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09년 임용: 국토종단으로 반란의 꿈을 키우다
아~ 2009년을 어찌 잊으랴? 너무도 가슴 벅찬 일 년이었고, 나의 가능성을 실제로 알게 된 가슴 뭉클한 일 년이었다. 그만큼 나의 삶 중에서 가장 밀도가 높았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 2009년에도 운 좋게 임고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임고반에 공부하며 한 컷.
미래를 현재로 만들러 국토종단을 떠나다
2009년엔 새해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산 참사’라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돈이 사람을 짓누르다 못해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권력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기보다 돈의 흐름에 따라 생명체를 짓밟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생각을 바로 잡아야 했고, 그저 예전에 하던 대로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며 성공을 위한 경주마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2007년부터 하던 대로 여러 책을 읽으며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고, 그걸 내 삶을 통해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절절한 외침은 공권력 앞에 흩어지고 말았다.
바로 그 결단이 ‘국토종단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진 ‘나중에 임용이 된 후에 교사가 되어 방학 때 국토종단을 떠나야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무언가 이루지도 못했는데 현실을 내팽개치고 떠나는 것은 현실 도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격이 일 년, 이 년 길어지면서 국토종단은 허황된 꿈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은 ‘점점 멀어지나봐♬’라는 노래가사처럼 사라져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아래에 인용한 구절을 읽게 된 것이다.
시대의 시간과 다른 시간을 사는 것. 바로 ‘비시대성’이 타임머신 없이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미래로 떠나고 싶다면 지금 여기서 그 미래를 만들어라. 그러면 너는 타임머신에 승선하지 않고도 미래를 살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머무른 채로 떠나기’이며, ‘앉은 채로 유목하기’ 아니겠는가.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그린비출판사, 2007년, 215쪽
니체에겐 ‘현실은 그런 것’, ‘미래를 위해 현실은 접을 수 있는 것’이란 말은 변명거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현실의 벽이 늘 높다랗게 드리워져 있지만 그걸 과감히 넘어서서, 지금 내가 서있는 곳에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으며, 추구하던 이상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으니 말이다. 그가 말한 ‘초인超人’은 이런 정신을 갖춘 사람이었고 나도 그 생각에 동의했던 것이다.
바로 위에 인용한 글에서 두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 구절은 ‘미래로 떠나고 싶다면 지금 여기서 그 미래를 만들어라’라는 부분이었다. 그 말은 달리 말하면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못하면서, 미래엔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비겁한 변명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것과 같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서 미래엔 행복할 거라고 하는 것, 지금 무언가 노력하지 않으면서 미래엔 노력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 그 모든 건 비루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미래에 무언가 될 거라 낙관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 그걸 선취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현재가 바로 그렇게 꿈꾸던 미래가 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국토종단을 떠날 거예요”라고 말하고 다니게 됐다.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 더욱이 일 년에 한 번씩만 보게 되는 임용이란 시험에 있어서, 시간은 금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어머니는 당연히 말렸고, 스터디 멤버 중 명희 누나는 곧바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어쩔 텐가, 지금 당장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 하고 말아야 하는 것을. 그래서 강하게 밀어붙여 전남 목포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한 달간 국토종단을 떠나게 된 것이다.
▲ 국토종단은 나에겐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그러나 연애는 나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2009년은 그래서 다사다난했다.
한 해 동안 잘남과 못남을 동시에 느끼다
막상 국토종단이 끝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행은 아주 시기적절할 때 했고, 나에겐 크나큰 변곡점이 되었다. 여행을 통해 나에 대해 좀 더 알게 됐고,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모든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세상은 살만했고, 생각보다 나는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와 더불어 4개월의 짧은 연애를 하기도 했다. 국토종단은 ‘나의 장점이 부각되는 경험’이었다면, 두 번째 연애는 ‘나의 못남이 절절히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난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도망치기에 바빴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거부하기에 바빴으니 말이다.
그 모든 상황들이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이었으니, 역시나 삶은 돌고 돌아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나를 성장시키게 한다는 걸 느꼈다. 희망이든 절망이든, 자신에 대한 만족이든 불만족이든 나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2009년은 내가 새롭게 태어난 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이런 상황에서 임용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비춰지는 걸까?
▲ 스터디 멤버들. 여행을 갔다 오는 한 달 동안 기다려줬고, 가장 많이 걱정해줬다.
인용
1. 06년 임용: 첫 시험의 불안감을 안고 경기도에 가다
3. 07년 임용: 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4. 07년 임용: 광주에 시험 보러 와서 한계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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