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의 형이상학으로 우주가족을 꿈꾸다
여러분은 산에 올라가본 적이 있는지요? 산의 기후는 언제나 변화가 심한 편입니다.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간혹 흥미로운 기상 현상을 관측하게 됩니다. 무척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변하면서 계곡 사이에서 엄청난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지요.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인 전경이 어느 순간 뿌옇게 피어오르는 구름으로 가려집니다. 과연 구름은 어디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에 떠돌던 물분자들이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진 순간 구름으로 뭉쳐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구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흩어져서 보이지 않게 됩니다. 또다시 방금 전의 탁 트인 전경이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지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장재의 기론(氣論)도 이와 비슷한 통찰에서 출현한 형이상학입니다.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이라는 말은 감각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무엇인가를 다루는 학문을 말합니다. 장재의 형이상학은 기라는 개념을 통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고 논의하도록 하지요.
태허란 형체가 없는 기의 본래 모습이다.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변화에 의해 발생하는 일시적인 형체[客形]에 지나지 않는다. (…) 기가 태허에서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마치 얼음이 물에서 얼고 풀리는 것과 같다. 태허가 곧 기라는 것을 안다면, 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몽』 「태화」
太虛無形氣之本體, 其聚其散, 變化之客形爾. (…) 氣之聚散于太虛, 猶氷凝于水. 知太虛卽氣, 則無無.
태허무형기지본체, 기취기산, 변화기객형이. (…) 기지취산우태허, 유빙응우수. 지태허즉기, 즉무무.
장재는 인간을 포함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러한 사물들을 객형(客形)이라고 부릅니다. ‘객(客)’이라는 말이 ‘손님’을 뜻한다면, ‘형(形)’이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형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객형에 해당되는 존재는 당연히 주인이 아닌 손님이지요. 장재에게서 진정한 주인은 바로 기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 흩어지면 모두 기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런 현상을 물과 얼음의 관계에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모양의 얼음들이 존재할 수 있지요. 네모난 얼음, 세모난 얼음, 아니면 둥근 얼음 등 다양한 모양의 얼음들이 있다 해도 그 본질은 모두 물입니다. 다양한 모양의 얼음들이 녹으면 결국 모두 물이 되어버리니까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얼마나 다양합니까? 그러나 이렇듯 다양한 사물들을 장재는 하나의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파악했습니다. 사실 그것들은 기의 층위에서 보면 모두 똑같습니다. 나아가 어떤 한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예를 들어 부모님이나 친구가 죽는다 해도 장재는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잠시 손님으로 왔다가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간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따라서 장재는 이 세상에 무(無)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무란 단지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무라는 것은 기가 가장 순수하고, 활동적으로 존재하는 상태가 아닌가요? 일체의 다양한 객형들이 사라져버린 상태이니까요.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다양한 모양의 얼음들이 햇살에 녹아 모두 물로 되돌아간 것처럼 말이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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