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한국말 성경
여기에 재미있는 한 에피소드를 첨가하자면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된 우리말 성경이 바로 누가복음서였다는 것이다. 중국 만주에 주재하고 있었던 소격난 장로교회 선교사 죤 로스(John Ross)의 발원에 의하여 이루어진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소격난(蘇格蘭)이란 스코틀랜드를 의미한다. 그는 만주 봉천에서 한국상인들을 만나보고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아 한국으로 선교하러 들어오려고 했는데 도저히 노란머리 푸른눈을 가진 양코배기로서는 대원군의 양이(攘夷) 정책이 극성을 부리던 시대에 밀입국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입한(入韓)은 단념했지만 현명하게도 성경 반입에 대한 뜻을 세웠다.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먼저 한국말을 배워야했다. 그런데 당시 한국말을 가르칠 수 있는 한국인 어학 선생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을 뿐 아니라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로스 목사의 입지를 이해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로스 목사에게 협조하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한국말을 배웠고 한국어 문법책도 만들고 전도지도 번역하였다.
얼마 후에 로스 목사는 자기와 같은 소격난 장로회 선교사이며 매부인 죤 맥킨타이어(John McIntyre) 목사의 후원을 얻고, 한국인 어학선생인 이응현(李應賢), 백홍준(白鴻俊), 서상륜(徐相崙) 제씨의 도움을 얻어, 중국어성경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 작업은 1882년말에 끝났다. 그런데 인쇄를 하자니 조선글씨활자가 없었다. 그는 조선말 글자본을 일본으로 보내어 활자를 제조해왔다. 그런데 또 조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약행상(藥行商)을 하다가 망한 어떤 떠돌이가 활판기술자였는데 로스 목사의 수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한국어판 누가복음 1천 권이 최초로 인쇄되기에 이르렀다. 1883년이었다.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다. 최초의 출판비용은 소격난 성서공회가 담당하였고 그 뒤의 복음서 출판비용은 영국 성서공회가 담당하였다. 한국상인들이 봉천에 와서 휴지를 사서 지게에 지고 가곤했는데 그 휴지뭉텅이에 섞어 누가복음 1천 권을 밀반입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우리민족의 고난과 환난과 시련과 희망의 역사쯤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새삼 가슴에 새겨야 할 소명과 감격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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