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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팔일 제삼 - 8. 흰 바탕이 있어야 색칠할 수 있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팔일 제삼 - 8. 흰 바탕이 있어야 색칠할 수 있다

건방진방랑자 2021. 5. 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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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흰 바탕이 있어야 색칠할 수 있다

 

 

3-8. 자하()가 여쭈어 말하였다: “‘어여쁜 웃음 보조개 짓고, 아리따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하니, 흰 것으로 광채를 내도다!’ 하니, 이것은 무엇을 일컬은 것입니까?”
3-8. 子夏問曰: “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것을 뒤로한다.”
子曰: “繪事後素.”
 
자하가 말하였다: “예가 제일 뒤로 오는 것이겠군요?”
: “禮後乎?”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를 깨우치는 자, (: 자하의 이름)이로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회사후소(繪事後素)’라 제목 지을 수 있는 이 장은 중국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논점을 제기하는 공자의 말로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 장은 자하라는 공자의 말년제자와 공자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진 매우 시적(詩的)이고도 암시적인 언어로 다이내믹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옛 사람들의 노래를 둘러 싼 대화방식과 격조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장면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자하는 자유(子游)와 함께 문학(文學)으로 꼽힌 사과십철(四科十哲) 중의 일인이다. 자하가 본시 위()나라 사람으로 나중에 위문후(魏文侯)의 스승이 되어 제()나라 직하학파의 모델이 된 위()나라의 학단을 형성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1-7 해설). 자하는 문학적 상상력이 탁월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자하를 예()에 얽매여 있는 인물로 그리는 것은 후대에 순자계열이나 대립의식을 가지고 있던 타학파에서 윤색한 것이다.

 

자하가 위()나라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하가 위나라의 노래, 위풍(衛風)의 한 수를 인용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노래는 위나라 장공(莊公)이 제()나라 태자(太子, 동궁東宮) 득신(得臣)의 여동생인 장강(莊姜)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 제나라의 여자가 너무도 아름다워, 그녀가 시집을 때 위나라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노래라 한다. 혹설에 의하면 장강(莊姜)이 아름다웠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자 장공(莊公)이 첩에 빠져 실정을 거듭하자 장강의 아름다움을 찬미하여 장공의 혼혹(昏惑)함을 꾸짖는 시라고도 한다. 이것은 마치 영국사람들이 다이애나 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여 황태자 찰스의 바보스러움을 꾸짖는 것과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이 노래는 오늘날의 시경(詩經)속에 위풍(衛風) 석인(碩人)으로 편집되어 남아있다. ‘석인(碩人)’이란 훤칠하고 늘씬한 여인을 뜻한다. 최근의 여배우 꽁리(鞏俐)가 산동성(山東省) 제남(齊南)출신이라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지역 여자들이 비교적 키가 크고 잘 생겼다는 풍설이 있다.

 

碩人其頎 늘씬한 여인이여 훤칠도 해라!
衣錦褧衣 무늬있는 비단 옷에 옷을 걸쳤네
齊侯之子 제후의 딸이요
衛侯之妻 위후의 아내요
東宮之妹 동궁의 여동생이요
邢侯之姨 형후의 처제요
譚公維私 담공이 매부로다

 

手如柔荑 손은 부드러운 띠풀같고
膚如凝脂 살결은 라아드처럼 보드라워라
領如蝤蠐 목은 굼뱅이처럼 기다랗고
齒如瓠犀 이빨은 박씨처럼 가지런히 빛난다
螓首蛾眉 매미 같은 이마에 부나비의 촉수같은 눈썹
巧笑倩兮 어여쁜 웃음 보조개 짓고
美目𦕎兮 아름다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토다

 

1절은 이 여인의 훤칠한 몸매와 아름다운 혼례의상으로부터 도입하여 이 여성의 고귀한 출신을 나타내는 여러 나라의 인척관계를 밝혀나가고 있다. 2절은 이 여인의 용자(容姿)의 디테일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지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은 진부한 듯이 보이는 동ㆍ식물이지만 당시로서 는 매우 참신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묘사의 시점이 손으로부터 얼굴로 점점 이동해가고 있는 매우 섬세한 시간적 기법을 쓰고 있다.

