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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최후의 전성기: 아이디어맨 옹정제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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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최후의 전성기: 아이디어맨 옹정제③

건방진방랑자 2021. 6. 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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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맨 옹정제

 

 

옹정제의 치세에는 세제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 이전까지 청의 세제는 명대에 만들어진 일조편법(一條鞭法)이었다. 그러나 명대에도 중기 이후부터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일조편법이 청대에 제대로 기능할 리 없었다. 항상 골치 아픈 문제는 사람에게 매기는 세금, 즉 정은(丁銀)이었다. 토지가 없는 가난한 농민들은 인두세를 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요역 위주라면 몸으로라도 때우겠는데 은납제(銀納制)에서는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더구나 지주나 관료, 부호 상인 들은 갖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이 부담해야 할 정은마저 요리조리 탈세했다. 이러한 정은의 손실분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전가되었으므로 백성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었다.

 

그동안 그런 모순을 알고도 고치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은은 인구를 대상으로 하므로 제대로 부과하려면 자세한 인구 조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차례 인구조사를 해보았으나 워낙 넓은 지역에 워낙 많은 인구인 탓에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해준 게 바로 1711년 강희제의 성세자생인정에 관한 조치였다. 이 조치는 1711년 이후의 인구에 대해서는 정은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므로 사실상 전국의 총 정은액을 고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은이 상수화되면 변수는 토지 하나뿐이다. 그래서 옹정제는 아예 정은을 토지에 대한 세금인 지은(地銀)에 통합시켜버렸다. 그래서 새 세제의 명칭은 지정은제(地丁銀制)였다.

 

지정은제가 도입된 덕분에 가난한 농민들은 부당하게 부과되는 정은으로 인한 고통을 한층 덜게 되었다. 그러나 지정은제는 단기적인 성과 이외에 역사적인 의미도 가진다. 중국 역사상 세법의 개정은 무수히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토지와 사람을 세금의 부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정신은 늘 변하지 않았다(그런 의미에서 모든 세제는 당대의 조용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정은제로 인해 사람이 통합됨으로써 근대적인 단일 항목의 세제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300년에 걸친 청 제국의 중국 지배 기간 중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말까지 약 130년간을 청의 전성기라고 말한다. 이 기간 동안 강희제와 건륭제(乾隆帝, 1711~1799)의 치하가 무려 120년에 이르기 때문에 이 시대를 강희ㆍ건륭 시대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그사이에 불과 13년간 재위한 옹정제는 짧은 기간에 청을 중국식 통일 제국으로 탈바꿈한 굵직한 치적을 남겼다.

 

 

서양인이 그린 황제 말을 탄 건륭제의 당당한 모습이다. 그림에서 서양식 분위기가 보이는데, 그 이유는 화가가 예수회 선교사인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이기 때문이다. 그는 랑세녕(郞世寧)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개명하고 중국에서 선교와 더불어 그림을 그렸다.

 

 

인용

목차

연표

십팔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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