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박사 Live concert 1집
01년 6월 소초의 날 행사 때
[디스크 자키 모션을 취하며]
<디비디비딥~ 딥딥딥! 아싸 가리가리 고추 가리> 해 저문 소양강에 <우씌~ 우씌~ 우씌~> 황혼이 지면 <아싸 가리 가리 고추가리> 외로운 갈대밭에 <우씌~ 우씌~ 우씌~> 슬피우는 두견새야! <새야~ 새야~ 새야새야~ 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디비디비딥~ 딥딥딥!> FM Morning Date 명사의 한 마디 시간입니다. 오늘은 전주대 한문학과 교수 건빵 교수를 모셔놓고 명사의 한 마디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삼보다 산삼이 좋고 산삼보다는 중삼이 좋고 중삼보다는 고삼이 좋다더라~ 아~ 아!”
지나가던 여고생을 붙잡아 놓고 달콤한 사랑 얘기 들려줬더니, 아 글씨 그 년이 하는 말이~
(느끼한 포즈를 취하며)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사랑이었소.
필승(必勝)
일상이 파괴된다는 것
01년 6월 3일(일) 더움
일상성은 늘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기 때문에 지루함과 짜증스러움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행복은 그런 일상성이 깨진 다음에야 느껴지게 되니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이번 한 주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한 번은 깨잘깨잘 내리는 비 때문에 근무 서는 일상성에 큰 타격을 가한 적이 있었고 또 한 번은 투입 전에 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들입다 퍼부어대길래 우리의 근무에 대한 일상성(그저 맑은 날 밤공기를 가르며 근무 섰던 일상성)이 너무도 그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곧 그치게 되었으니 군장 검사 전에 그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날씨가 맑은 가운데 근무를 선다는 건, 늘 그렇게 근무를 서 왔기에 아주 지루한 일상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하지만 비가 와서 그런 일상이 깨지고 새로운 현실이 펼쳐진다는 것은 일상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또 하나는 어제부터 심한 고열 증세로 인해 많이 아팠다는 것이다. 병에 걸리는 것만큼 일상성을 파괴하는 주요인은 없을뿐더러 자기의 일상 파괴뿐 아니라 주위 사람 모두의 일상을 파괴하기 때문에 심각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너무 아픈 나머지 전반야(前半夜) 근무조차 설 수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 대기를 먹자마자 분대장님의 지시에 따라 난 침상에 누었고 곧 의무병 아저씨가 왔다. 의무병 아저씨의 진단은 단순히 편도선염(扁桃腺炎, Tonsillitis)이란다. 체온을 재어보니 39.4℃였다. 그래서 푹 쉬라는 진단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비번이었던 이규희 상병님이 나 대신 근무를 서게 되었다. 나로 인해 벌써 두 사람의 일상이 크게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되고 보니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거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세면을 마친 채, 본부로 왔다. 의무병이 주는 약을 먹고 너무나 그리웠던 침낭을 덮고 자려고 하던 그 순간에, 의무병은 열을 식혀야 한다며 머리에 물수건을 올려주었다. 또한 침낭도 가슴 밑으로만 덮으라고 하여 너무 추워서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의무병은 내 곁에 계속 붙어 있어서 열을 재어주고 물수건으로 덮어주고 했다. 난 코까지 골며 잠의 나래로 빠져들고 있었고 의무병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있었으니 염치없는 짓이라고나 할까!
오늘 일어났는데 여전히 그 모양, 그 꼴이라 체온이 내려가지 않아 수액을 맞았다. 그런데 역시 혈관이 좁은 탓인지 수액이 쉽사리 들어가지 않았고 내 팔은 자꾸 부어오르기만 했다. 역시 내 건강,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한 문제를 안고 있었나 보다. 아침, 점심 다 이규희 상병님이 챙겨주었다. 아버지와 아들이란 관계성(군대에선 1년 차이 나는 군번을 부자지간으로 부른다)으로 묶어진 우린 이럴 수밖에 없는가 보다.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나 보니 그런 일상이야말로 얼마나 큰 행복인지 느낄 수 있었다.
여담 : 내 동기인 상남인 맹장염으로 수술을 한 대고. 나와 닮았다던 박진수 상병님(물론 내가 보기엔 아니지만)은 어제 축구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발을 삐끗해서 압박붕대로 조치를 해놓은 상태이다. 거기다가 난 지금 이 모양이다. 나와 조금이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병으로 인해 일상이 파괴되었다. 왜 이 모양일까?
