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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사관(史觀)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사관(史觀)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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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

史觀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과거는 확실하다. 시간의 흐름은 단선적이므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이고 과거는 이미 있었던 일이 된다. 미래와 과거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상식에 의하면 그렇다. 하지만 미래는 그렇다 쳐도 과거도 그럴까? 흔히 미래는 알 수 없으나 과거는 다 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게 사실일까?

 

안다는 것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진다. 과거에 관한 인식이 누구나 똑같다면 과거를 다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과거는 미래에 못지 않게 미지의 영역이다. 과거를 바라보는 눈, 역사를 보는 관점을 사관이라고 한다.

 

 

19091026일 만주의 하얼빈 역에서 조선의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이라는 청년이 일본의 거물 정객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를 권총으로 사살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지로 병합하려는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조선 민족은 이 사건을 의로운 쾌거로 해석했고, 오늘날까지 안중근을 의사(義士)로 부르며 존경하고 있다. 그 반면에 메이지유신의 핵심 인물이며 일본의 총리를 몇 차례나 지낸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건국 영웅이나 다름 없었으므로 일본 민족은 안중근을 테러범으로 규정했다.

 

여기서 어느 관점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조선과 일본의 관점은 물론이고 제3자의 관점이라 해도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다만 사관이 다르면 역사 해석이 달라진다고만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런 사관의 차이는 같은 민족 내부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안중근의 저격 사건이 있은 지 꼭 70년 뒤인 19791026일 대통령 박정희(朴正熙, 1917~1979)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 1926~1980)에게 암살을 당했다. 박정희 지지자들은 이 사건을 부모나 임금을 죽일 때 사용하는 시해(弑害)라는 말로 표현했다. 공화국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그 반면 김재규를 포함한 박정희 반대자들은 의거(義擧)라고 주장했다. 결국 박정희는 시해되었고, 그 사건은 의거가 되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박정희 지지자들의 논리가 옳은 것은 아니다.

 

 

 

 

이렇듯 역사는 지나간 과거에 속하지만 한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행위와 이해관계가 엇갈려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인력을 동원했고 그 건설 과정에서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었으나 오늘날 그들의 후손들은 피라미드 덕분에 해마다 막대한 관광 수입을 올린다. 7세기 중국 수나라의 황제인 양제는 화북과 강남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국력을 탕진하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려, 이후 고구려에게 패배하고 멸망의 비운을 겪었다. 하지만 그 대운하가 없었다면 후대에 중국의 번영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관과 역사의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 사관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 없앨 수도 없지만 역사의 평가는 대체로 특정한 시대의 관점이 반영되므로 오히려 역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걸핏하면 되살아나 민족 감정을 건드리곤 하는 한일 고대사의 해묵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고대에 한반도 남부 가야 지역에 한반도와 일본의 교역을 중재하던 무역기지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대적 관점에서 무리하게 평가하려 하면 현재의 국가 이데올로기가 개재되게 마련이다. 그 결과 고대에는 한국이나 일본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그 기지를 통해 한반도 문명이 일본으로 전래되었다고 주장하고, 일본은 그 기지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강변하는 우스꽝스러운 대립이 생겨난다.

 

과거에 무인도였던 독도가 지금 누구 땅이냐는 문제에 역사를 끌어들이는 것도 역사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근대적 개념의 영토국가가 성립하기 이전 무인도였던 곳에 대해 역사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어느 나라 고지도에 어디 소유라고 기재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따라서 독도의 소유권은 역사적 문제가 아니며, 역사와 별개로 관련 국가들의 현재적 입장에 의거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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