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오컴
반대로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이라는 사람은 당시의 유명론자로 가장 유명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보편 개념은 기호다. 이 기호에 상응하는 실재는 없다. 사물에 앞서가는 보편자는 신의 정신 속에도 없다.
예를 들어서 추상적인 ‘언제’ ‘어디’ 같은 것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구체적인 장소와 구체적인 시간만이 실재한다고 합니다. 관련된 사물들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을 떠난 ‘관계’라는 추상적인 존재란 없으며, 1, 2, 3 같은 숫자들은 실재하지만 일반적인 ‘수’라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결국 보편 개념은 이름일 뿐이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컴은 이런 논리가 기독교 교리에까지 적용된다면, 신학적 교의 자체가 붕괴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이 교리 자체의 처참한 붕괴를 피하려고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그로 인해 자신에게 가해질 교회의 탄압을 피하려고 그랬던 것인지, 그는 이러한 주장을 오직 이성이 작용하는 영역에만 한정시켜 버렸습니다. 이성과 달리 “믿음은 불합리한 것이고”(credo quia absurdum), 믿음의 영역인 신학에는 앞서와 같은 이성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개별적인 대상을 경험하는 데서 말입니다. 그런데 “신에 대한 경험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신에 대한 고유한 지식 역시 불가능하며, 따라서 믿음은 불합리하다”고 합니다.
이로써 오컴은 신학을 합리적 이성으로부터 떼어내고, 철학과 신학을 분리시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신학적 원리에 따라 철학을 통해 신의 섭리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스콜라철학을 해체시키고 철학과 신학을 분할하려고 합니다.
이미 후기에 이르러서인지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인지, 이런 주장 정도는 논란은 되었을망정 그로 인해 화를 당할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신학과 이성이란 영역이 서로 별개라면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교황은 세속정치에 굉장히 깊이 관여하고 있었는데, 오컴은 이것까지 비판합니다. 그 때문에 그는 교황에게 잡혀 투옥되었으나 탈출에 성공해서, 당시 교황과 다투고 있던 바이에른 주의 루드비히 왕 밑에서 은신합니다. 오컴은 이때 “당신이 칼로써 나를 지켜주면 나는 펜으로써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하여, 또 하나의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 이카루스의 추락
고딕성당은 당시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그것은 신이 계신 저 하늘을 향해 무한히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신에게 가까이 기려는 인간의 이러한 욕망은 성당을 좀더 높이 짓기 위한 경쟁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보배(프랑스)에서는 성당이 통째로 무너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벨탑? 하지만 그처럼 신과 맞먹으리는 시도라기보다는 신에게 좀더 가까이 가보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태양을 향해 좀더 높이 올라가려다 주락한 이카루스의 비극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그림은 브뤼겔(Bruegel)이 「이카루스의 추락」이라는 동명의 그림을 위해 그려 보았던 판화인데, 약간 아래에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이 이카루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다. 이카루스는 태양에 더 가까이 올라가 있는데, 이미 날개를 붙인 밀납이 녹이 몸이 균형을 잃은 탓에 막 추락하려 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우연일까? 이카루스를 그린 브뤼겔은 바벨탑을 건축하는 장면을 최소한 세 번을 그렸고, 그 중 둘은 유명한 그림으로 남아 있다. 브뤼겔 자신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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