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논어 팔일 - 10. 노나라가 참람되이 천자의 제사인 체(禘)제사를 지내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 팔일 - 10. 노나라가 참람되이 천자의 제사인 체(禘)제사를 지내다

건방진방랑자 2021. 9. 29. 12:44
728x90
반응형

10. 노나라가 참람되이 천자의 제사인 체()제사를 지내다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 大計反.

趙伯循: “, 王者之大祭也. 王者旣立始祖之廟, 又推始祖所自出之帝, 祀之於始祖之廟, 而以始祖配之也. 成王周公有大勳勞, 賜魯重祭. 故得禘於周公之廟, 文王爲所出之帝, 而周公配之, 然非禮矣.”

灌者, 方祭之始, 用鬱鬯之酒灌地, 以降神也. 之君臣, 當此之時, 誠意未散, 猶有可觀.

 

吾不欲觀之矣.”

自此以後, 則浸以懈怠而無足觀矣. 祭非禮, 孔子本不欲觀, 至此而失禮之中又失禮焉, 故發此歎也.

氏曰: “夫子嘗曰: ‘我欲觀夏道, 是故之杞, 而不足徵也; 我欲觀殷道, 是故之宋, 而不足徵也.’

又曰: ‘我觀, 傷之, 吾舍何適矣. 之郊禘非禮也, 周公其衰矣!’ 考之已如彼, 考之當今又如此, 孔子所以深歎也.”

 

 

 

 

해석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제사()라는 것은 왕자의 대제다. 이것은 군주가 선조의 위패들을 모신 태묘(太廟)에서 철에 따라 지내는 대제(大祭)인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종묘대제야말로 체제사의 한 전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종묘의 정시제(正時祭)는 춘하추동 사계절의 시작과 납일(臘日)에 지내었다. 체제사는 원래 천자만이 지낼 수 있었던 제사였는데, 노나라는 주공 단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태묘에서 체제사의 격식을 차리는 것이 주() 성왕(成王)시절부터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례(古禮)의 원래 의미는 상실되어 갔고 그 후 노나라에서 지낸 체제사는 무엇인가 원래의 모습에서 크게 변질되었을 뿐 아니라, 그 격식도 많이 비하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체제사가 아닌 제사에도 체의 격식을 마구 쓰는 그런 사태가 목도되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체제사의 대중화현상이기도 했지만 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명백히 비하요 참월이요 타락이었다. -논어한글역주, 2, 43에 울창주를 부어 강신(降神)한 후로는

, 大計反.

趙伯循: “, 王者之大祭也.

조백순이 말했다. “()는 왕자의 대제(大祭).

 

王者旣立始祖之廟, 又推始祖所自出之帝,

왕자는 이미 시조의 묘()를 세우고 또한 시조가 시작된 바의 임금을 미루어

 

祀之於始祖之廟, 而以始祖配之也.

시조의 묘()에 제사 지내고 시조로써 그와 함께 배향(配享)한다.

 

成王周公有大勳勞,

성왕은 주공으로써 큰 공로가 있다고 생각하여

 

賜魯重祭.

노나라에 중대한 제사를 하사했기 때문에

 

故得禘於周公之廟,

주공의 묘()에서 체제사를 할 수 있었고,

 

文王爲所出之帝, 而周公配之,

문왕으로써 시작된 바의 임금으로 삼아 주공을 배향했다.

 

然非禮矣.”

그렇지만 예는 아니다.”

 

灌者, 方祭之始,

()이란 제사의 시작에 당하여

 

用鬱鬯之酒灌地, 以降神也.

울창주를 사용하여 땅에 부음으로 강신(降神)하게 하는 것이다.

 

之君臣, 當此之時,

노나라의 군신이 이때가 되어

 

誠意未散, 猶有可觀.

성의가 흩어지지 않아 오히려 볼 만한 게 있었다.

 

吾不欲觀之矣.”

나는 그것을 보고 싶지 않다.”

自此以後, 則浸以懈怠而無足觀矣.

그러나 이때 이후로 점점 나태해져 족히 볼 만하지 않았다.

 

祭非禮,

대저 노나라의 제사는 예가 아니니,

 

孔子本不欲觀,

공자는 본래 보고자 하지 않았고

 

至此而失禮之中又失禮焉,

이때에 이르면 예를 잃은 가운데 또한 예를 잃었기 때문에

 

故發此歎也.

이 탄식을 발한 것이다.

 

氏曰: “夫子嘗曰: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부자께선 일찍이

 

我欲觀夏道, 是故之杞,

나는 하나라의 도()를 보고자 하여 기나라로 갔지만

 

而不足徵也;

증명할 만한 게 없었고

 

我欲觀殷道, 是故之宋, 而不足徵也.’

나는 은나라의 도()를 보고자 하여 송나라로 갔지만 증명할 만한 게 없었다.’라고 말씀하셨고,

 

又曰: ‘我觀,

또 말했다. ‘나는 주나라의 도를 보고자 했으나,

 

傷之, 吾舍何適矣.

유왕과 여왕이 그것을 손상시켰으나 내가 노나라를 버리고 어딜 가리오.

 

之郊禘非禮也,

노나라의 교제(郊祭)와 체제(禘祭)는 예가 아니니,

 

周公其衰矣!’

주공의 예가 쇠하였구나!’

 

考之已如彼,

기나라와 송나라를 고찰해봄에 이미 저와 같고,

 

考之當今又如此,

당시를 고찰해 봄에 또한 이와 같으니,

 

孔子所以深歎也.”

공자께서 깊이 탄식한 것이다.”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