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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부 깨어나는 역사 - 왕조시대의 개막, 새 역사의 출발점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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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부 깨어나는 역사 - 왕조시대의 개막, 새 역사의 출발점③

건방진방랑자 2021. 6. 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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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의 출발점

 

 

마지막으로 신라의 건국신화를 보자(건국될 당시에는 서라벌이라는 이름이었지만 편의상 신라로 통일하기로 하자. 초기 신라를 뜻하는 서라벌, 서벌, 사로, 사라 등의 이름은 모두 음차어이며 신라와 뿌리가 같다). 사실 연대로만 보면 박혁거세가 주몽보다 약간 앞선다. 그는 주몽보다 9년 앞선 기원전 69년에 부화했기 때문이다. 경주 부근에 있는 여섯 마을의 촌장들이 어느 날 하늘에게 왕을 내려달라고 빌었다. 기도를 마친 뒤 그들은 우물가에서 백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가보니 붉은 알이 하나 있었다. 촌장들은 이 아이가 장차 세상을 빛나게 하리라는 예감으로 혁거세(赫居世)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바가지 같은 알에서 나왔다 해서 박()씨 성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박씨는 중국에도 없는 한반도만의 토착 성씨다(박혁거세는 나중에 여섯 마을에 각각 이, , , , , 의 성씨를 내렸다고 하는데, 한자도 전래되지 않았던 당시에 신라가 과연 성씨를 썼는지는 의심스럽다. 신라에 한자가 널리 사용되는 때는 6세기 초 지증왕 때부터일 것으로 추측된다).

 

공식 연대에서는 박혁거세가 삼국의 건국자들 가운데 가장 앞서지만 그렇게 된 것은 순전히 고려시대에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金富軾)의 공로다. 경주 김씨에다 신라 중심주의적 사관을 가졌던 김부식은 신라의 역사를 잔뜩 끌어올려 정통성을 강조했으며, 삼국사기에서도 신라 본기가 맨 앞에 등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건 역사 왜곡일까?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중국 문명권에서 가장 먼 신라 지역에서 고구려와 백제보다 먼저 나라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는 믿기 어렵다. 더구나 후대에 전개되는 삼국의 초기 역사에서 신라가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상당히 뒤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라의 건국이 먼저라는 주장은 거의 신빙성이 없다(나중에 보겠지만 사실 삼국시대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하는 시기도 실은 신라가 나라꼴을 내기 시작한 법흥왕 이후, 6세기부 터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부식(金富軾)의 행위는 분명히 역사 왜곡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가도 아니고 문학적 상상력도 별로 없는 그가 신라의 초기 역사를 완전히 날조했다고 볼 수는 없다. 나중에 보겠지만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왕명을 받고 여러 학자들과 더불어 엄정 하게 서술한 정사(正史)이며, 비록 사대주의 사관으로 도배되어 있어 거슬리기는 해도 없는 역사를 꾸며낸 흔적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의 건국신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

 

 

우물이 낳은 부부 이 두 사진의 문 안에는 각각 우물이 하나씩 있다. 오른쪽은 박혁거세의 알이 나타난 나정(蘿井)이라는 우물이고, 왼쪽은 용이 내려와 그의 아내인 알영부인을 낳았다는 알영정(閼英井)이다. 비교적 사실적인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스토리에 비해 신라의 경우 신화적인 냄새가 훨씬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신라의 성립이 늦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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