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태든 내 몸 안의 일처럼
정호는 장재의 우주가족 이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장재의 기론(氣論)과는 다른 형이상학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구태여 정호를 별도로 다룰 필요가 없었겠지요. 방금 살펴보았던 ‘만물일체론’ 외에 정호는 ‘물래이순응(物來而順應)’이라는 명제로도 유명합니다. 여기에는 정호만의 고유한 형이상학적 체계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철학적 관점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요. 한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천지가 변함없는 것은 천지의 마음이 모든 사물을 포괄하면서도 마음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이 변함없는 것은 성인의 감정이 만사에 순응하면서도 감정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학문은 무엇에 얽힘이 없이 크고 공정하며, 사태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그 사태에 따라 대응한다. 『하남정씨문집』 2:1
夫天地之常, 以其心普萬物而無心. 聖人之常, 以其情順萬事而無情. 故君子之學, 莫若廓然而大公, 物來而順應.
부천지지상, 이기심보만물이무심. 성인지상, 이기정순만사이무정. 고군자지학, 막약곽연이대공, 물래이순응.
정호는 자신의 논의를 세 가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주의 차원이고, 두 번째는 성인의 차원이며, 세 번째는 군자의 차원입니다. 우주의 차원부터 살펴보도록 하지요. 정호는 이 우주에도 하나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주는 만물을 낳으며 만물을 자라게 하고 마침내 거두어들이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주의 마음은 모든 사물에게 두루 베풀어서 마치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요. 이것은 매우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서 우주가 사사로이 편애하는 사물이 따로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누군가가 어떤 한 사람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우리는 그가 어딘가에 마음을 따로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와는 달리, 우주의 마음은 모든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애써도 우주의 마음을 식별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우주의 마음은 마음을 쓰지 않는 것처럼, 즉 마음을 남겨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성인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지요. 성인은 모든 것을 자기 몸처럼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우주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하나의 개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주가 순수한 마음의 형태라면, 성인은 보편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육체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정호는 성인의 경우에는 감정(情)이란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감정이란 기본적으로 육체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느낌이나 기분의 표현이니까요. 우주가족을 꿈꿀 정도로 호방했지만, 이처럼 정호는 상당히 치밀한 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우주가 만물에 개입하는 반면, 성인은 만물에는 직접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성인이 어떻게 우주의 마음처럼 꽃을 피우고, 온갖 생명을 태어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성인은 단지 만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즉 만사(萬事)에만 개입할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는 우주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공정하게 대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감정도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마련이지요. 이 말은 성인에게는 사사로운 감정이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할 뿐, 인간으로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조차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군자에 대해 알아보지요. 군자는 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곧 그는 성인처럼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이지요. 군자는 마음을 크게 하여, 자신에게 새로운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부드럽게 대응해야만 합니다. 물론 마음을 성인이나 우주의 마음처럼 크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새롭게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말해, 누군가가 새로운 사태에 자연스럽게 대응한다면, 이것은 그가 이미 성인이나 우주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출현하는 명제가 곧 ‘물래이순응’입니다. 그러나 이 명제 때문에 오해하지는 마세요. 어떤 사태가 벌어지든 그것에 수동적으로 순응한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물래이순응’은 어떤 사태가 전개되어도 그것이 마치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것처럼 느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명제입니다. 마치 우물에 빠진 아이를 자기 몸의 일부라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지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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