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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순자 -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던 이유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순자 - 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던 이유

건방진방랑자 2022. 3. 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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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가 성악설을 주장했던 이유

 

 

맹자성선설을 비판했던 고자의 주장이 아직도 생생한지요? 아마 여러분은 버드나무와 나무술잔의 비유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을 살아 있는 버드나무에, 맹자가 말한 유학적 덕목들은 버드나무를 죽여서 만든 나무술잔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해했지요. 나무술잔을 만들려면 반드시 버드나무에 인위적인 노력을 가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고자의 논점은 인위적인 노력을 강조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유학의 덕목들이 사람의 생명력을 죽이고 말 것이라는 점을 경고했습니다. 고자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다시 꺼낸 이유는, 이야기의 논점은 다르지만 순자의 성악설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입니다. 순자가 고자와 갈라지는 지점은 그들이 인위적인 노력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에 있습니다. 그럼 순자의 이야기를 읽고 분석해보도록 하지요.

 

 

굽은 나무는 반드시 도지개를 대고 쪄서 바로잡은 뒤에야 곧아지며, 무딘 쇠는 반드시 숫돌에 간 뒤에야 날카로워진다. 지금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고 한 것은 반드시 스승과 법도가 있은 뒤에야 바르게 되고 예의를 얻은 뒤에야 다스려지기 때문이다.

枸木必將待檃括烝矯然後直. 鈍金必將待礱厲然後利. 今人之性惡, 必將待師法然後正, 得禮義然後治.

구목필장대은괄증교연후직. 둔금필장대롱려연후리. 금인지성악, 필장대사법연후정, 득례의연후치.

 

지금 사람들에게 스승과 법도가 없다면 치우치고 음험해서 바르지 않게 될 것이고, 예의가 없다면 이치에 어긋나는 어지러운 짓을 해서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다. 옛날 성왕께서는 사람들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치우치고 음험하며 바르지 않고, 이치에 어긋나는 어지러운 짓을 해서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今人無師法則偏險而不正, 無禮義則悖亂而不治. 古者聖王以人之性惡, 以爲偏險而不正, 悖亂而不治,

금인무사법즉편험이부정, 무예의즉패난이불치. 고자성왕이인지성악, 이위편험이부정, 패난이불치.

 

그러므로 이를 위해 예의를 만들고 법도를 제정해서 사람들의 감정과 본성을 가꾸고 변화시킴으로써 이를 올바르게 인도했다. 비로소 사람들은 모두 잘 다스려지게 되었고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是以爲之起禮義制法度, 以矯飾人之情性而正之, 以擾化人之情性而導之也, 使皆出於治, 合於道者也.

시이위지기예의제법도, 이교식인지정성이정지, 이요화인지정성이도지야, 사개출어치, 합어도자야.

 

지금 사람들은 스승과 법도에 교화되어 학문을 쌓으며 예의를 실천하는 사람을 군자라고 하고, 본성과 감정을 멋대로 버려두고 멋대로 행동하는 데 안주하며 예의를 어기는 자를 소인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살펴보자면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선하게 되는 것은 인위적인 결과이다. 순자』 「성악

今之人, 化師法, 積文學, 道禮義者謂之君子. 縱性情, 安恣睢而違禮義者爲小人. 用此觀之, 然則人之性惡明矣, 其善者僞也.

금지인, 화사법, 적문학, 도례의자위지군자. 종성정, 안자휴이위례의자위소인. 용차관지, 연즉인지성악명의, 기선자위야.

 

 

굽은 나무를 바르게 만들려면, 또는 무딘 쇠를 날카롭게 만들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순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두 경우 모두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져야만 곧은 나무나 날카로운 쇠가 만들어지겠지요.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란 굽은 나무나 무딘 쇠처럼 천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이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자연물과도 같다고 말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당연히 인간에게도 숫돌과 같은 인위적인 조작이 필요할 것입니다. 순자는 그것이 바로 스승, 법도, 예의와 같은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자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가 말한 이란 단어에는 윤리적인 의미가 별로 담겨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순자는 악하다는 표현을 단지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리키려고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성악(性惡)’이란 표현도 인간의 본성은 거칠다는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입니다. 여기서 순자의 자연주의적 정신이 다시 한 번 확인됩니다. 순자가 말한 본성은 문명 상태와 대조되는 자연 상태를 의미했기 때문이지요. 그는 거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공동체 생활에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점을 해결하고자 성왕(聖王)이 등장하여 예의와 법도를 제정했다고 보는 것이 순자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여러분은 이제 성왕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당히 정치적 색채가 짙은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순자에게 성왕은 단순한 윤리적 인격자가 아닙니다. 성왕은 무엇보다도 규범과 제도의 창조자로 인식된 인물이었으니까요. 그는 문명과 문화의 절대적 창조자였던 셈이지요. 이제 성왕을 제외한 인간들에게 남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종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하나는 성왕이 만든 규범과 제도에 따라서 자신의 거친 본성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순자는 이런 사람을 군자라고 이야기하지요. 다른 하나는 규범과 제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거친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순자는 이런 사람을 바로 소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순자의 생각에 따르면, 군자는 문명인이고 소인은 야만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군자(君子) 성왕이 만든 규범과 제도에 따라서 자신의 거친 본성을 바로잡는 것
소인(小人) 규범과 제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거친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

 

 

, 이제 순자 성악설의 마지막 결론을 음미해보도록 하지요.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선하게 되는 것은 인위적인 결과이다라고 순자는 말합니다. 순자의 결론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던 중요한 개념 하나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라는 개념입니다. 그는 인간이 선해질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인위적인 노력, 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위적 노력을 나타내는 ''라는 글자는 지금 거짓이나 허위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지만, 이 글자의 구성을 한번 살펴볼까요? ‘사람을 뜻하는 ()’과 행동을 뜻하는 ()’가 합해져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따라서 라는 개념은 글자 그대로 사람의 적극적인 행동이나 인위적인 노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순자의 논의는 결국 본성과 인위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데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전자는 인간에게 주어진 거친 삶의 모습 자체를 가리킵니다. 반면 후자는 그 거친 자연 상태의 모습을 세련된 문명 상태의 모습으로 바꾸려는 인위적인 노력을 의미합니다. 무딘 쇠가 숫돌로 가는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날카로운 쇠가 되듯이 말이지요. 순자는 이런 입장에 근거해서 맹자성선설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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