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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3부 통일의 바람 - 3장 통일의 무대, 시나리오 1 약한 고리 끊기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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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3부 통일의 바람 - 3장 통일의 무대, 시나리오 1 약한 고리 끊기③

건방진방랑자 2021. 6. 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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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1 약한 고리 끊기

 

 

그제서야 비로소 다급해진 의자왕(義慈王)은 달솔(백제 16관등중 제2관등.)인 계백(階伯)에게 5천 결사대를 주어 신라군을 막게 하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계백이 전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가족을 모두 자기 손으로 죽인 것은 그런 백제의 운명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런 각오 덕분에 그는 황산벌(지금의 논산군 연산읍)에서 백제 병력의 열 배인 신라 병력을 상대로 네 차례 싸워 모두 이기는 탁월한 전과를 올리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었다. 백제에 대한 신라군의 두려움만 없앤다면 승산은 단연 신라 측에 있다. 이 점을 감지한 김유신의 부관 김흠순은 아들 반굴을 전사시켜 사기를 고취하려 했고, 그에 뒤질세라 또 다른 부관 김품일도 열여섯 살의 아들 관창을 윽박질러 단기로 돌입하게 해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김유신의 따가운 시선을 돌려놓았다. 두 젊은이의 피로 사기를 회복한 신라군에게 백제의 결사대가 무너지면서 백제의 동쪽 전선은 붕괴했다그러나 이 전투가 끝나고 서둘러 당군과 합류한 김유신은 소정방에게 예정된 기일에 늦었다는 이유로 호된 꾸지람부터 들어야 했다. 김유신이 황산벌의 처절한 전투를 보고하지만, 101의 병력으로 고전했다는 것 자체가 소정방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까탈스럽게 나오는 소정방과 발끈한 김유신, 그러나 자칫 분업이 깨어질까 걱정한 소정방의 부관이 서둘러 중재에 나서서 무마시킨다. 소정방은 아마 실제로 그런 불만도 있긴 했겠지만, 트집을 잡아 신라 길들이기를 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를 상대하는 서부 전선은 더 엉망이다. 백강에 들어온 뒤 당군은 신라가 황산벌에서 질척대고 있는 동안 거칠 것 없이 사비성으로 진격했다. 의자왕(義慈王)은 남은 병력을 모두 웅진강(백강의 지류)에 집결시켰지만 그건 적군이 백강에 들어오기 전에 했어야 할 일이었다. 무난히 강변 상륙에 성공한 당군에게 백제군은 첫 도전을 해보았으나 무려 1만 명 이상이 도륙당한다. 참혹한 패전 소식에 넋을 잃을 새도 없이 의자왕이 태자인 부여효(扶餘孝, 백제 왕실의 성은 부여씨다)를 데리고 옛 도성인 웅진성으로 도망치자 둘째 아들 부여태가 멋대로 왕을 자칭하며 도성 수비에 나선다. 하지만 나라 잃은 왕실이 존재할 수는 없다. 결국 셋째 아들 부여융(扶餘隆, 615~682)이 성문을 열고 항복했고 며칠 뒤인 660718일에 의자왕(義慈王)이 태자와 함께 사비성으로 와서 항복하니, 이것이 백제의 공식적인 멸망이다.

 

 

 꽃이 떨어진 절벽 의자왕(義慈王)3천 궁녀가 빠져 죽었다는 낙화암의 모습이다. 물론 그것은 백제의 멸망이 의자왕의 사치와 방탕 때문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꾸며진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이 절벽에서 몸을 날린 궁인들이 상당수 있었을 법하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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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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