 쉬지 않고 고려하는 것도 없이 기를 달림에 기이하게 하며 글자를 쌓고 글귀를 쌓아 글을 짓는 것인가?
此尤大戒也, 又何論於遇其精遇其粗也?
이것이 더욱 크게 경계할 것이니 또한 어찌 정밀함을 만나고 거친 것을 만난 것을 논하리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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