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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군대 수양록, 이등병 - 01.06.04 병이 주는 선물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이등병 - 01.06.04 병이 주는 선물

건방진방랑자 2022. 6. 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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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주는 선물

 

0164() 맑음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병에 걸려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확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병에 걸리게 되면 그 한 개인의 삶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바뀔 테지만, 그 주변인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우선 나와 같이 그렇게 심한 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보자.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심하지 않은 병에 걸림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피로와 스트레스에 억눌렸을 자기 자신을 회복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주위 사람들의 평소엔 볼 수 없던 각별한 관심을 보게 됨으로 그들과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게 된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푹 쉬었다. 금요일 저녁엔 비번이었고 토요일 저녁엔 감기로 인한 오한으로 야간 근무 한 시간 만에, 아니 두 시간 만에 대기라는 빈 시간을 통해 내려와 비번이어서 푹 자고 있던 이규희 상병님과 바꿔야 했다. 그런 이유로 난 본부에 와서 푹 쉴 수 있었으며, 주일 한나절 동안 본부에서, 혹 내 집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낀 채 뒹굴뒹굴 하기까지 했고 근무까지 빠지므로 저녁까지 푹 쉴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번 아프고 보니, 전혀 생각도 못할 정도의 재충전 시간이 허용된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나태해짐이며, 현실 부적응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재충전의 기회이지 않겠는가! 재충전을 통해 좀 더 군생활을 활기차고 윤택하게 해나가라는 그런 뜻!

 

그렇게 심하게 아프지 않았지만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이규희 상병님, 지혜식 분대장님, 박형국 일병님, 공용곤 상병님께서 신경 써주셨다. 그 누가 그랬듯이 자기의 모든 게 완벽할 때 잘해주는 사람보다 자기의 어딘가가 부족할 때, 그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며, 가족이며, 전우라고 했던 말,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나를 위해 비번의 희열까지 포기하고 끼니까지 챙겨주신 나의 아버지 이규희 상병님께 죄송한 마음과 함께 매우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아프다고 말하자 바로 조치를 취해 주고 아프면 자기 혼자만 서러운 법이야라고 말씀하시며, 나 혼자만 서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신경 써주시는 그 모습에 한없는 감동을 느꼈다. 또한 박형국 일병님의 재밌는 이야기는 병으로 답답했던 내 마음을 확 뚫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였고 공용곤 상병님께서 나를 위해 한 번도 해보신 적 없는 죽을 손수 해주셨다.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무한에 가까운 사랑을 받다 보니 얼마나 행복하던지.

 

하지만 심한 병에 걸렸을 때는 달라진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파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심한 병에 걸린 사람에겐 그렇게 누워 있는 시간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게 지루하고 힘겨울 뿐이다. 휴식이란 개념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로지 짜증과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그건 자기의 퇴보적 요소이므로 악영향이라 할 만하다. 주위 사람들은 어떤가? 그 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 자기의 생활리듬이 깨지는 건 둘째 치고, 현실 기반 중 가장 우선 되는 돈을 간병하는 데 모두 퍼부어야 한다. 그러하다 보니 더욱 관계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우린 간혹 TV 프로그램 중,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체를 궁지로 몰고 갈 것인가, 한 사람을 희생시켜 전체를 존속시킬 것인가 하는 논란거리를 놓고 갈등에 빠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오징어게임)나 영화(부산행)를 보게 된다. 분명 한 사람의 목숨이 천금보다도 귀하고 천하보다도 귀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주위 사람 모두의 고통을 각오하면서까지, 어쩌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그 사람을 위해 지금까지 꾸준히 지켜온 행복의 기반들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싶다. 이런 것 때문에 심한 병에 걸린 사람은 자기 자신도 힘겹고 짜증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쳐서 서로에게 다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렇듯 병, 그 자체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병의 강약에 따라 자기에게 끼치는 영향, 주위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 그 모든 게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봤다. 병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불행의 극명한 갈림길은 그 병 자체의 갈림길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인식 여하에 따른 것인지도 모르기에 좀 더 고찰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있어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일은 뭐니 뭐니해도 갑자기 아프게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군에서 아프면 자기만 괴롭다라는 명제를 일거에 날려버린 것과 함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고 편한 휴식을 푹 취할 수 있었으니 나에겐 그야말로 특별한 아픔의 시간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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