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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7장 사바크의 저주와 축복 - 제3 코우덱스의 경우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7장 사바크의 저주와 축복 - 제3 코우덱스의 경우

건방진방랑자 2022. 3. 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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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코우덱스의 경우

 

 

알리 집안 사람들이 이 코우덱스가 골동이라는 것은 알았는지라, 사람들에게 팔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한 코우덱스에 만 원 정도만 달라고 했는데 만 원은커녕 천 원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담배와 귤과 바꿔치기로 몇 개가 빠져나갔다. 왜냐하면 복수극 때문에 경찰이 알리집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또 코우덱스를 뺏기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3 코우덱스(Codex )의 경우, 알리는 그것을 자기네 알 카스르 동네에 있는 콥틱 크리스챤교회로 가지고 갔다. 코우덱스를 어떤 사람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사람이 그 책이 아랍어가 아니라 콥틱어로 쓰여있다는 것을 아르켜 주었고 콥틱교회에 가져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귀뜸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 이집트는 아직 영국보호령이었는데 영국통치자들은 종교분쟁이 두려워 무슬림경찰들에게 콥틱 기독교인들을 거칠게 다루지 못하게 했다. 따라서 콥틱교회는 안전한 조계같은 느낌이 있었다. 알리는 제3 코우덱스를 교회에 안전하게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교회사제는 이 제3 코우덱스를 중등교사인 처남, 라그히브 안다라우스 알키스아브달사이드(Rāghib Andarāwus ‘al-Qiss’ Abd al-Sayyid: 이름이 좀 길지만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이 문서매매의 최초의 공식 싸인자이기 때문이다)에게 보여주었다. 알키스는 여러 콥틱학교에서 영어와 역사를 가르치는 순회교사였다. 알 카스르 마을에는 당시 콥틱 학교 하나 밖에 없었는데(낫세르 대통령이 공립학교 세우기 이전) 알키스는 일주일에 한 번 처남집에 묵으면서 교사일을 했다. 알키스도 이 문서의 가치를 알아볼 만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콥트 인텔리겐챠인 친구 게오르기 베이 소브히(Georgy Bei Sobhy)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그 코우덱스에 들어있는 요한 비서(The Apocryphon of John), 이집트인 복음서(The Gospel of the Egyptians),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The Sophia of Jesus Christ), 구세주의 대화(The Dialogue of the Savior) 등을 보고 경악했다. 게오르기는 공포스러운 나머지 즉각적으로 이 문서를 당국에 신고했다. 당국은 이것을 콥틱 박물관에 조회했고 알키스는 이 문서를 가지고 콥틱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은 알키스를 형벌에 처한 것이 아니라, 300 이집트 파운드를 주고 정식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박물관에는 50 파운드를 세금조로 기증해야 했다. 그러니까 5만 원 정도 받고 8천 원은 커미션으로 떼준 셈이다. 42천 원을 가지고 돌아오는 알키스의 가슴은 감옥에 안 가고 골동품 공포에서 해방된 행복감에 두근거렸다. 돈은 혼자 쓱싹해버렸다.

 

이 매매를 알선한 카이로 콥틱 박물관 관장은 토고 미나(Togo Mina)였다. 구입일자는 1946104일이었다. 박물관 관장 미나는 매우 양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체노보스키온문서의 수집 역사에 있어서 유일하게 사심없이 헌신한 인물이었다.

 

이것이 이 문서가 알려지기 시작한 최초의 단서다. 이제 소문은 빨리 퍼지기 시작하게 마련이고 유엔이 개입하고 국제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소지가 있었다. 그 기나긴 역사를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리오마는 조금만 더 궁금한 뒷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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