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체제사를 알면 나라를 다스림은 쉽다
3-11. 어떤 이가 체에 관한 해설을 듣고자 하였다. 공자께서 이에 말씀하시었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대함에 있어서, 그것을 여기에 놓고 보는 듯 하겠구나!” 그러면서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3-11. 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
이 장 역시 난해하다. 그러나 그 대화의 형식이나 기술의 방식이 생기발랄하고 매우 구체적인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당시 이미 체(禘)에 관한 학문적 논의(설說)가 있었다. 그러나 합의된 이론(理論)이 없고 이론(異論)이 분분하였다. 더욱이 체제사가 노나라에서 거행되고 있는 현실은 전혀 당위적 형태를 반영하고 있질 못했다. 물론 이 11장은 상기(上記)의 10장과 동시에 편집된 파편일 것이다. 체제사라는 동일 주제에 관한 두 개의 파편이 같이 수집된 것이다. 이어지는 12ㆍ13장도 동일한 제사에 관한 것이라서 유기적인 연관성이 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제사에 관한 10~13장이 9장과 14장 사이에 끼어 있는데, 9. 14장은 모두 하ㆍ은ㆍ주의 예의 대국을 말하는 연결된 장이다. 편집자는 9.14장이 본시 하나의 테마였는데 그것을 벌려 놓으면서 그 사이에 제사의 현황에 관한 논의를 끼어넣은 것이다. 참으로 기발한 편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혹자가 공자에게 체에 관한 학설을 물었다. 공자는 물론 체라는 제사의 본질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꿰뚫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체라는 것 자체가 이미 노나라의 현실 속에서는 참월에 속하는 것이었기에 논의를 삼가는 것이 정도(正道)였다. 공자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체(禘)라는 글자를 잘 분석해보면 그 속에는 ‘제(帝)’가 숨어 있다. 제(帝)는 로칼한 조상신의 차원을 넘어서는 지고(至高)한 상제(上帝)다. 그리고 제(帝)는 은나라 말기에는 천자(天子, 王)의 이름으로도 쓰였다. 제(帝)의 갑골문(𠫦)은 거대한 제사상을 삼발의 체각(締脚)에 받쳐놓은 형상이다. 그곳에서 지고의 신을 제사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체(禘)에 관한 학설은 곧 제왕(帝王)의 세계통 치에 관한 이론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즉 고대인들에게는 신의 공간(Divine Space)과 역사의 공간(Historical Space)의 분리가 없다. 즉 체(禘)제사의 궁극적 의미를 깨닫는 자라면 그는 곧 이 세계를 한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는 듯한 어떤 우주적 통찰(cosmic inspiration)의 소유자이어야 할 것이다.
주자는 ‘시(示)’를 ‘시(視)’로 풀었다[示, 與視同]. 시(示)를 보인다, 현현한다, 드러난다의 뜻으로 풀지 않고 ‘본다’로 푼 것이다. ‘시저사호(示諸斯乎)’의 ‘저(諸)’는 지(之)와 어(於)의 합성어이다. 그렇다면 여기의 ‘지(之)’는 곧 ‘천하(天下)’를 받는 것으로 풀 수밖에 없다. ‘시저사호(示諸斯乎)’는 ‘천하를 여기에서 본다’가 된다. 여기는 곧 ‘손바닥[掌]’이다. 공자는 이 말을 하면서 손바닥을 가리켰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환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러한 우리말 표현이 바로 이 『논어』의 구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오늘날 ‘지장(指掌)’이란 말은 ‘간단명료한 요약’ 등의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나는 공자가 ‘지기장(指其掌)’이라 한 의미를 ‘전관(全觀)’의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여기서 전관이란 곧 초월적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초월이란 초자연적 초월이 아니요, 나의 인식의 한계의 끊임없는 초월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지도자는 이 세계를 초월한 자래야 한다. 신(神)을 진정으로 아는 자는 신(神)을 초월한 자이어야 한다. 종교를 진정으로 깨닫는 자는 종교를 초월해야 하는 것이다. 신에 구애된 자는 신에게 종속될 뿐이고, 세계에 구애된 자는 세계를 구원할 수 없다. 세계를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본다 함은 곧 신의 제사를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신의 제사를 손바닥에 놓 고 들여다보는 듯하다 함은 곧 인간과 우주에 대한 통찰의 스케일이 신의 경지를 뛰어넘고 있다는 것이다. 신에 구애된 자는 궁극적으로 현세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과 신에 대해 초월적 거리를 감지할 수 있는 자만이 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선왕(先王)이 근본에 보답하고[報本], 멀리 가버린 분들까지 추모하는(追遠) 뜻은 이 체제사 만큼 깊은 것이 없다. 인효(仁孝)와 성경(誠敬)의 지극함에 이르지 아니 하면, 이 체제사와 더불어 할 수 없으니, ‘어떤 사람(或人)’의 인식수준이 여기에 미칠 바가 아니다. 왕자(천자)가 아니고서는 체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는 법도는 또한 노나라에서도 가려지켰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시(示)’는 본다는 ‘시(視)’와 같다. ‘지기장(指其掌)’이라는 것은 부자께서 이를 말씀하시고 당신 스스로 그 손바닥을 가리키신 장면을 제자가 기록한 것이다. 부자께서는 그러한 행동을 통해 그것이 명료하고 쉬운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대저 체(禘)의 설(說: 체에 관한 설명이나 이론)을 알게 되면 이치가 명료하지 않음이 없고, 정성이 감동하지 않음이 없으니 천하를 다스림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성인께서 이 체제사에 관하여 어찌 진실로 알지 못하시는 바가 있었겠는가?
先王報本追遠之意, 莫深於禘. 非仁孝誠敬之至, 不足以與此, 非或人之所及也. 而不王不禘之法, 又魯之所當諱者, 故以不知答之. 示, 與視同. 指其掌, 弟子記夫子言此而自指其掌, 言其明且易也. 蓋知禘之說, 則理無不明, 誠無不格, 而治天下不難矣. 聖人於此, 豈眞有所不知也哉?
회의 설명이 명료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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