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건국신화②
또 하나의 나라가 한반도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으니 또 하나의 건국신화가 필요할 것이다. 과연 가야라는 나라도 역시 출발점은 신화다. 『삼국사기』에는 가야의 건국자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를 이름밖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삼국유사』에는 그의 신화가 기록되어 있다.
김수로의 신화는 건국신화의 기본 코스를 충실히 따르는데, 박혁거세와 김알지의 신화를 섞어놓은 것과 비슷하다. 기원후 42년 가야 땅에 사는 아홉 부족의 족장들이 하늘의 명을 받고 산에 올라가 왕을 내려달라고 빌었다. 거북에게 왕을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는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으니 기도 방법치고는 좀 괴상한 것이었지만 과연 효험은 있었다. 하늘에서 금빛 알이 여섯 개 내려왔는데, 거기서 나온 여섯 명이 각기 가야 6국의 왕이 되었다. 김수로는 그 중 맏형으로 금관가야의 건국자다.
김수로 신화의 특이한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왕위에 올라 기원후 199년까지 무려 157년간 나라를 다스렸다는 점이다. 아무리 2세기가 미스터리의 세기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신화라 하겠다. 앞서 단군신화의 경우에서처럼 김수로의 오랜 재위 기간은 아마도 후계자들이 건국자의 이름으로 왕위를 계승했다는 사실이 신화적으로 기록된 결과일 것이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그의 아내다. 김수로는 멀리 서역의 아유타라는 나라에서 온 허황옥(許黃玉, ?~188)이라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아유타는 놀랍게도 인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녀 역시 남편처럼 오래 살아 기원후 189년까지 금관가야의 왕비를 지내다가 157세로 죽었다고 한다.
아유타가 실제로 인도에 있는 나라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허황옥이 서쪽에서 배를 타고 온 것만은 분명하다【아유타에 관해서는 다른 추측도 가능하다. 『삼국유사』의 지은이인 일연(一然, 1206~89)은 김수로 신화를 『가락국기(駕洛國記)』라는 책에서 읽었다는데, 이 책은 11세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승려가 쓴 것이라고 한다(물론 지금은 전하지 않는 책이다). 그 승려가 말한 아유타는 혹시 오늘날 타이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승려였던 만큼 그는 아마 허황옥이 불교의 나라에서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불교는 인도에서 생겨났지만 오히려 인도에서는 얼마 퍼지지 못하고 동쪽으로 가서 동남아시아와 극동으로 전래되었다. 타이는 예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불교 국가다. 게다가 타이에는 아유타야라는 나라가 있었다. 비록 14세기에 세워진 나라이지만 그 이름의 역사는 오래 되지 않았을까? 또 중국 역사서에는 아유타야가 섬라(暹羅)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중국어 발음은 신라(新羅)와 거의 같다. 신라를 나라 이름이 아니라 지역명으로 보면 가야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까마득한 옛날에도 섬라와 신라는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은 신라의 다문화적 성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또한 김수로가 알에서 나왔다는 것은 가야의 외부에서 온 지도자라는 뜻일 터이다. 따라서 김수로는 박혁거세의 경우처럼 부부가 모두 외지인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만 김수로의 출신지는 분명하지 않고 허황옥의 고향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그들은 동향인이 아니었을 것이다(반면 박혁거세의 경우는 부부가 동향 출신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