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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1부 불모의 세기 - 3장 위기와 해법, 다시 온 왕국의 꿈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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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1부 불모의 세기 - 3장 위기와 해법, 다시 온 왕국의 꿈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2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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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 왕국의 꿈

 

 

결과적으로 보면 세도가를 뿌리뽑겠다는 이유로 민비(閔妃)를 선택한 대원군의 판단은 잘못이었다. 쇠붙이라면 모조리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권력의 속성상, 가문에서 왕비가 나왔다는 소식은 민씨 성붙이들을 총집결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당대의 실권자인 대원군의 아내도 같은 가문이었으니, 그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 세도가와 왕실 외척을 배제하겠다는 대원군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그 자신마저도 오히려 그들에게 배척당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당장 대원군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세도정치(勢道政治)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림으로써 모처럼 만에 조선은 다시 왕국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대원군은 아마 정조(正祖)의 꿈과 실험이 아직 완전히 포기된 게 아니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이라면 너무 비현실적이고 실험이라면 너무 늦다. 조선은 이미 개혁은커녕 생존조차 확실히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더구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는 이제 안에만이 아니라 바깥에도 있다. 그래서 대원군은 왕국화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출범시키기 전에 우선 바깥의 문제에 대처해야 했다.

 

철종(哲宗)의 치세 후반부터 유럽의 상선이나 군함이 조선에 와서 통상을 요구하는 경우는 부쩍 잦아졌다상선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군함까지 와서 통상을 요구한 이유는 뭘까? 16세기에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세계 진출에 나설 무렵만 해도 동양에 온 것은 상선들뿐이었다(물론 그 상선에는 대포가 장착되어 있었지만). 그러나 유럽 열강이 제국주의화된 19세기부터는 군함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영국의 예다. 19세기의 세계 최강국인 영국은 예상외로 무역수지가 적자였으나 전체 경상수지는 엄청난 흑자였는데, 그것은 바로 해운업 덕분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답게 수많은 선박과 전세계에 항구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그것을 이용해서 막대한 수입을 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항구를 개척한 것도, 또 해운업이 힘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막강한 해군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해군력은 곧 경제력이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그 현상은 자본주의 단계를 지난 유럽 열강이 제국주의적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었으나, 이제 막 왕국으로 옷을 갈아입으려는 대원군의 눈에 그게 어떻게 비쳤을지는 뻔하다. 정조(正祖)의 실험도 서학 때문에 실패했다고 본 그는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를 수락한다면 조선이 존립할 수 없고 설사 존립한다 해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조선 땅에서 서학을 완전히 축출하는 일이다. 그가 서양의 통상 요구를 거부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경제적인 득실 때문이 아니라 무역을 빌미삼아 서양 문물이 수입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땅에 서양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면 우선 그리스도교를 몰아냄으로써 서양 문물이 도입되는 루트를 봉쇄해야만 한다(앞서 말했듯이 선교사들은 흔히 자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안내하는 앞잡이 노릇을 했으므로 그의 판단은 일단 정확했다).

 

이것이 대원군의 트레이드마크인 척화론(斥和論)이지만, 사실 그가 처음부터 서양 열강에 대해 강경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의 편력에서도 보듯이, 사대부(士大夫) 체제에 대한 혐오에서도 보듯이 그는 원래 개인적 성향에서는 서학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다(집권 초기까지 대원군의 목표는 오로지 세도정치(勢道政治)를 종식시키고 조선을 왕국으로 만들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조정은 시대가 바뀐 것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성리학적 중화 이념만을 초지일관 고수하는 자들이 대다수다. 따라서 대원군이 척화로 나간 데는 가급적 중신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갓 잡은 권력을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크게 한몫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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