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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16장 - 3. 서양과 동양의 죽음 해소방식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16장 - 3. 서양과 동양의 죽음 해소방식

건방진방랑자 2021. 9. 1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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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서양과 동양의 죽음 해소방식

 

 

시간 안에서 죽음을 해결 하는가? 시간 밖에서 위로를 찾는가?

 

결국 귀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죽음의 해결방식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존재의 유한성인데,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어떻게 무한화시키느냐 하는 것이죠. 자기의 존재성을 영속시키고 싶은 욕망이 인간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인간은 상당한 위로를 얻으니까요. 해탈한 사람들은 인생이란 게, 잠깐 왔다 가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 가지고는 마음이 불안하단 말입니다. ‘내가 이렇게 잠깐 초개처럼 왔다가 끝나고 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이 죽음의 해결방식에는 기본적으로 시간 밖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있고 시간 안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시간 밖에서 해결하는 건 뭐예요? 천당 가는 거지요. 천당이란 건 시간성이 없어서 시간밖에 있는 완벽한 세상으로 나이 먹는 게 없습니다. 천당에 대한 이미지는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영원한 곳, 그곳에는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중동이라든가 인도문명은 시간 밖에서 해결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하늘은 우리가 말하는 하늘 밖에 있는 하늘입니다. 천지(天地)할 때의 천()과 서양 사람들의 헤븐(heaven)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예요. ‘within time’으로 간다면 이건 철저하게 천지론이 됩니다. 천지 속에서 해결하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나의 존재는 유한하지만 이 유한한 존재의 연결은 무한하다는 것으로, 이것이 시간 속에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나의 존재는 유한하지만 나의 존재의 연결은, 내 뜻을 자식이 받고 또 그 자식이 계속 이어가니까, 나의 존재와 나의 존재의 확장(extention)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식세포로 봐도 내 생식세포의 반은 자식에게 가잖아요. DNA 구조의 반은 섞여서 세대가 이어지는 거 아닙니까? 나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귀신의 기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 떨어진 것들을 잇는 데는 그 사이를 메꾸는 풀(glue)들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흩어진다는 말이죠. 이 연결고리가 무엇이냐면 바로 귀신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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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ue (귀신)

 

 

 

귀신이 나옴으로써 역사가 가능해졌다

 

사람이 죽어도 죽는 순간에 자기와 관계된 모든 타아와 단절되어 딱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주자가 말한 것처럼 120년을 사니까사대봉사(四代奉祀), 120년은 시간 안에서 사는 겁니까, 시간 밖에서 사는 겁니까? 이건 역사 속에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오규우 소라이가 유명한 이야기를 했지요. “귀신이 나옴으로서 역사가 가능해졌다.” 에도(江戶)의 유학자 오규우 소라이(荻生徂徠)가 명언을 했습니다. 귀신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는 무한성을 획득할 수 있던 것입니다. 귀신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들도 나에게 잘못하면 내 귀신이 여러분들을 괴롭힐 것이란 말이예요. 그래서 조심하게 되고 귀신을 대접하게 되는 거지요. 이런 식으로 연결고리를 가지게 됨으로 인간세는 이 귀신으로 인해서 역사적 연결성(historical continuity)이 확보됐다 이 말이죠. 동양인은 존재의 영속성의 보장이 어디서 이루어져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기독교라는 것은 시간 밖에다가 인간존재의 영속성을 부여한 거지요. 맨날 천당에 가서 잘 살기 위해서 연보돈감사하여 하나님께 바친 물질이나 돈을 연보(捐補) 혹은 헌금(獻金)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헌금을 때때로 연보, 은혜, 축복이라고도 부릅니다잘 내고 목사 말 잘 듣고 성경말씀 많이 외워야 합니다. 동양인들은 이런 생각이 없이 역사에서 어떤 공덕을 쌓는가 하는 것이 나의 존재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지요. ‘음덕을 쌓는다.’ 주역(周易)계사(繫辭)에도 보면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는 말이 있는데 이 여경(餘慶)이란 여기서 내가 쌓은 보이지 않는 덕망입니다. 중용(中庸)첫 장에서 막현호미(莫顯乎微)’라고 했는데 그렇게 은미한 세계에서 신독(愼獨)해서 군자지덕을 쌓아나가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투자가 되어서, 역사 속에서 나의 존재의 영속을 보장한다, 또 그것이 나의 자손에 미치게 되어 대대손손 내려간다는 생각, 이런 역사관은 굉장히 현실적인 것으로 인간의 도덕성을 역사 속에서 확보하려는 것이지요. 기독교보다 상당히 현실성이 철저합니다. 기독교의 초월성이라는 것도 허망한 것이, 사실은 한 길로 생각하면 결국은 우리가 말하는 역사성으로 귀착되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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