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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07학년도~11학년도 한문임용 낙방기 - 8. 09년 임용: 반란은커녕 뒤꽁무니 치다 본문

건빵/일상의 삶

07학년도~11학년도 한문임용 낙방기 - 8. 09년 임용: 반란은커녕 뒤꽁무니 치다

건방진방랑자 2019. 4. 2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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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9년 임용: 반란은커녕 뒤꽁무니 치다

 

올해는 처음으로 임용을 전북에서 본다. 여태껏 경기, 광주, 경기 총 3번의 시험을 보면서 전북에선 절대 볼 생각이 없었다. 29년간 살아왔던 전북이란 홈그라운드를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북에서 3명의 한문교사를 뽑는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에서 교사를 하기 위한 도전이 시작된다.  

 

 

 

전북에서 시험을 보게 된 이유

 

그런데 작년에 경기도에서 떨어지면서 전북에서라면 붙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실제로 전북이 커트라인이 좀 더 낮아 붙을 수 있었던 점수였는데 경기도였기에 떨어졌으니 말이다. 만약이란 건 언제나 아쉬움을 토로할 때나 쓰는 것이기에, 그게 어리숙한 사람의 변명이라는 건 충분히 안다. 그러나 좀 더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 보면 나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 전북에서 보게 되었다.

더욱이 올핸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해다. 지역 가산점과 복수전공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좋은 기회를 날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만약 이런 좋은 상황에서도 떨어진다면, 그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내가 별 볼일 없다는 얘기겠지. 그렇다고 마냥 거만했던 것도 아니다. 기대는 품되 연이은 실패로 내 마음은 한 없이 작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기장엔 다음과 같이 썼다.

 

 

솔직히 자신감은 별로 없다. 꼭 될 거란 생각도 없고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단지 언제고 내가 꿈꾸던 일이 이것이었기에 이 길만을 뚜벅뚜벅 걸어왔을 뿐이다. 시험에 떨어진다 해도, 이 공부의 길을 떠나진 않을 거니까(2009.11.08)

 

 

시험을 보려할 땐 언제나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불안과 기대를 가슴 가득 끌어안고 도망치지 않고 걸어 들어가려 부단히 노력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베토벤 바이러스란 드라마를 보니, 강마에가 단원들에게 가진 것 없는 사람들도 이만큼 할 수 있다. 반란을 보여 줄 겁니다. 충분히 그럴 거라고 전.. 믿습니다(ep 5)”라는 말이 나오더라. 그 말은 나를 향해 하는 말처럼 또렷또렷하게 들렸다. 내가 시험을 잘 보는 게 반란일리는 없지만 계속된 실패 속에 성공한 것이기에 충분히 반란과 같은 뉘앙스로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늘 난 할 수 없어'라 생각하던 사람들의 열정을 보여준 드라마. 그래서 여러 번 봤다.  

 

 

 

시험의 위력에 휘둘려 꼬꾸라지다

 

하지만 시험은 최악이었다. 지금껏 3번 시험을 봤지만 이번처럼 시험을 보는 내내 무기력감에 짓눌리며 시험 문제에 손을 못 대본 적도 없었다. 시험 보는 내내 울고 싶었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험이 끝났다. 절망감이 감돌았다.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찍었으니. 시험은 끝났지만 시원하긴커녕 착잡함이 나를 짓눌렀다.

 

 

이렇듯 표현한 감정은 바로 나를 향해 퍼붓는 질타였다. 반란을 보여주진 못할망정, 뒤꽁무니 치는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여태껏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으며, 무얼 얼마나 했을까? 이런 한심한 상황이었기에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시험 시작, 교육학도 전공도 쉽지 않았다. ‘모르는 거나 처음 보는 건, 무작정 넘어가고 나중에 다시 풀자는 심정으로 풀었는데 그게 낭패였다. 솔직히 아는 게 별로 없이 거의 답을 적어 내려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맞다. 시험장에선 시험의 위력, 낯선 문제의 위력에 눌려서 휘둘리다 시험을 마치곤 했었는데, 바로 오늘 그랬던 거다. 시간이 자꾸 신경이 쓰였던 것도 그 이유다.

 

 

직면하지 못했고 어디든 우회로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것만 찾다 보니 시간은 흘렀고 난 비참하게 물러서야 했다. 이러고서도 한문을 공부했노라고 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긴장과 이완의 조화 없이 긴장감만 지속적으로 느껴야 했던 최악의 시간이었다. 그 결과 난 처참한 몰골로 고사장을 빠져 나와야 했다.

 

 

시험을 보러 가기 전에 이렇게 파이팅까지 외치고 갔지만, 결과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래서 바로 집에 가지 못하고 안개가 자욱한 모악산을 올랐다. 그러지 않고선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안개는 짙어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나았다. 지금 난 어떤 것도 제대로 보고 싶지 않았고, 그저 조금씩 보이는 길을 따라 어디로든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마치 천국을 향한 길인지, 지옥을 향한 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보고 자꾸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정상에 올라선 한참이나 그냥 멍하니 있었다. 한심함에 어리석음에, 부질없음에 몸서리치며 말이다.

 

 

후배가 정성껏 써준 응원의 메시지. 이 응원에 보답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험을 못 봤다는 건 알았지만 결과가 나오곤 정말 충격이었다. 그래서 변산으로 무작정 달려 갔다.  

 

 

인용

목차

사진

1. 06년 임용: 첫 시험의 불안감을 안고 경기도에 가다

2. 06년 임용: 내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다

3. 07년 임용: 한바탕 노닐 듯 시험 볼 수 있을까?

4. 07년 임용: 광주에 시험 보러 와서 한계를 느끼다

5. 08년 임용: 시린 어둠과 찬란할 빛

6. 08년 임용: 기분 좋은 떨어짐

7. 09년 임용: 국토종단으로 반란의 꿈을 키우다

8. 09년 임용: 반란은커녕 뒤꽁무니 치다

9. 10년 임용: 마지막 시험에 임하는 자세

10. 10년 임용: 오수생 마지막 임용시험을 보다

11. 10년 임용: 시험이 끝나자 찾아온 활기

12. 10년 임용: 10년지기 친구들과 만나 즐기다

13. 때 지난 임용 낙방기를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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