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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 1. 유명론과 경험주의, 실재론과 유명론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 1. 유명론과 경험주의, 실재론과 유명론

건방진방랑자 2022. 3. 2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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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1. 유명론과 경험주의

 

 

실재론과 유명론

 

 

근대철학의 다음 장은 경험주의라고 불리는 철학적 흐름입니다. 이는 주로 영국에서 발달했고, 지금까지도 영국의 미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식주체의 경험이 지식의 연원이자 진리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철학사에서 이런 경험주의의 중요한 사상가로 꼽히는 사람은 아시다시피 베이컨과 로크, 버클리와 흠입니다. 그러나 경험의 중요성을 얘기한 것으로 경험주의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베이컨은 흔히 알고 있는 이 사상가들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러셀조차도 베이컨은 자신이 과학에 대해 그토록 강조했으나 사실은 당시의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과학적 지식도 갖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반면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유명한 정치사상가 홉스는 오히려 이런 철학적 전통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는 유명론’(nominalism)이라고 불리는, 경험주의의 모태와 관계된 것입니다.

 

여기서 경험주의의 주장을 단순히 요약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경험주의를 이전의 철학적 전통과의 연관 속에서 다루고, 그것이 데카르트가 세운 근대철학적 문제설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검토하는 게 유용할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경험주의 철학을 유명론과 근대철학의 긴장 관계 속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유명론(唯名論)은 영어로 nominalism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nom은 이름이란 뜻입니다. 이름을 뜻하는 라틴어 nomen/nominis에서 나온 말인데, 영어에서 명사를 가리키는 noun이나 이름이란 뜻의 프랑스어 nom이 이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nominal명목적인이란 의미고요. 그래서 nomialism명목론’(名目論) 혹은 유명론이라고 번역하지요.

 

유명론이란 한마디로 말해 오직 이름일 뿐이란 뜻입니다. 무엇이 오직 이름일 뿐인가?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인데, ‘보편적인 것’(the general)은 오직 이름뿐이란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란 말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 인간이 아닌 분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없군요.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는 백 명 남짓의 인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 중 저도 인간이고, 저기 있는 저분도 인간이고, 저 뒤에 있는 저분들 역시 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강의실에 인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매우 어리석은 질문 같습니다만, 철학자들은 대개 이런 어리석어 보이고 당연해 보이는 문제를 갖고 붙들고 늘어지거나 때론 논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특히 중세의 수도원에서 연구하던 중세 신학자나 철학자들에겐 말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부류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인간이란 존재는 없다. 다만 김xx라는 개인, xx라는 개인, xx라는 개인들만 있을 뿐이다. ‘인간이란 그 개인들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반대로 말합니다. “여기 있는 모든 개인이 바로 인간 아닌가? 그렇다면 이 자리에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인간이라는 보편자(보편적인 것)는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 전자는 보편적인 것(예컨대 인간’)은 오직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유명론이라 하고, 후자는 보편이 실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실재론’(realism)이라고 합니다. 이들 두 입장은 중세 후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데, 나중에 중세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의 하나가 됩니다(주의할 것은 근대에 와서 물질이 실재한다는 주장 역시 유물론 혹은 실재론이라고 불리는데, 이것과 혼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주장이 왜 문제가 되는가? 여기서 잠시 상상력을 동원해 봅시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프랑스에 어떤 미련스럽게 우직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중세철학의 가장 큰 논쟁인 실재론과 유명론 간의 논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지요. 그는 보편이란 게 실재한다는 실재론자의 주장이 옳다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예증하려고 했지요. 그래서 그는 악마를 찾아내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일단 어디 가야 찾을 수 있는지 알아야겠어서 도시의 수도원을 찾아가 신부들에게 물었지요. 악마는 대체 어디 있느냐고, 또 어떻게 생겼느냐고, 그걸 잡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도 말입니다.

 

수도사는 두 부류가 있었다더군요. 진지하게 자기가 본 악마의 모습을 설명해주면서, 그걸 잡으려면 손바닥에 꼭 맞는 검은 십자가와 마늘 두 쪽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주던 사람이 그 한 부류를 대표했지요. 다른 한 부류는 그건 하늘나라에 있으니 당신이 찾을 순 없을 거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나 우직한 철학자는 악마가 인간이 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악을 설명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실제로 악마를 찾아나섰다더군요. 음습한 늪지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한없이 깊은 동굴을 찾아다니기도 했으나 결국 악마를 찾지 못했다는 거예요. 늙어서 힘도 빠진데다 굶주림에 지친 그는 어느 한 마을의 부잣집을 찾아갔지요.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때까지 좀 먹고 쉬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집 주인은 늙고 병든 걸인이라 생각해서 물을 끼얹으면서 내쫓았다더군요. 그때 그는 발견했던 겁니다. 바로 악마의 모습을 급하게 검은 십자가와 마늘 두 쪽을 꺼내들고는 악마를 향해 저주의 주문을 외웠지요. 그러나 그의 눈앞에는 굳게 닫혀진 대문만 있었을 뿐이었지요. 동네를 돌며 떠들고 다녔지만, 그 집 주인이 악마라는 말을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그는 젖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그 마을의 수도원을 찾았지요. 다행히 수도원에서 쫓겨나진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는 수도원에서 밤에 화장실을 가다가 어떤 수녀를 능욕하는 악마의 모습을 보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때는 십자가와 마늘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소리를 질렀다더군요. ‘악마다!’라고, 모든 사람들이 한밤 중에 뛰쳐나왔지요. 그러나 그것은 악마가 아니라 어여쁜 수녀와 데이트를 하던 바람난 신부였던 거예요. 그 당시 이런 일은 수도원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으나, 공개되면 창피를 당할까봐 수도원은 새로이 악마를 보내어 그를 달래더라고 하더군요. 많은 돈을 주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악마를 수도원장이라고 부르더라는 거예요.

 

결국 그는 크게 깨닫고 악마 찾는 일을 중단한 채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지요. 악마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입니다. 악마라고 불리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여러 개인들 속에 존재하는 공통된 특징을 묶어서 가리키는 이름임을 깨달았던 거지요. 그래서 그는 그 뒤 유명한 유명론자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결과 교회에서 파문당하고 말았지만, 그것이 그의 신념을 꺾어놓진 못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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