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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1부 불모의 세기 - 4장 되놈과 왜놈과 로스케 사이에서, 개혁 없는 개화의 결론③: 임오군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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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1부 불모의 세기 - 4장 되놈과 왜놈과 로스케 사이에서, 개혁 없는 개화의 결론③: 임오군란

건방진방랑자 2021. 6. 22.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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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없는 개화의 결론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개화 정부가 서양식 군제(실은 그것을 모방한 일본과 청나라식 군제)로의 개편을 서두르자 결국 문제는 터지고 만다. 18814월 정부에서는 별기군(別技軍)을 창설하고 일본인 교관에게 훈련을 맡겼다(그래서 왜별기倭別技라고도 불렀다). 이에 가장 불만이 큰 세력은 물론 이해 당사자인 구식 군대지만 그들은 일단 참았다. 그러나 정부는 무심하게도(?) 그 해 말에 5군영을 폐지하고 무위영(武衛營)과 장어영(壯禦營)2영으로 축소 개편한다. 구조조정으로 동료들이 실업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도 구식 군대는 또 참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정부가 별기군에게는 대우를 잘해주면서도 구식 군대에게는 마냥 급료를 체불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18826월 오랜만에 선혜청에서 급료로 나누어 준 양곡에 모래가 섞인 것을 보는 순간 마침내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폭발했다. 이것이 임오군란(壬午軍亂)이다.

 

선혜청 담당관인 민겸호를 살해한 것은 분노한 군인들의 성에 차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사건을 정식 반란으로 만들었다. 내친 걸음에 그들은 민씨 일파와 개화파 인물들을 잡아죽이기로 하는 한편 대원군에게 차기 정권을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대원군은 짐짓 자제하라고 권하지만 속으로는 반갑기 그지없는 마음이다. 그 눈치를 알아차린 군인들은 대원군의 집권에 최대 걸림돌인 일본 공사관과 창덕궁을 기습했다. 두 기관의 책임자인 일본 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민비(閔妃)가 취할 길은 단 하나, 줄행랑뿐이다. 하나부사는 서둘러 인천으로 도망쳤고 민비는 황급히 궁성을 빠져나와 장호원에 있는 민응식(閔應植, 1844~?)이라는 친척의 집으로 대피했다. 이렇게 재집권의 기반이 닦인 뒤에야 대원군은 궁에 입성했다이 과정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분노한 군인들의 타깃이 민씨 정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민비는 자신이 도망쳐도 추격해 올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그녀는 교활한 꾀를 생각해낸다. 궁성을 떠나면서 남편 고종(高宗)에게 자기가 죽었다고 발표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을 더 이상 뒤쫓지는 않을 테니 단수 높은 잔머리지만 일국의 국모에게 그런 코미디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녀가 장호원에 숨어 있는 동안 대원군은 아들 부부의 터무니없는 사기극을 그대로 믿고 며느리의 장례식을 거행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민비를 숨겨준 민응식이 그 뒤 스타로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19세기의 사관학교 별기군이 훈련하는 모습이다. 처음에 모집된 인원은 지원자 80명이었는데, 당장 사용할 군대라기보다는 장교 육성을 위한 일종의 사관학교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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