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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 삶을 만나다,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 2장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기, 이문열의 칸트적 ‘선택’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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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만나다, 제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 - 2장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기, 이문열의 칸트적 ‘선택’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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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칸트적 선택

 

 

장씨 부인의 선택을 이문열은 마치 그녀의 주체적인 선택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단이라는 겁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그 누구도 그녀에게 문장 배우기를 포기하고 가사를 배우라고 명령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장씨 부인의 두 번째 선택이 자율적 선택이라는 이문열의 착각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율의 윤리학을 표방했던 칸트칸트는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도 철학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상가이다. 그는 경험을 강조했던 경험론적 전통과 이성을 강조했던 합리론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종합한다. 또 삼대 비판서를 씀으로써 칸트는 과학(), 윤리(), 예술()이란 세 영역을 성공적으로 분리해낸다. 주요 저서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도덕형이상학원론등이 있다의 논의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의 자율의 윤리학은 장씨 부인의 선택 혹은 이문열의 착각과 유사한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네 의지의 준칙에 의거하여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편적 입법자로서 간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해야만 한다.

도덕형이상학원론(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어떤 사태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해야만 합니다. 칸트는 우리 자신이 마치 보편적 입법자가 된 것처럼 행위를 결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우리의 행동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허용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령(Kategorische Imperativ)정언명령은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그 누구도 모순을 지적할 수 없는 도덕법칙의 명령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어떤 경우에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 정언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가언명령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 명령이다. 가령 만일 네가 시험에 합격하고 싶다면, 너는 하루에 8시간씩 공부해야만 한다는 것이 가언명령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즉 무조건적인 도덕 명령입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활동을 입법 활동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입법 활동이란 사실 모종의 공동체를 전제해야만 의미를 갖는 활동입니다. 국회에서의 입법 활동이란 흔히 다수 국민의 여론으로 정당화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보편적 입법의 원리를 통해 구성된 칸트의 도덕법칙이란 것도 그의 순진한 생각처럼 완전히 자율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한 보편성이란 대개 공동체의 규칙과 암암리에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의 정언명령이 자유로운 주체의 고독한 내면에서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이제 우리는 장씨의 선택이 칸트의 정언명령을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도 자신이 보편적 입법자인 것처럼 공부를 포기하고 가사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제 일체의 외적인 간섭 없이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자신의 도덕법칙을 만듭니다. ‘이어지는 세상이 없다면 무엇을 남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니 그 이상, 아내로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어머니로서 보다 나은 세상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장씨 부인의 두 번째 선택을 자율적 선택이라고 이문열이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문열은 직ㆍ간접적으로 칸트적인 소설가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는 장씨 부인의 선택을 너무 순진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씨 부인이 만든 도덕법칙은 어떤 공동체와도 무관한 순수한 것이었을까요? 혹은 모든 시대의 여성에게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것이었을까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장씨 부인의 선택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고, 이문열이란 소설가의 착각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장씨 부인의 두 번째 선택에서 여러분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선택에 앞서 그녀가 숙고해서 만든 도덕법칙이란 것은 결국 조선 시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부여된 역할 규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끝내는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법칙이었다는 점에서, 따르지 않을 수도 있는 진정한 선택의 대상은 결코 아니었지요. 그런데도 그녀는 마치 스스로 행위 법칙을 만든 것처럼 허영을 부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이전에 자신이 선택했던 것을 이제는 부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일종의 종교적 고별 의식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점에서 그녀의 허영은 조선 시대 여성의 왜곡된 삶에 대한 하나의 초상화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그녀가 애써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이미 조선 시대에 통용되던 가치 체계, 즉 자신에게 내재한 초자아의 명령을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녀의 선택이 비록 자율적 선택의 모습을 띠더라도 그것은 결국 강요된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첫 번째 선택, 즉 남성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하려고 했던 선택이야말로 더 비범했던 것이 아닐까요? 비록 그것이 그녀에게 극심한 갈등과 고뇌를 제공했을지라도 말입니다. 어쨌든 두 번째 선택으로 그녀는 비범한 삶을 마무리하고, 평범한 그러나 고상하다고 인정받을 만한 삶으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그녀는 조선 시대 양반집 여성으로서의 안정된 삶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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