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07년 임용: 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2007년은 전반적으로 모든 것에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섶나무를 베고 의기를 다졌던 부차처럼, 쓸개를 잘게 잘게 씹으며 의지를 불태우던 구천처럼, 천하를 주유해야 했던 공자처럼 깊게 침잠해야 했던 시기였다.
▲ 학교도 졸업했고 이젠 완전한 사회인이 되었다. 곤지중학교에서 한자급수 강사를 하던 때.
2007년은 변화의 때
생각의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재검토를 해야 했다. 그 결과 26년 간 별다른 고민 없이, 어떤 의문도 없이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기독교란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건 필연적으로 불변의 진리를 좇아 완전한 것만을 추구하던 생각을 버리고 변화무쌍한 세상을, 감정이 들쭉날쭉하는 사람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변화야말로 삶이 주는 선물임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헤어진 여자 친구는 언젠가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안 될까?”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일요일이면 하루 종일 교회에 있으니 그런 부분이 섭섭해서 그런 말을 할 법도 했다. 그런데 나는 불 같이 화를 내며 “종교를 버린다는 건 단순히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나에겐 인식의 틀, 생활방식까지 모두 바꾸라는 말과 같아.”라고 말했었다. 그만큼 종교는 나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고, 내 모든 걸 좌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던 기독교가 2007년을 기점으로 아무 것도 아닌 ‘수많은 종교 중 하나’로 바뀔 수 있었다는 건, 한강물이 전주천으로 흘러들어오는 것만큼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만큼 과거와 결별했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 한때는 기독교인으로, 한때는 무교인으로. 그리고 앞으로는??
시험으로 한바탕 노닐어 보자
그렇게 일상이 변한 만큼이나 임용에 대한 나의 생각도 변했다. 시험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활발발하게 소통하자고 생각했으며, 너 아니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공격적인 자세는 버리고 당당히 일대일로 만나 한바탕 징하게 놀자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쁨은 여전하다. 맘껏 세상과 어울려 한 판 놀 수 있는 정겨움의 시공간, 그 속에서 난 올해 일 년의 밑도 끝도 모를 절망들을 이겨왔는지도 모른다. 생동감과 열정, 그게 날 일으켜준 결정적인 원동력이다.
(중략)
떠남과 동시에 만남은 이루어지며, 이별과 동시에 재회가, 끝남과 동시에 시작이 이어진다. 그런 순환의 법칙 가운데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건 바로 시간들의 경계선 상에서 맘껏 노니는 것이다. 애초에 시간의 분절은 없었지만 의식의 분절만이 허용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떠나간 것에 대해 아쉬워하기보다 다가올 재회의 기쁨으로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거다
07년 어느 때인가 썼던 일기인데, 지금 읽어봐도 그때의 절절함이 느껴지고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런 변화 덕에 07년 임용은 나에게 철학적인 의미까지 함께 있는 시험이 됐던 것이다.
▲ [왕의 남자] 중 엔딩. "징헌 놈의 이 세상, 한 바탕 놀고 가면 그 뿐"이라는 대사가 심금을 울린다.
인용
1. 06년 임용: 첫 시험의 불안감을 안고 경기도에 가다
3. 07년 임용: 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4. 07년 임용: 광주에 시험 보러 와서 한계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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