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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중국으로 몰려오는 하이에나들: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천국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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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7장 중국의 화려한 시작과 비참한 종말, 중국으로 몰려오는 하이에나들: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천국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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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천국

 

 

이리하여 2차 아편전쟁이 벌어졌는데, 지난번에도 손쉽게 이겼지만 이번에는 크림 전쟁에서 동지로 싸운 프랑스와 손잡기까지 했으니 승패는 볼 것도 없었다. 1857년에 연합군은 광저우를 점령하고 이듬해에는 베이징의 관문인 톈진을 함락시켰다. 할 수 없이 청 조정은 다시 불평등조약인 톈진 조약을 맺게 되는데, 여기에 러시아가 중재를 자임하고 나섰다. 프랑스와 러시아까지 참여했으니 난징 조약 때보다 입이 두 개나 늘었다. 청 조정이 조약에 불만을 품고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재차 군대를 동원해 굴복시키고 베이징 조약을 맺었다. 텐진조약으로 베이징에 외교 사절을 주재시킬 수 있게 되었고 그리스도교 포교의 자유를 얻었던 서구 열강은 베이징 조약을 통해 더 많은 개항장과 전쟁 배상금까지 얻어냈다.

 

열강과 조약을 체결할 때마다 불평등이 심화되자 청 조정의 무능함은 이제 백성들도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려면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었으므로 백성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다. 사회적 불만과 불안이 팽배한 가운데 중국 역사상 가장 장기간에 가장 대규모인 반란이 일어났다. 바로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이다. 이 운동은 2차 아편전쟁이 벌어지기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청 조정이 전쟁에 전념하지 못한 것은 이 사건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교도인 홍수전(洪秀全, 1814~1864)은 자신이 조직한 상제회(上帝會, 옥황상제의 상제인데, 그리스도를 상제라고 표현한 것이다)가 관헌의 탄압을 받자 1850년 광시 성에서 봉기했다. 반란 세력은 민중의 전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배만반청래(排滿反淸)의 구호를 드높이 외쳤다. 침략하는 서구 열강보다 청 조정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구호가 먹힌 탓인지, 정부의 힘이 약한 탓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금세 세력을 크게 떨쳐 난징을 점령하고 1853년에 태평천국이라는 나라를 수립했다.

 

태평천국은 그 이름에 걸맞게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국가를 지향했다. 신분 차별을 철폐하자는 것까지는 여느 반란에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요구였으나, 금욕적인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고 사유재산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이 점에서 태평천국운동은 그리스도교적 요소와 19세기 초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이념을 연상시키지만, 실은 중국적 전통도 강했다. 특히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느님의 소유)한 다음 각 지방의 토지를 아홉 개로 나누어 경작자들이 똑같이 경작하도록 한 이른바 천조전무제(天朝田畝制), 전국을 장악하지 못한 탓에 끝내 실천에 옮겨지지는 않았으나 수천 년 전 주나라 시대의 정전법(井田法)을 원용한 것이었다. 그 밖에 행정제도에서도 주의 예법을 모방한 게 많았다. 역시 주나라는 중국 한인들의 영원한 정신적 고향이었다.

 

 

반란인가, 건국인가 청 조정은 내부의 반란마저도 제압할 힘이 없었다. 한족의 왕조를 꿈꾼 태평천국군은 신을 뜻하는 노란색 기치를 내세우고 붉은색 군복을 입었는데, 한 말기의 황건과 명 말기의 홍건을 합친 의미일지도 모른다. 40년 뒤 조선의 동학농민군도 태평천국군처럼 외세 배척을 내세웠다가 부패한 정부가 외국군을 끌어들임으로써 외세에 의해 진압되는 비운을 겪었다.

 

 

인용

목차

연표

십팔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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