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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07학년도~11학년도 한문임용 낙방기 - 5. 08년 임용: 시린 어둠과 찬란할 빛 본문

건빵/일상의 삶

07학년도~11학년도 한문임용 낙방기 - 5. 08년 임용: 시린 어둠과 찬란할 빛

건방진방랑자 2019. 4. 2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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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8년 임용: 시린 어둠과 찬란할 빛

 

2008년도는 파란만장한 해였다. 거시적으론 한국이란 나라도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갔고, 미시적으론 한 개체에 불과한 나도 어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2008년에도 경기도에서 한문교사를 선발하니 다행이다.   

 

 

 

암울하게 시작된 2008

 

대통령이 바뀌며 보란 듯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대통령 부시를 위해 카트를 손수 운전해주며 굴욕적인 쇠고기 졸속 협상으로 30개월 이상 소의 뇌나 부산물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건 미국에서 잘 먹지 않기에 미국은 한국에게 덤터기를 씌운 것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이니 굳이 광우병운운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우리 세대 먹을거리의 안전망이 무너졌다고 생각했고 광장으로 몰려나와 재협상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하게 된 것이다.

 

 

굴욕 외교란 이런 것이다. 이걸 실리외교라 치장한다면, 이 세상의 가치는 남아나는 게 없을 것이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세상의 뒤숭숭함과 더불어 내 상황도 뒤숭숭하긴 매한가지였다. 호기롭게 시작한 한문학원 강사 생활이 2개월 정도 만에 끝났기 때문이다. 이 학원은 특이하게 한자 급수를 딸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았고, 사자소학 같은 전통적인 서당식 교육을 하는 곳이어서 그 부분이 무척 맘에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원장님은 갑자기 학원을 인수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경우엔 인수금액, 조건 등의 후속적인 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매우 특이하게도 원장님은 그런 것 없이 그냥 맡아서 해볼 생각이 없냐?’라고 넌지시 묻기에, 때 아닌 갈등을 해야만 했다. 임용을 준비하여 교사가 되는 것과 학원을 맡아서 하는 것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맘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몇 날 며칠을 보내고 있을 때, 원장님은 말길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며 잘라 버렸다. 도무지 자초지종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황당했고, 첫 강사생활이 그렇게 마무리 됐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빴다.

 

 

학원에서 만난 귀염둥이들.

 

 

 

어둠은 사라지고 찬란한 빛이 찾아오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임용고시반에 들어온 건 행운이었다. 보통 임용고시반은 2월에 멤버를 모집하고 8월 정도에 결원이 있을 때에만 추가 모집을 한다. 나처럼 어중간하게 들어오는 경우는 없는데, 난 무작정 교수님을 찾아가 내 의사를 표시했고 그게 잘 받아들여져 들어올 수 있었던 거다.

거기에 덧붙여 도종환 시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의 제목을 그대로 따와서 흔들리며 피는 꽃 스터디팀을 꾸리게 된 것도 행운이었다. 이번 경우처럼 중간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2008년도는 암울하게 시작했지만,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쨌든 그런 우여곡절을 경험하며 공부할 장소도 마련됐고, 스터디까지 순식간에 꾸려졌으니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해졌다. 그래서 상반기는 여러 일을 겪으며 느리게 지나가는 느낌이었는데 하반기는 모든 게 갖춰져 평이하게 훌쩍 지나버린 것 같이 느껴지는 것도 다 이런 상황 때문이리라. 마음이 안정이 되니 좀 더 느긋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스터디 팀이 꾸려졌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이름을 가진 스터디팀. 맘을 잡게 해준 버팀목 같은 존재들이다.  

 

 

 

2008년에 바뀐 임용제도

 

2008년부터 임용 제도는 크게 바뀌었다. 원랜 2차 시험으로 1차에선 전공과 교육학을 시험 보고, 2차에선 수업 실연과 면접, 그리고 논술을 보면 됐지만, 이 해부턴 3차로 변경되었다. 그래서 1차엔 객관식으로 출제된 전공과 교육학을 풀어 합격자의 2배수를 뽑아내고, 2차에선 단답형과 논술형으로 출제된 전공을 풀어 1.5배수로 압축한 뒤, 3차에 수업실연과 면접을 봐서 합격자를 걸러내는 것이다.

시험 기간이 늘어나다 보니 당연히 시험을 보는 날짜도 앞당겨졌다. 원랜 12월 첫째 주 일요일에 시험을 보던 것이, 11월 첫째 주 일요일로 바뀌었다. 무려 한 달이나 시험 시간이 당겨지다 보니 수험생들은 더욱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조급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모든 상황이 잘 정비되면서 오히려 느긋하게 행동했다. 어차피 한 달이 당겨지나 미루어지나 모두에게 시간은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되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맘을 급하게 먹을 필요도, 무언가 부산을 떨 필요도 없다고 느껴졌다.

2008년 임용도 경기도에서 보기로 했다. 작년에 과락이란 엄청난 충격을 받긴 했지만 심기일전 했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임용제도가 바뀐다는 건, 장수생에겐 리스크가 큰 일이긴 하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기회이기도 하다.  

 

 

 

인용

목차

사진

1. 06년 임용: 첫 시험의 불안감을 안고 경기도에 가다

2. 06년 임용: 내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다

3. 07년 임용: 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4. 07년 임용: 광주에 시험 보러 와서 한계를 느끼다

5. 08년 임용: 시린 어둠과 찬란할 빛

6. 08년 임용: 기분 좋은 떨어짐

7. 09년 임용: 국토종단으로 반란의 꿈을 키우다

8. 09년 임용: 반란은커녕 뒤꽁무니 치다

9. 10년 임용: 마지막 시험에 임하는 자세

10. 10년 임용: 오수생 마지막 임용시험을 보다

11. 10년 임용: 시험이 끝나자 찾아온 활기

12. 10년 임용: 10년지기 친구들과 만나 즐기다

13. 때 지난 임용 낙방기를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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