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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5부 국제화시대의 고려 - 3장 안정의 대가, 전성기 코리아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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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5부 국제화시대의 고려 - 3장 안정의 대가, 전성기 코리아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1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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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코리아

 

 

그러나 좋게 말하면 다원화지만 나쁘게 말하면 고유한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말도 된다. 전성기의 고려 사회에서 크로스오버와 퓨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곧 당시에 그만큼 지배적인 이념이 없었다는 뜻이다. 문묘종사를 제도화했던 현종이 독실한 불교도이기도 했고 궁궐에서 도교 제사도 지냈다는 사실이 바로 그런 점을 말해준다(물론 그것 역시 왕건이 물려준 유산이다). 이후의 국왕들도 이념적으로 잡탕을 즐긴 점에서는 마찬가지인데, 대표적인 경우가 예종(睿宗, 재위 1105 ~ 22)이다. 그는 최초로 경연(經筵)을 도입했고, 팔관회에서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읊었으며, 최초의 도관(道觀)인 복원궁을 건립했으니 가히 퓨전의 정수라 할 만한 군주다경연이란 신하가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의하는 걸 말하는데, 조선시대에 들어 더욱 확고한 제도로 자리잡게 된다. 나중에 보겠지만 조선 초기에 경연은 왕권을 제약하는 요소였으나 후기에는 왕권 강화의 한 수단으로 사용된다(특히 영조가 전매특허처럼 써먹었다). 또한 도이장가1120년에 예종이 팔관회에 참가해서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과 김락의 두 장수[二將]를 추도하며 발표한 이 두 가요다(그들은 927년 왕건이 대구에서 후백제와 싸울 때 왕의 목숨을 구하고 전사했다). 마지막으로 도관이란 도교 사원을 가리킨다. 이렇게 예종은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에 심취하고 도교를 장려한 유ㆍ불ㆍ선의 삼위일체격인 군주였는데, 물론 의식적으로 통합을 추진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세 가지 이념 중에 가장 잠재력이 큰 것은 역시 유학이다. 이는 특히 문종의 국가 경영 구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최충(崔沖, 983~1068)을 문하시중(국무총리 격)으로 발탁하고 유교적 국가 체제의 마무리를 맡긴다. 과연 왕이 기대한 대로 최충은 기존의 율령을 정비해서 형법을 체계화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어 임무를 완수했으며, 그와 함께 공직 생활도 마무리하고 한반도 최초의 사립학교인 9재학당(九齋學堂)을 열어 유학 이념의 전파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한 앞에서 말했듯이 전시과(田柴科)를 최종적으로 개정해서 고위직(5품 이상) 관료들에게 수조권이 세습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문종 때인데, 이것 역시 유학 이념에 입각한 체제 정비작업의 일환이다. 유교적 국가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료들의 재정적 안정이 긴요하니까.

 

그런데 경정된 전시과(田柴科)가 완벽하게 기능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실 토지를 측량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면 전시과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물론 전통적인 토지 단위인 결()이 있지만 문제는 객관적인 단위가 못된다는 점이다. 원래 1결은 소 한 마리가 나흘간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이라고 정해져 있었으나, 이런 기준이라면 아무래도 주먹구구식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국가 재정의 총체라 할 토지를 객관적으로 측량하는 단위가 없다면 전시과(田柴科)는커녕 조세 수입에도 차질이 생긴다. 이런 점을 시정하기 위해 문종은 1069년에 양전보수법(量田步數法)을 제정한다. 말 그대로 토지를 걸음[]으로 측량한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1결은 사방 33보의 토지로 확정되었는데, 자가 없었던 시절에는 그런 대로 최선의 토지 측량법이라 할 수 있겠지만 누구의 보폭으로 재느냐는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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