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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자유(Freedom)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자유(Freedom)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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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Freedom

 

 

일상생활에서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다. 범죄를 저질러 구속되든 사랑의 포로가 되어 구속되든 구속은 자유와 대립된다. 그러나 철학에서 자유의 반대는 필연이다. 자유를 뜻하는 영어(free), 프랑스어(libre), 독일어(frei)의 형용사들은 모두 …… 이 없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근거가 없음, 즉 우연을 뜻한다. 자신을 얽매는 것이 없으니까 자유롭다. 한자어[自由]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뜻이니까 자신이 자신의 근거가 된다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는 항상 ……이 없어야만 도달하는 상태”, …… 으로부터의 자유였다.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편견과 억측이 없어야 자유롭다고 보았으며, 스토아 학파는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전반적으로 고대의 사유에서는 인간의 원래 상태를 자유로 가정하고 자유를 가로막는 장애 요소를 극복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중세에 들어오자 자유의 개념이 달라진다. 신은 그 정의상 모든 것의 창조자이며 기획자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 만물은 신의 피조물이므로 신의 의지를 구현하고 있다. 신의 뜻을 따르는 것 이외에 자유를 생각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은 전통적인 자유의 개념과 어긋난다. 어떻게 할까?

 

여기서 중세의 신학자들은 교묘한 수단을 생각해냈다. 신의 차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지만 - 따라서 결정론을 벗어날 수 없지만 - 동시에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에게서 받은 자유를 이용해 신의 뜻을 따른다. 자칫 모순을 빚기 쉬운 신앙과 자유의지는 이런 식으로 양립한다. 자유와 필연은 대립하지만 필연 속에서도 자유는 존재한다.

 

 

이렇게 결정론의 제약 속에서 자유를 찾아내는 발상은 신앙의 힘이 약화된 근대에도 이어졌다. 다만 이제는 신의 예정이 아니라 이성의 법칙성이 필연으로 기능한다. 자연계에는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필연적인 인과율이 작용한다. 여기서 자유는 인과율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그 법칙을 이해하고 필연성에 따를 때 얻어진다. 즉 인간은 이성적인 앎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근대 이성이 19세기까지 순조로이 발달하는 동안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폭은 점점 더 커졌다. 이 시기에 민주주의가 탄생하고 정치적 자유가 보편화된 것은 그런 지적 배경과 맥을 같이한다. 자연계에 인과율의 필연성이 관철된다 해도, 또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 해도 결정론과 숙명론이 인간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다.

 

이런 자유의 개념칸트(Immanuel Kant,1724~1804)와 헤겔(Hegel, 1770~1831)을 통해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에게 전해졌다. 마르크스는 자유를 역사적 범주로 파악한 헤겔의 사상을 이어받아 자유=진보의 관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또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발전은 자연법칙과 거의 같은 정도의 역사적 필연성을 가지지만, 그것은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확장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이 증대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넓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이성의 힘에 대한 맹신에 제동이 걸리면서 자유의 색깔은 크게 달라졌다. 낙관주의의 시대는 끝났고 더 이상 장밋빛 미래는 없다. 그 전까지 자유는 필연의 제약 속에서도 충분히 만개할 수 있는 화려한 꽃이었으나 이제는 필연과 결정론의 덫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자유의 가능성을 닫아버린 필연은 두 가지다. 우선 자유는 긍정적인 가치가 아니라 인간에게 숙명처럼 지워진 부담이 되었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과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존재론에서 모티브를 얻어 인간에게 자유는 마치 형벌처럼 선고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의 시대에 인간의 의식은 인식의 확고한 출발점이었고 단단한 실체처럼 여겨졌으나 실은 텅 빈 그릇처럼 껍데기일 따름이었다. 자체의 존재 근거를 가지지 못한 의식은 끊임없이 바깥을 지향하면서 외부에서 근거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이며무엇을 선택할지는 자유지만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부담이다, ()와 같이 공허한 존재방식 때문에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인간이 선택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이기에 자유는 곧 비극이다.

 

 

인간의 자유에 커다란 제약을 가한 또 한 가지 요소는 무의식이다. 이성의 시대에 인간은 무엇보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간주되었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주체성과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도덕적 능력을 갖춘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성의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무의식이 발견되면서 인간은 겉으로 드러난 자기 자신의 모습 이외에 다른 측면, 그것도 칙칙하고 추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개별 무의식 이외에 언어구조와 사회구조도 일종의 무의식처럼 기능하면서 자유의 폭을 크게 제한했다. 개인의 실천이 언어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듯이 인간은 구조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다. 인간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구조의 영향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현대 사회에서 법적ㆍ정치적 자유는 적어도 제도상으로나마 보장되지만 철학적 자유는 누구도 보장받지 못한다. 자유는 해방을 주는 대신 부담을 안겨주며,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환상이 되어버렸다. 권력자나 재력가라고 해서 더 큰 철학적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는 점이 한 가지 위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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