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라는 말의 비극적 의미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아버지의 기독교편향의 지지정책을 더욱 편향적으로 몰고갔다. 여기서 ‘편향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방인의 종교를 기독교와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탄압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기독교적 가치관 일색으로 도배질된 후대의 관점에서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방’(gentile)이니 ‘이교’(pagan)니 하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여기서 말하는 이교도라는 것은 천여 년에 걸친 우수한 헬라스ㆍ로마문명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 교도를 뜻하는 ‘파가누스’(paganus)는 원래 ‘시골뜨기’ ‘촌놈’이란 뜻인데 한번 생각해보자! 헬라스ㆍ로마문명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과연 누가 더 촌스러운 사람들이었겠는가? 그러나 기독교의 공인으로 하루아침에 헬라스ㆍ로마문명 전체가 촌놈ㆍ이교도들의 문명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기독교를 정통으로, 유일신에 대한 유일한 신앙체계로서 수용하는 순간, 길거리에 가득찬 제우스 쥬피터ㆍ아테나ㆍ비너스…… 나체의 신상들이 모두 우상이 되어버리고, 인류문명의 극상의 예술품이었던 위대한 신전들이 모두 악령의 소굴이 되며 저주와 파괴와 약탈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다. 오늘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희랍 로마신상들이 대부분 잘라지고 꺾어지고 뭉개지고 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전들의 돌기둥은 뽑히어 새로 짓는 기독교 교회의 기둥으로 둔갑하였던 것이다. 웅대한 회암사의 파괴된 불상들을 바라보는 것보다도 더 가슴아픈 일이다. 사실 기독교의 공인이라는 이 사태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야만스러운 문명의 전환이기도 했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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