 

그런데 자하가 인용한 시구는 바로 석인(碩人)의 제2절의 마지막 두 행이다. 그런데 자하가 인용한 것은 세 행으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행인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는 현존하는 석인(碩人)속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하가 암송하고 있던 노래가사에는 이 세 행이 같이 붙어 있었던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자하의 질문의 핵심은 앞의 두 행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 석인(碩人)에 누락되어 있는 마지막 행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석인(碩人)노래의 체제로 볼 때, 마지막 행이 삽입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의 위풍 석인4절로 되어 있는데, 한 절이 7행이며, 한 행이 4자로 된 완벽한 구성을 과시하고 있어, 2절의 마지막에 5자의 한 행이 추가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자하가 인용한 시구는 현재 석인의 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이거나, 석인의 다른 버전일 수도 있다.

 

교소천혜(巧笑倩兮)’()’을 보통은 웃음 지을 때 뺨에 생기는 보조개로 해석하지만[, 好口輔也. 집주], 견해를 달리하는 해석도 있다. ()은 천()의 오자(誤字)이며, ()은 쪽과도 같이 홍색(紅色) 염료를 내는 식물이라고 한다. ‘미목반혜(美目盼兮)’()’은 까만 눈동자와 흰자위의 경계가 분명하게 갈라지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까만 눈동자와 흰자위가 분명하게 갈라지는 광채나는 또렷한 눈은, 실상 흰자위가 푸르스름한 깊은 색깔을 띤다. 그렇다면 이 두 행은 다음과 같은 대구로서 해석될 수가 있다.

 

巧笑倩兮 어여쁜 웃음은 발그레
美目盼兮 아름다운 눈빛은 푸르러라

 

그렇다면 제3행의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는 과연 무슨 뜻일까? ‘()’은 문채난다는 뜻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빛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소()는 무엇일까? 나는 이 노래가 원래 왕족의 한 여인의 아리따운 용모를 섬세하게 형용 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세 행은 색깔과 관련된 그 여인의 화장술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은 붉은색 계통이요, ()은 푸른색 계통이요, ()는 흰색 계통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여인의 화장술은 붉은색에서 시작되어 푸른색을 거쳐 흰 색에서 완성되었던 것이다.

 

이에 공자는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대답을 한다. 전통적으로 이 구절의 해석은 고주와 신주가 크게 엇갈리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자학의 압도적인 영향 속에 모두 신주의 이해방법을 취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후대의 수묵 산수화(山水畵)를 모델로 하여 회사(繪事)를 생각하고, ‘()’를 아무것도 물들여지지 않은 흰 천이나 흰 종이로 간주했는데 이것은 참으로 용납키 어려운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수묵산수는 불교(佛敎)의 인식론을 거치면서 성당(盛唐) 이후에나 생겨나는 아주 특이한 회화 장르로서 당()나라 이전의 중국회화와는 무관한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회사(繪事)는 순수하게 고구려벽화나 한대벽화에서 볼 수 있는 물감을 사용하여 덧칠을 해나가는 채색화인 것이다. ‘()’를 흰 바탕으로 생각하는 것은 마치 사혁(謝赫)이 말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명청대(明淸代)의 남종화가(南宗畵家)들이 그것을 필묵(筆墨)의 기교(技巧)로 오석(誤釋)한 것과도 같은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사혁(謝赫)의 시대(56세기)에는 그러한 남종화풍의 수묵산수는 존재하질 않 았다면 사혁이가 말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란 당연히 채색화의 사실성(寫實性)과 관련되는 발언인 것이다.

 

주자의 주도 채색화를 모델로 하고는 있으나, 그는 고공기(考工記)의 기사를 들어 흰 물감으로 먼저 바탕색을 바르고 그 위에 오채(五彩)를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역시 송대(宋代)의 회화적 관습에서 유추된 것으로 보여진다. 나는 고()를 따르는 것이 원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회사후소(繪事後素)’를 회사(繪事, 그림 그리는 일)()에 뒤따른다[後於素]’는 해석은 문법적으로도 억지가 있다. 그냥 회사(繪事)는 소()를 뒤로 한다로 읽어, ‘()’를 소()를 목적어로 가지는 타동사로 읽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정현이 말하였다: 회라는 것은 모양을 그리는 것이다. 대저 모양을 그리는 것은 먼저 온갖 색깔을 베풀고 제일 마지막에 흰 물감으로 그 사이사이를 구분지음으로써 그 모양(라인)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름다운 여인이 비록 어여쁜 보조개와 빛나는 눈동자의 아름다운 바탕을 가지고 있다 해도 또한 반드시 예로써 마감질을 해야만 사람다움이 이루어지는 것에 비유된 것이다.

