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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주체의 분리와 진리의 인식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주체의 분리와 진리의 인식

건방진방랑자 2022. 3. 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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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분리와 진리의 인식

 

 

그런데 이것은 반드시 자기의 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주체라는 말에는 언제나 객체혹은 대상이라는 짝이 따라다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고하는 주체라면, 이 주체가 사고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먹는 내(주체)가 있다면 먹히는 밥(대상, 객체)이 있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결국 근대철학의 출발점인 주체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른 피조물인 자연세계(대상)로부터 인간이 분리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인간은 자연세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왜냐하면 전자는 주체고, 후자는 대상이요 객체니까요) 존재가 됩니다. 주체인 인간이 대상인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주체 대상의 이런 근대적인 분할에 따른 것입니다. 이럼으로써 다른 자연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이론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인문과학으로 발전하게 되지요.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대상과 분리되고,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떨어졌을 때, (인식하는) 주체가 (인식되는) 대상과 일치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벌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실제로 살아있는 벌과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로써 주체가 대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젭니다. 만약 대상에 일치하는 지식, 즉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면, 이는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주체가 진리에 이를 능력이 없다는 게 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 아까 주체가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건 라는 주체가 진리에 이를 능력(‘이성’)이 있다는 생각 때문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막상 주체를 독립시켰더니 진리에 이를 능력이 없다는 게 되면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됩니까? 결국 그건 독립할 능력이나 자격도 없으면서 신에게서 도망친 꼴이 되는 셈이지요. 따라서 데카르트로선, 그리고 이후의 근대철학으로선 진리를 인식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가 됩니다. 진리야말로 주체에서 출발한 근대철학이 어떻게든 도달해야 할 목표였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라는 범주를 독립시키자마자 진리라는 범주가 중요하게 따라다니게 됩니다. (인식)대상과 (인식)주관의 일치라는 뜻에서 진리라는 범주가 주체라는 범주와 쌍둥이로 등장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주체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요, 진리는 그 목표점입니다. 이 두 개의 범주는 근대철학 전체의 기초와 방향을 특징짓는 가장 근본적인 범주입니다. 또한 이것은 근대철학의 모든 질문 자체가 그것에 매일 수밖에 없었고, 그에 대한 대답 역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지반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주체와 진리라는 범주로써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특징지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대철학의 경계는 이런 식으로 그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리바이어던, 절대자의 다른 형상

헤르조그 폰 베리(Herzog von Berry)의 기도서 아주 풍요로운 시대(Les très riches heures)에 실려 있는 그림

 

세상은 철학을 만들고, 그 철학은 또 다시 세상을 만든다. 데카르트의 철학에 감명을 받았던 홉스는 그의 철학을 따라 사유하면서 사회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다. 왜냐하면 인간 개개인이 모두 주체고 그 각각의 욕망이 평등하다면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텐데, 그럼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통합하는 절대적 중심의 자리, 모든 들을 통합하는 절대적 나의 자리에 바로 왕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 왕의 형상은 바로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각각의 내가 왕이라면, 이제 그 들은 왕의 입에 죽고 사는 존재가 된다. 왕이 내가 된 것이다. 그것은 벨라스케스가 찾아준 왕의 자리에 내가 들어서기 위해 치러야 할 입장료인 셈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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