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코우덱스의 경우
이 제1 코우덱스는 어떻게 돌고 돌아 카이로에 있는 벨기에 출신의 골동상인 알버트 에이드(Albert Eid)에게로 굴러들어 갔다. 그런데 이 에이드는 내가 생각키에 유능한 골동상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돈을 밝히는 질 좋지 않은 인물이었다. 에이드는 박물관장 토고 미나가 국외로 반출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당부했어도, 그것을 밀반출하는 데 성공했다. 공항에서 세관원들에게 동전 몇 개와 구부러진 쇳조각 몇 개하고 같이 보여주면서 국외 나가 팔 생각이라고 했어도 아무 말 않고 통과시키더라는 것이다. 물론 세관원들을 몇 푼 주고 매수했을 것이다.
에이드는 제1 코우덱스를 가지고 미국시장으로 갔다. 처음에 미시간대학 도서관에 가서 2만 불을 요구했다. 미시간대학 도서관은 너무 비싸다고 구입을 거절했다. 그 뒤 뉴욕에 가서 폴 멜론이 펀드를 댄 볼링겐 파운데이션(Bollingen Foundation)을 접근하였다. $12,000을 요구하였지만 볼링겐 파운데이션은 사적인 책 구입은 안 한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 그것 좀 안전하게 맡겨 놓게나 해달라는 부탁도 거절해버렸다. 에이드는 화가 나서 브뤼셀에 가서, 거기 은행 안전금고에다가 넣고 덜커덩 잠궈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듬해에(1949) 죽었다.
그 뒤 그 코우덱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그 유명한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권유에 따라, 취리히에 있는 융 인스티튜트(the Jung Institute)가 에이드 부인으로부터 8천 불에 샀다(1952. 5. 10. 매매성립), 돈은 미국의 사업가 죠지 페이지(George H. Page)가 댔다. 그래서 이 제1의 코우덱스는 우리가 보통 융 코우덱스(Jung Codex)라고 부른다. 융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비젼의 사나이였고, 그의 심리학에는 영지주의적 요소가 많이 깔려있다. 프로이드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를 리비도라고 본 것에 반하여, 칼 구스타프 융은 ‘신화를 창조하는 의식의 기층’(the myth-creating substratum of the mind)이라고 본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프로이드는 ‘꼴림’으로 보았다면, 융은 ‘신화창조’로 본 것이다. 누가 옳을까? 독자들 스스로 고민해보라!
이 체노보스키온 문서를 세계학계에 처음으로 알린 인물은 불란서 파리대학에서 나일강 유역의 초기기독교 수도원 집단생활사를 연구하던 쟝 도레쓰(Jean Doresse)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1947년 9월 카이로에 있는 불란서 고고학 연구소(The French Institute of Archeology in Cairo)의 초청으로 갔다가 친구였던 토고 미나를 방문함으로써 그 역사적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때 도레쓰는 부인 마리앙(Marianne)과 함께 갔는데, 토고 미나는 불란서에 유학하던 시절에 현 도레쓰의 부인이 된 마리앙과 친구 사이이기도 했다. 3인이 모두 훌륭한 이집트학 학자들이었다. 도레쓰가 발표하여, 1948년 2월 23일자 『르몽드』지에 난 기사가 최초의 공식발표였다. ‘4세기 파피루스 발견’이라는 제목하에 3줄이었다.
▲ 칼 구스타프 융(1875–1961). 프로이드의 성(性)중심 심리학과는 다른, 심오한 인성의 신화기층을 파헤친 위대한 심리학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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