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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종횡무진 한국사, 2부 화려한 분열 - 4장 진짜 삼국시대, 제2의 건국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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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2부 화려한 분열 - 4장 진짜 삼국시대, 제2의 건국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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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건국

 

 

하지만 지증왕의 개혁 드라이브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과거로부터 전해지던 악습인 순장의 풍습을 폐지하는데, 이건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장기기증운동에 참여한 것에 해당하는 충격적인 조치다. 신라의 순장 풍습은 국왕이 죽었을 경우 남녀 다섯 명씩을 함께 매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철저했던 시기에 지증왕이 그런 결심을 굳힌 것은 실로 대단히 용기있고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게다가 그는 소를 이용하여 논밭을 경작하는 우경(牛耕)을 최초로 도입하는가 하면 이사부(異斯夫)를 시켜 우산국, 즉 지금의 울릉도를 영토화하기도 했으니 다방면에서 획기적인 개혁을 이룬 팔방미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바탕에는 신라가 시대에 크게 뒤처졌다는 자각이 있었으리라.

 

개혁과 재건국의 열기는 그의 아들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540) 대에 와서도 전혀 사그러들지 않는다. 지증왕의 개혁이 멀리서 바람에 실려오는 중국 문명의 냄새를 맡은 것이라면 법흥왕은 본격적인 중국화의 개혁을 추진한다. 520년에 율령을 제정하고 관직의 서열을 정한 게 그것이다. 이어 이듬해에는 직접 첨단 문명을 직수입하는 루트를 개척한다. 백제의 사신이 중국 남조의 양나라에 갈 때 신라의 사신을 딸려보낸 것이다. 양나라의 역사서인 양서(梁書)에는 당시 백제 사신이 신라 사신의 통역까지 해주었다고 전하니, 이것 역시 그 무렵부터 신라가 문자(한자)를 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추측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이렇게 내부를 정비한 뒤 법흥왕은 대외 사업으로 손을 뻗친다. 고대국가의 성장 지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영토 확장인데, 신라로서 영토를 늘리려면 남진밖에 없다. 그래서 남쪽의 가야를 정복하는 프로젝트가 입안된다. 522년 법흥왕은 대가야와 통혼을 이용해서 동맹을 맺어 기반을 구축한 다음, 10년 뒤에는 본가야(금관가야)를 복속 시켰다. 물론 말로 안 되면 군사력을 동원해야겠지만,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본가야의 왕인 김구해(金仇亥)가 식솔들과 보물들을 가지고 함께 투항해 온 덕분에 복속 작업이 한결 쉬워졌다. 손대지 않고 코를 푼 법흥왕은 구해의 아들 김무력(金武力)에게 관직을 주어 후대하는데, 그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장차 신라가 반도의 주인으로 떠오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김수로왕의 후손인 김무력은 신라로 귀화한 이후 신라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칠 뿐 아니라 나중에는 삼국통일의 주역이 될 김유신(金庾信, 595~673)이라는 손자를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당대 법흥왕의 최대 개혁 성과는 불교의 수입이다. 사실 불교는 이미 수십 년 전인 눌지왕(訥祗王) 때부터 신라에 들어와 있었다. 당시 신라의 시각에서 유일한 선진국은 신라를 속국으로 거느리고 있던 고구려였으므로 고구려로부터 선진문물을 수입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무렵 고구려의 승려인 묵호자(墨胡子)가 신라에 와서 왕실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불교를 보급하고자 했는데, 아마 그의 전도 사업은 신통치 못했던 듯하다. 그러나 눌지왕의 딸이 중병에 걸렸을 때 묵호자가 향을 사르고 불경을 읊어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적어도 신라 왕실에서는 이때부터 불교를 믿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세를 위한 보험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내세에서의 삶을 대비해 병사나 하인을 순장시키는 것은 고대 세계의 보편적 관습이었다. 하지만 아주 지독한 지배자가 아니라면 대개 실제 사람을 순장하지 않고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진흙 인형을 묻었다. 중국 진 시황제의 병마용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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