鄭玄曰: , 畵文也. 凡畵繪先布衆彩, 然後以素分其閒, 以成其文. 喩美 女雖有倩盼美質, 亦須禮以成也.

 

 

회사후소(繪事後素)’를 주자식으로 해석하면 회사(繪事)가 예()가 되고, ()는 그 예()를 실현할 수 있는 인간의 천성적 바탕이 된다. 그러나 고주에 따르면 소()야말로 예()가 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회사후소(繪事後素)’란 이러하다. 그림을 그리는데 먼저 색색의 물감으로 모든 형체를 구현하고 제일 나중에 흰 물감으로 그 형체를 명료하게 드러내어 광채나게 만드는 파이날 텃치(final touch)를 하는 것과도 같이, 인간의 예()라는 것은 온갖 갖가지 삶의 경험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 최종적으로 그 인격의 완성을 파이널 터치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는 인성(人性)의 완성(完成)이다. 그래서 자하는 말하였다: “그림에서 흰 물감이 제일 뒤에 오듯이, 인간의 인격형성과정에 있어서는 예가 제일 뒤에 온다는 뜻이겠군요?” 결국 석인(碩人)이 아름다울 수 있는 최종적 치장은 예()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에 공자는 기뻐서 말하였다. 이때 ()’이라는 것은 자하의 실명(實名)이다. 애정이 담뿍 담긴 친근한 호칭이다: “()! 넌 정말 나를 계발시키는 사람이로구나! 이제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기여자(起予者)’()’는 단순히 감정의 흥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라 할지라도 그 깨달은 바가 선생인 나를 앞서는 면이 있어, 내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2-9와 비슷한 맥락). 그리고 여기 시가여언시이의(始可與言詩已矣)’라는 표현은 이미 학이(學而)15에서 공자가 자공과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시구를 이야기했을 때 허여()했던 것과 동일한 표현이다. 학이15팔일(八佾)8은 구조적으로 동일한 계통의 기자의 손에서 성립한 파편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은 칠연() 반이다. ‘은 보간(普莧) 반이다. ‘은 호현(呼縣) 반이다. 이것은 현재 전하지 않는 노래(逸詩)이다. ‘()’은 아름다운 뺨의 보조개이다. ‘()’은 눈동자의 흑과 백이 분명하게 나뉘는 모습이다. ‘()’는 흰 분칠을 한 바탕이 니, 곧 그림의 바탕이다. ‘()’은 채색이니 그림의 꾸미는 요소이다. 이 장은 어떤 사람이 이러한 귀여운 보조개와 선명한 눈동자의 아름다운 소질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화려한 채색의 장식을 가하는 것은 마치 흰 바탕에 채색을 가하는 것과도 같은 것임을 말하고 있다. 자하는 시가 오히려 흰 물감을 가지고 채 색을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 되어 질문을 던진 것이다.

, 七練反. , 普莧反. , 呼縣反. 此逸詩也. , 好口輔也. , 目黑白分也. , 粉地, 畫之質也. , 采色, 畫之飾也. 言人有此倩盼之美質, 而又加以華采之飾, 如有素地而加采色也. 子夏疑其反謂以素爲飾, 故問之.

 

는 호대(胡對) 반이다. ‘회사(繪事)’라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후소(後素)’라는 것은 흰 바탕의 뒤에 온다[後於素]는 뜻이다. 주례』 「고공기(考工記)에 보면,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물감의 공이 있고 난 후의 일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먼저 흰 물감을 바탕색으로 바르고 그 위에 다섯 색깔의 채색을 입히는 것 을 일컬은 것이니, 사람에게 아름다운 바탕이 있고 난 후에야 문식(文飾)을 가할 수 있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 胡對反. 繪事, 繪畫之事也. 後素, 後於素也. 考工記: “繪畫之事後素功.” 謂先以粉地爲質, 而後施五采, 猶人有美質, 然後可加文飾.