철원에 무더위가 내린 여름 어느날 3월 군번 기성이와 박진수 상병님과
병이 주는 선물
01년 6월 4일(월) 맑음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병에 걸려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확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병에 걸리게 되면 그 한 개인의 삶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바뀔 테지만, 그 주변인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우선 나와 같이 그렇게 심한 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보자.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심하지 않은 병에 걸림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피로와 스트레스에 억눌렸을 자기 자신을 회복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주위 사람들의 평소엔 볼 수 없던 각별한 관심을 보게 됨으로 그들과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게 된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푹 쉬었다. 금요일 저녁엔 비번이었고 토요일 저녁엔 감기로 인한 오한으로 야간 근무 한 시간 만에, 아니 두 시간 만에 대기라는 빈 시간을 통해 내려와 비번이어서 푹 자고 있던 이규희 상병님과 바꿔야 했다. 그런 이유로 난 본부에 와서 푹 쉴 수 있었으며, 주일 한나절 동안 본부에서, 혹 내 집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낀 채 뒹굴뒹굴 하기까지 했고 근무까지 빠지므로 저녁까지 푹 쉴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번 아프고 보니, 전혀 생각도 못할 정도의 재충전 시간이 허용된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나태해짐이며, 현실 부적응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재충전의 기회이지 않겠는가! 재충전을 통해 좀 더 군생활을 활기차고 윤택하게 해나가라는 그런 뜻!
그렇게 심하게 아프지 않았지만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이규희 상병님, 지혜식 분대장님, 박형국 일병님, 공용곤 상병님께서 신경 써주셨다. 그 누가 그랬듯이 자기의 모든 게 완벽할 때 잘해주는 사람보다 자기의 어딘가가 부족할 때, 그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며, 가족이며, 전우라고 했던 말,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나를 위해 비번의 희열까지 포기하고 끼니까지 챙겨주신 나의 아버지 이규희 상병님께 죄송한 마음과 함께 매우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아프다고 말하자 바로 조치를 취해 주고 “아프면 자기 혼자만 서러운 법이야”라고 말씀하시며, 나 혼자만 서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신경 써주시는 그 모습에 한없는 감동을 느꼈다. 또한 박형국 일병님의 재밌는 이야기는 병으로 답답했던 내 마음을 확 뚫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였고 공용곤 상병님께서 나를 위해 한 번도 해보신 적 없는 죽을 손수 해주셨다.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무한에 가까운 사랑을 받다 보니 얼마나 행복하던지.
하지만 심한 병에 걸렸을 때는 달라진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파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심한 병에 걸린 사람에겐 그렇게 누워 있는 시간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게 지루하고 힘겨울 뿐이다. 휴식이란 개념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로지 짜증과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그건 자기의 퇴보적 요소이므로 악영향이라 할 만하다. 주위 사람들은 어떤가? 그 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 자기의 생활리듬이 깨지는 건 둘째 치고, 현실 기반 중 가장 우선 되는 돈을 간병하는 데 모두 퍼부어야 한다. 그러하다 보니 더욱 관계는 힘들어지는 것이다. 우린 간혹 TV 프로그램 중,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전체를 궁지로 몰고 갈 것인가, 한 사람을 희생시켜 전체를 존속시킬 것인가 하는 논란거리를 놓고 갈등에 빠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오징어게임)나 영화(부산행)를 보게 된다. 분명 한 사람의 목숨이 천금보다도 귀하고 천하보다도 귀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주위 사람 모두의 고통을 각오하면서까지, 어쩌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그 사람을 위해 지금까지 꾸준히 지켜온 행복의 기반들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싶다. 이런 것 때문에 심한 병에 걸린 사람은 자기 자신도 힘겹고 짜증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쳐서 서로에게 다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렇듯 병, 그 자체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병의 강약에 따라 자기에게 끼치는 영향, 주위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 그 모든 게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봤다. 병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불행의 극명한 갈림길은 그 병 자체의 갈림길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인식 여하에 따른 것인지도 모르기에 좀 더 고찰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있어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일은 뭐니 뭐니해도 갑자기 아프게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군에서 아프면 자기만 괴롭다’라는 명제를 일거에 날려버린 것과 함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고 편한 휴식을 푹 취할 수 있었으니 나에겐 그야말로 특별한 아픔의 시간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전입 100일’을 축하하며
01년 6월 7일(목) 무덥다~ 물 줘~~
2월과 3월의 철원 땅의 추위, 그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삶의 극단이었다. 분명 한 겨울의 추위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될지 모르지만, 정말 추위 속에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군에 들어왔고 군이란 이런 거구나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방벽에 잡초들이 돋아나서 방벽에 가만히 멈춰 있으면, 풀내음이 코끝을 살살 자극하는 계절이다. 그렇게 가지 않을 것 같던 매서운 추위는 이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찌는 듯한 태양 아래, 이마에 주렁주렁 맺히는 땀방울들을 팔뚝으로 스치듯 닦아내야 하는 무더운 여름이 불쑥 찾아왔다. 개나리가 갑자기 하나, 둘씩 보이길래 ‘와! 철원에도 봄은 오는구나!’라고 감탄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모양이다.
