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 2. 쉼 없기에 장구한다
不息則久, 久則徵, 불식(不息)하면 구(久)한다, 쉼이 없으니까 장구할 수 있다. 久, 常於中也. 徵, 驗於外也. 구(久)는 내면에서 떳떳한 것이다. 징(徵)은 외면에서 징험되는 것이다. |
항상 역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을 염두에 두고서 중용(中庸)을 풀이해 들어가십시오. 왕부지(王夫之)의 ‘형질론’으로 볼 때, 우리의 손톱이 그 온전한 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은 뿌리에서 다시 생겨나고 끝에서 닳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손톱 하나도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예요. 뿌리에서 생겨나지 않으면, 점점 닳아서 쪼그라들어요. 새끼손톱이나 새끼발톱에 가끔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죠? ‘형(形)’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질(質)’이 끊임없이 불식(不息)해야 합니다.
“저 해와 저 달이 저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게 거저 있는 줄 아느냐. 그 질(質)이 끊임없이 불식(不息)하니깐 저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왕부지 선생의 유명한 말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나의 신체적 조건, 우리의 형체가 유지되는 것은 그 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세포들이 불식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세포 하나라도 “아이구! 나는 좀 쉬어야겠다. 도올선생 미안해! 당신 몸 안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난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어”하면서 나자빠지면, 나는 그냥 황천길로 가는 겁니다. 구(久)할 수가 없어요. 심장세포가 갑자기 “나는 그만 뛰어야겠다, 펌프질 그만하고 잠깐 쉽시다!” 하면 이 짜식이 쉬는 거야 좋겠지만 나는 가는 거죠?<웃음> 불식(不息)해야만 구(久)한다! 이게 생명의 법칙이다!
徵則悠遠, 悠遠則博厚, 博厚則高明. (지극한 誠이) 밖으로 드러나면 유원(悠遠)하고, 유원(悠遠)하면 박후(博厚)하고, 박후(博厚)하면 고명(高明)하다. 此皆以其驗於外者言之. 鄭氏所謂至誠之德著於四方者, 是也. 存諸中者旣久, 則驗於外者益悠遠而無窮矣. 悠遠, 故其積也廣博而深厚. 博厚, 故其發也高大而光明. 이것은 모두 외부로 징험된 것으로 말한 것이다. 정씨가 ‘지극한 성(誠)의 덕은 사방으로 드러난다.’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내면에 보존된 것이 이미 오래되면 외부로 징험된 것이 더욱 아득하고 멀어져 무궁해진다. 아득하고 멀기 때문에 쌓인 것이 넓고도 심히 두터워진다. 넓고도 두텁기 때문에 발현되는 것이 높고 크며, 빛이 난다. |
‘고명(高明)’이라는 것은 천(天)의 상징이면서 종적인 것이고, ‘박후(博厚)’라는 것은 지(地)의 상징이면서 횡적인 것이지요. “이 종적인 고명(高明)과 횡적인 박후(博厚)가 얽혀가지고 만물이 이루어지는 프로세스, 이것은 유원(悠遠)하다.” 이것은 천지만물의 구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천지(天地) 자체는 어떤 의미에서 유한한 거예요. 천기(天氣)든 지기(地氣)든 기(氣)의 양이 유한한 겁니다.
그러나 천(天)의 기(氣)는 고원하고 지(地)의 기(氣)는 박후한데, 이 고원하고 박후한 기(氣)가 만나서 기능하는 만물의 세계, 그 펑션(Function, 작용)의 세계는 무한한 것입니다. 이런 구조를 천지(天地)는 갖고 있어요. 고명, 박후, 유원의 개념은 그 이미지가 형용사적이지만 ‘천지론’을 전제로 한 패러다임에서 ‘천지기능론’으로 구성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용(中庸)은 천지론을 바탕으로 하는 음양오행가(陰陽五行家) 이후의 문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원(悠遠)’은 오늘날 흔히 쓰는 말로 하면 ‘기능론’의 의미를 담고 있죠. 생물학에서 흔히 형태와 기능으로 대립시켜서 말할 때의 그 ‘기능’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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