 

 

주자는 주례』 「고공기의 문장을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의 맥락에 따 라 오석(誤釋)하였다. 문제가 되는 구절은 동관(冬官) 고공기(考工記) 상의 화회(畵繢)에 있는 것이다. ‘화회(畵繢)’는 본시 5가지 색깔을 배합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는 직종이다. 주자가 인용한 구절은 순수한 채색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제일 끝머리에 나오는 말이며 따라서 이 구절의 해석은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다: “대저 화회의 일은 흰 물감의 공(파이널 터치)을 최후로 한다[凡畵繢之事, 後素].”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주희조차도 ()’를 흰 천이나 흰 종이와 같은 아무 색깔도 칠하여 지지 않은 바탕소재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들의 치밀한 생각이 없는 통념과는 달리, 주자도 ()’를 어디 까지나 ()’ 즉 흰 물감으로 생각하였지 ()’ 즉 흰 비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흰 분가루로 먼저 바탕을 형성하고 그 위에 채색을 해나가는 과정으로 생각한 것이다. 아마도 그 그림모델이 분칠을 먼저 하는 벽화에 더 가깝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정약용조차도 ()’를 바탕천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주자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를 요즈음의 데생정도로 생각했다. 흰 물감으로 바탕 그림을 그리는 분본(粉本)으로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집주번역의 대표적인 노작인 성백효(成百曉)현토완역 논어집주(論語集註)(전통문화연구회)가 이 부분에 있어서 주자의 집주를 오역했을 뿐 아니라, 그 오역의 근거 위에서 소이위현혜(素以爲絢兮)’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고 번역했는데, 그것은 유감스럽지만 변명키 어려운 오역이다. 문제는 성 씨가 집주 문장 , 粉地, 畵之質也를 잘못 읽은 데서 비롯된다. ‘분을 바른 바탕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것이 곧 흰 비단은 아니다. ‘()’는 어디까지나 이며, 물감이다. ‘()’ 즉 비단이라는 소재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는 논어본문의 ()’도 주자의 집주를 따른다면 흰 비단으로 해석될 길이 없다. 평소 존경하는 성 선생님의 숙고가 있으시기를 빈다.

 

 

()는 반드시 충신(忠信)으로써 바탕을 삼으니, 그것은 그림그리는 일에 있어서 반드시 분가루 바탕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과도 같다. ‘()’는 촉발과도 같다. ‘기여(起予)’라는 표현은 능히 나의 지의(志意)를 흥기시켜 촉발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禮必以忠信爲質, 猶繪事必以粉素爲先. , 猶發也. 起予, 言能起發我之志意.

 

사현도가 말하였다: “자공은 배움의 길을 논하는 것으로 인하여 노래가사를 터득하게 되었고, 자하는 노래가사를 논하는 것으로 인하여 배움의 길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두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실 만하다.”

謝氏曰: “子貢因論學而知詩, 子夏因論詩而知學, 故皆可與言詩.”

 

양중립(양시)이 말하였다: “단맛은 조미를 받아들이고, 백색은 채색을 수용하며, 충신(忠信)한 사람은 예를 배울 수 있다이 말은 예기』 「예기(禮器)제일 끝머리에 나온다. 만약 그 바탕이 없다면, 예가 허망해져서 행하여질 길이 없다. 이것이 바로 회사후소(繪事後素)’그림 그리는 일은 흰 물감 바탕 이후의 일이다의 말씀이다. 공자께서 회사후소(繪事後素)’라 말씀하시니 자하가 예후호(禮後乎)’예가 제일 뒤로 오는 것이겠군요라고 이어 말했으니 공자님의 뜻을 잘 계승했다고 할 만하다. 인간의 언어표현의 배면까지를 터득할 수 없는 자라면 과연 이렇 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자하() 자공()이나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만약 대저 노래가사의 장구의 말엽에 마음을 얽매여 말장난이나 친다면 그 시를 배움이 비루할 뿐일 것이다. ‘기여(起予)’나를 일깨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학기에서 말한 바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를 계발시킨다는 뜻일 것이다.”

楊氏曰: “‘甘受和, 白受采, 忠信之人, 可以學禮. 苟無其質, 禮不虛行’. 繪事後素之說也. 孔子曰 繪事後素’, 而子夏曰禮後乎’, 可謂能繼其志矣. 非得之言意之表者能之乎? 賜可與言詩者以此. 若夫玩心於章句之末, 則其爲詩也固而已矣. 所謂起予, 則亦相長之義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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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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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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