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Metaphysics
과학의 탐구 방식과 철학의 탐구 방식은 다르다. 과학은 관찰에 의거하는 반면 철학은 사유의 힘으로 진리를 찾는다. 철학의 분야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사유에 의존하는 분야, 그런 의미에서 가장 철학적인 분야가 형이상학이다.
형이상학은 두 가지 어원을 가지는데, 어원이 개념의 의미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에게서 비롯된 개념이지만 원래대로였다면 ‘제1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순서를 정할 때 먼저 존재자에 관한 학문인 자연학, 즉 피지카(physika)를 공부한 뒤 존재 일반에 관한 근본 원리를 다루는 제1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지카는 물리학의 어원이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자연과학→철학’의 순서로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취지를 이어받아 기원전 1세기 그리스의 철학자인 안드로니코스(Andronicos of Rhodes)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정리하면서 제1철학을 자연학의 뒤에 놓으며 메타피지카(metaphysika, ‘자연학 뒤의 것’)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보면 형이상학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서지학적으로 생겨난 이름인 것만은 아니다.
이 점은 형이상학이라는 한자 명칭이 생겨난 유래에서도 확인된다. 유학의 경전인 『주역(周易)』 「계사(繫辭)」에는 “형이상자(形而上者)를 도(道)라 하고 형이하자(形而下者)를 기(器)라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형이상자란 형태가 없고 불변하는 요소이며, 형이하자는 형태가 있고 가변적인 요소를 뜻하므로 메타피지카의 아주 적절한 번역어인 셈이다.
형이상학은 세상 만물의 근원을 찾았던 초기 그리스 철학의 맥을 정통으로 잇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참된 것이 아니다. 피지카의 세계, 감각의 세계 배후에는 경험과 관찰로는 알 수 없고 순수한 사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메타피지카의 세계, 진리의 세계가 있다. 이곳이 바로 인간의 영혼, 선(善)과 행복, 신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과학은 개별 사물을 탐구 대상으로 한다. 물리학은 사물의 이치를 말해주는 법칙을 찾고 사회학은 사회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개별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총체,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다루므로 부분적 지식이 아닌 전체적 지식,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을 추구한다. 과학은 경험 세계에 국한되지만 형이상학은 경험 세계를 초월한다. 경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선험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를 탐구한다? 그래서 형이상학은 필연적으로 신학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초기 형이상학자인 플라톤(Platon, BC 427~347)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인격신은 아니지만 철학 체계 내에 신의 관념을 포함시켰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거의 신의 영역으로 간주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을 움직이되 그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원동자를 제시했다. 이런 철학적 배경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이 등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등 중세의 철학자들은 모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이용해 그리스도교 신학을 정립하고 신을 논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신학의 권위가 실추되는 상황에서도 형이상학은 전혀 힘을 잃지 않았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에서부터 헤겔(Hegel, 1770~1831)에 이르기까지 대륙에서 전개된 합리론의 전통은 기본적으로 형이상학을 완성해가는 과정이었다. 공교롭게도 형이상학의 위기는 형이하학이 발달하면서 생겨났다. 중세의 철학적 전통이 약했던 영국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현실적인 사유 양식이 자리를 잡았고 이것이 특유의 경험론으로 발전했다. 경험론의 극한을 추구한 흄(David Hume, 1711~1776)은 감각을 통하지 않은 인식이란 없다면서 순수한 사유는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경험론의 전통에 힘입어 근대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자 형이상학은 거센 도전을 받았다. 형이상학은 근거도 없고 실용성도 없는 순수한 사유 체계일 뿐이며, 철학을 위한 철학에 불과하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헤겔은 이성의 절대화를 통해 형이상학을 완성했다고 믿었으나(→ 절대정신)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형이상학의 종말이었다.
하지만 진지한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의 성과를 등에 업은 실증주의의 천박한 비판에 맞서 형이상학의 본래 권위를 회복시키고자 했다.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이 그 첫 성과였고, 그의 뒤를 이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인식론으로 일관하던 근대 형이상학적 전통에 존재론을 포함시켜 약점을 보완했다.
현대 철학은 여전히 형이상학을 수용하고 계승하려는 입장과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해체하려는 반 형이상학적 입장으로 나뉜다. 전자는 실존철학과 비판철학의 계열로 이어졌으며, 후자의 대표적인 흐름으로는 실증주의를 계승하면서 그 피상성을 극복하기 위해 언어를 테마로 내세우는 논리실증주의와, 형이상학의 전제가 되는 ‘자명한 주체’를 포기하고 무의식적 구조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주의가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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