이러한 계절의 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간은 정말 빠르다. 물론 지나간 시간에만 적용된다는 전제가 있지만. 입대란 짐, 상당히 무거워서 태연한 척 노력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많은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고 입대하고 나서 며칠간 그전과 마찬가지로 얼굴에선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너무 편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맘대로 그렇게 살 수 있었던 시간이 그리워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게 아닌가!
그렇게 신교대 생활에 적응해갈 무렵, 퇴소와 전입이라는 새로운 현실이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걱정하진 않았다. 자대에 가고 싶은 맘은 처음부터 있었고, 내 선임병들을 대우해주고 또 후임에겐 대우 받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오니 적응하기 힘들었고, 특히 낮과 밤이 바뀐 GOP의 생활은 좀 규칙적으로 살았던 나에게 매우 힘든 요소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한다. 시간 속에 내맡겨진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고 적응되어 가고 있었던 거다.
백일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고, 아직까진 그저 시작일 뿐이라는 것. 아직도 완전히 적응한 건 아니기에 좀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고 한참 겸손한 맘가짐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백일이 짧다느니, 길다느니 그런 걸 생각하기 전에, 그 백일이란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바뀌었고, 얼마나 남들 보기에 흡족할 정도로 변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그저 충실히 살자!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
지휘관의 가르침
◉ 근무시간(勤務時間)만큼은 열심히, 책임의식(責任意識)을 가지고 임(任)해라.
◉ 선임병(先任兵)은 후임병(後任兵)에게 사랑을, 후임병(後任兵)은 선임병(先任兵)에게 존경(尊敬)을.
나의 임무
◉ 전방(前方) 경계(警戒) 확실(確實)히
◉ 선임병(先任兵)과 후임병(後任兵)에게 인정(認定) 받도록 하자.
나의 각오
◉ 군생활(軍生活)을 좀 더 긍정적(肯定的)이고 활기(活氣)차게 하자.
◉ 후임병(後任兵)에게 진심(眞心)어린 관심을 베풀어주자.
◉ 근무시간(勤務時間)을 나름대로의 방식(方式)으로 즐기자.
대공(對空)에 서서
01년 6월 8일(금) 더움
GOP 근무 중, 가장 기대되고 가장 가슴 벅차며 행복한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대공 근무를 설 때다. 주간이든, 야간이든 간에 이러한 나의 기대치 및 만족치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주간 특히 A조나 D조 근무를 서면서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서서히 지는 장관을 두 눈으로 한없이 주시하고 있을 때면, 세상의 온갖 삼라만상을 내 두 눈으로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만 같은 뿌듯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 자연스럽고도 화사한 변화에 삶의 진한 감동과 삶을 살고픈 의욕이 들곤 한다.
그리고 그 끝없는 평강고원 끝자락에서부터 아이스고지의 끝자락을 시력으로 볼 수 있는 곳까지 전부 넣으려고 보다 보면 나의 인식 능력이 얼마나 협소한지 통감하게 되곤 한다. 그렇게 아름답고 광활히 펼쳐진 대지에 대해 탄복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건 극히 일부분임에 짠해지기도 한다.
주간근무조 편성에 따라 대공에 서서 정신없이 안보 관광을 와서 오고 가는 민간인들을 파악하며 그렇게 근무를 서고 있으면 힘든 일이긴 하고 그만큼 바쁘기도 하지만 민간인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힘겨운 줄도 모른다.
저녁에 대공에 서면 그 무수한 별빛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고 적막함 속에 아득히 들려오는 대남, 대북 방송 소리가 이채롭게 들리기에 왠지 모를 새삼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64 대공초소 앞에서 한껏 폼을 잡고서. 11월에 찍은 사진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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