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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6장 바울의 기독교운동 - 바울의 앰비밸런스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6장 바울의 기독교운동 - 바울의 앰비밸런스

건방진방랑자 2022. 2. 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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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앰비밸런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의 복음을 유대교화할 수도 없는 것이고, 유대교 그 자체를 기독교화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양자선택의 기로를 벗어나는 근원적으로 새로운 복음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 새로움을 적나라하게 어떠한 이론적 유연성의 뒷받침이 없이 노출시킨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바울의 서한을 읽어보면 항상 이러한 이율배반의 긴장감이 서려있다. 바울은 율법의 부정을 논구하면서도 율법의 준수와 율법의 완성을 동시에 논한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마음이 열려있으면서도 항상 유대인들의 정통성과 기독교에 대하여 유대교라는 뿌리의 본원성과 우월성을 강조한다. 로마인서 11장에서는 기독교가 유대교라는 올리브나무 원목에 접붙여진 야생올리브 나뭇가지에 불과하다고 구질구질한 논변을 편다. 야생올리브 나뭇가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원 올리브 나무의 뿌리가 야생올리브 나뭇가지를 지탱해준다는 것이다(11:17-24).

 

또 자기 스스로는 항상 베냐민지파(the tribe of Benjamin)의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하면서 암암리 사울왕의 정통계보의 혈손임을 과시한다. 마치 이승만양녕대군의 후손이라는 것을 과시하듯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3:5~6).

 

 

이렇게 구질구질한 변명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그가 겪고 감내해야만 했던 이방선교의 고뇌의 심오한 측면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심적 앰비밸런스(ambivalence, 모순, 양립) 속에서도 바울의 위대성은 기독교를 유대교와는 근원적으로 다른 새로운 궤적 위에 올려놓았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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