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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1부 불모의 세기 - 4장 되놈과 왜놈과 로스케 사이에서, 내전의 국제화③: 동학농민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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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1부 불모의 세기 - 4장 되놈과 왜놈과 로스케 사이에서, 내전의 국제화③: 동학농민군

건방진방랑자 2021. 6. 2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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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의 국제화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사건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만큼 키운 것은 정부의 태도다.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李容泰, 1854 ~ ?)는 안핵(按覈)하기는커녕 봉기 농민들을 동학교도로 몰아붙였다. 동학(東學)은 실정법상 금지되어 있으니까 일단 처벌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그것은 타오르는 농민들의 기세에 기름을 끼얹은 결과가 되고 만다(물론 농민들 중에 동학교도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봉기의 근본 원인은 종교 때문이 아니었으니 농민들이 격분한 것도 당연하다). 이제 분노의 화살은 지방의 탐관오리만이 아니라 중앙정부에게도 겨누어졌고, 농민 시위대는 농민군으로 탈바꿈했다. 농민군 지도자인 전봉준, 김개남(金開南, 1853 ~ 95), 손화중(孫華仲, 1861 ~ 95)동학(東學)의 전통적 이념인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를 일으키고 백성을 보호하자)은 물론 축멸양왜(逐滅洋倭, 서양과 일본을 몰아내자)라는 정치적 슬로건까지 거리낌 없이 내세운다. 게다가 농민군은 531일에 전주성을 함락시킴으로써 그 슬로건을 실현할 주체적 역량이 있음을 과시했다.

 

그제야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막상 정부가 할 일은 별로 없다. 그저 본국이나 다름없는 청나라에 SOS를 쳐서 지원과 해결을 부탁하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일본은 청나라와 톈진조약을 맺어두었다. 그래서 사태는 제2라운드로 접어든다. 이제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은 조선 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청나라와 일본의 현안이 되었다.

 

 

 동학농민군의 상황도 톈진조약은 일본이 조선의 내정에 개입하기 위한 교묘한 장치였다. 민비(閔妃) 정권이 내란 진압을 위해 외국군을 끌어들이자 텐진조약이 발동해 일본도 참여하게 된다. 청군이 전장 부근인 충청도 아산으로 간 데 비해 일본군이 인천으로 곧장 들어온 것은 일본의 진의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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