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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4부 한반도의 단독정권 - 3장 단일왕조 시대의 개막, 후삼국의 쟁패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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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4부 한반도의 단독정권 - 3장 단일왕조 시대의 개막, 후삼국의 쟁패⑤

건방진방랑자 2021. 6. 1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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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의 쟁패

 

 

927년 견훤은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느닷없이 신라의 왕궁으로 쳐들어갔다. 오로지 왕건만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경애왕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오히려 포석정에서 질탕하게 놀고 있던 참이었다. 손쉽게 왕궁을 접수한 견훤은 병사들에게 약탈 허가를 내주었으며, 후궁 한구석으로 달아나 숨은 경애왕을 찾아내서 다시는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못하게 했다(핍박해서 자결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으로 일단 신라는 멸망한 것이지만 고려가 있는 한 견훤으로서는 신라를 합병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신라 지역을 맡아 관리할 대리인으로 김부(金傅)라는 자를 세우는데, 그가 바로 신라의 56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 될 경순왕(敬順王, 재위 927~935)이다견훤은 경순왕을 권지국사(權知國事), 나라일을 맡은 대리인이라는 신분으로 책봉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 경순왕은 정식 왕이 아니다(오늘날 도지사道知事라는 직함에서도 보듯이 권지국사의 맡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라는 55대 경애왕이 죽은 927년에 멸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권지국사란 원래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기 전에 임시로 왕의 일을 맡는다는 뜻에서 생겨난 직함이다. 따라서 비정통적인 왕위 승계가 이루어졌을 때 이 직함이 사용되는데, 왕건도 처음에는 권지국사였고, 나중에 보겠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이성계나 중종, 선조 등 정상적인 계통을 밟지 않은 왕들이 초기에 권지국사의 칭호를 썼다. 연호와 더불어 한반도 왕조들이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경순왕의 성이 김씨라는 점이다. 그는 경애왕의 외척 아우뻘이 되지만, 견훤이 굳이 김씨를 대리인으로 발탁한 이유는 뭘까? 말할 것도 없이 박씨 세력이 왕건과 결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신라 궁성을 유린하는 작전에서 견훤은 김씨 세력의 내응을 받은 게 아니었을까? 당시 견훤은 지금의 경북 영천을 공격하다가 경주까지 단숨에 진군하여 왕궁에까지 진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영천에서 경주까지는 무려 백리 길이다. 아무리 신라의 국력이 약해졌다 하더라도 신라 영토 안에서 먼 길을 달려와 가장 경비가 삼엄한 왕궁을 제 집 드나들듯 마음대로 유린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었을까? 게다가 아무리 경애왕이 신통치 못한 인물이었다 해도 저승사자 같은 견훤이 궁성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듯 태평하게 포석정 놀이를 할 수 있었을까? 후백제군의 기습이 가능했던 데는 필경 박씨 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긴

김씨 세력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을 것이다.

 

 

 놀이터에서 죽은 왕 신라 왕실의 놀이터였던 포석정이다. 경애왕이 여기서 술잔을 띄우며 놀고 있을 무렵 견훤의 군대가 들이닥쳤다. 이로써 315년에 걸쳐 잠깐 경주를 지배했던 박씨 정권은 끝나고 다시 김씨 정권이 들어선다. 그래봤자 경순왕을 마지막으로 신라 사직이 끝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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