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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군대 수양록, 상병 - 02.03.01~07 GOP의 마지막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상병 - 02.03.01~07 GOP의 마지막

건방진방랑자 2022. 6. 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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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대한 두 가지 반응

 

0235() 구름 많음

 

 

요즘은 겨울이 아니라 봄인 것만 같다. 분명 시기상으로 틀림없이 꽃 피는 봄이 왔지만, 작년 3월의 스산하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희뿌연 눈이 흩날리던 때와 비교해보면 너무 생판 다르기에 작년의 철원이 꿈인양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요즘 새벽의 온도라 봐야 영하 5도 밖에 안 내려갈 뿐더러 날씨가 흐려지더라도 눈 내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춥디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이렇게 선뜻 찾아와서 한 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 철원의 겨울다운 겨울을 나지 못했음이 못내 섭섭하기도 하다.

 

이렇게 변화된 날씨에 맞추어 우리의 생활도 변했다. GOP에서 FEBA로의 철수가 그것인데, 사실 저번 주까진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주 주일에 군장 사열을 중대장님에게 하면서 새삼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으로 철수 때 매고 갈 군장을 꾸리려니, 몹시 짜증스럽긴 했지만 오랜 염원이 이루어지려는 벅찬 감격이 들었다. 그때 이후로 오늘까지 군장을 꾸리느라 분주하고 오늘은 기여코 선발대(병장 이강석, 상병 박형국, 일병 유민호)2대대로 떠났다. 이쯤 되어 문득 새로운 세계로 떠나려 하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잔류하고 싶다는 후임들을 혹 보게 된다. 아무래도 선임들이 키워줬던 FEBA에 대한 환상만 있을 때와는 달리 대대 아저씨들이 키워준 FEBA의 안 좋은 선입견들이 더한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두려움, 그건 한자어로 恐怖(공포)라고도 쓰며 영어로 thrill(스릴)이라 하지 않던가! 두려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주일에 목사님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두 가지 뿐이란다. 그 첫째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을까하는 고소공포적(高所恐怖的) 두려움이며 둘째는 큰소리에 대해 만감이 교차하는 고성방가적(高聲放歌的) 두려움이다. 이 두 가지 두려움을 뺀 나머지 두려움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닌데 타인에게 들었던 선입견으로 인해 생긴 것이란다. 그러니까 FEBA라는 새로운 곳으로 가면서 생기는 두려움은 다름 아닌 얘기를 들어 머릿속에 들어간 선입견들의 조합으로 생긴 것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두려워할 필요는 아무 것도 없다. 군에 오기 전에 군이 혹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렵게 느껴지다가 막상 와보니 똑같은 사람 사는 곳이라 느낀 것이랄지, 초여름에 수문 개폐를 하면서 밤에 물이 많이 불면 그 굵은 빗줄기를 다 맞아 가면서 수문 개폐를 하고 판망, 크레모아를 제거해야 한다는 두려움은 막상 그게 현실이 되었을 때 무척이나 암담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물흐르듯 흘러 지금은 아련한 추억 따위로 전락해 버린 것 따위가 바로 그런 예이다. 지금은 두렵고 그럴진 모르지만 막상 그곳에 가서 적응하다 보면 언제 그런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냐는 듯 까마득하게 느껴질 것이고 오히려 지금이 낫다고 생각을 하게 될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즐길지어다 그대여.

 

 

 

 

사람의 아들을 통해본 종교성

 

0235() 구름 많음

 

 

종교가 무엇인가? 종교의 본의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종교를 믿고 그 종교에서 내세우는 교리를 이행하려 하는가?’

 

뭐 이러한 물음은 종교적인,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라면 원초적으로 지닌 물음이리라. 그 물음에 대한 당연한 대답은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에 버거운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하다 보니 인간 이상의 초월적 존재를 희구하게 되어서 결국 형이상학적인, 즉 우리들의 두뇌 활동을 벗어난 초월자인 신을 만들고 섬기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히 같은 초월자를 모시는 사람들이 등장했을 것이고 그들은 한 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했을 것이다. 어떤 모임이든 법적 체계가 갖춰져야 공동체가 분란이 생기지 않고 유지될 수 있듯이 이들은 자연히 교리를 만들고 그걸 상징화한 교회나 절 등의 체계가 갖추어진 종교기관을 세웠을 것이다. 그 종교를 합법화해야지만 핍박을 받지 않고 종교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이나 불경 같은 문서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일관된 가르침을 전달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분명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그건 무신론자일 것이다.

 

그렇지만 신자들은 여기에다 그런 절박함과 애틋함의 감정이 종교를 창시케 된 배경이라면 신이란 사람은 그런 감정을 인간 개개인에게 부여함으로 인해 신의 존재가 은연 중에라도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것이며 결국 그건 신을 믿도록 하기에 그러한 감정의 과정과 과정이 종교를 가지게끔 하는 결과까지 모조리 신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예일 뿐이다고 덧붙인다. 어디까지가 옳고 그른가를 떠나서 어차피 인간은 종교와의 불가분적 관계에 있으며 그것이 하나의 자각 요소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사람의 아들은 이문열씨가 쓴 좀 깊이 있는 종교 소설이다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적 회의론에 빠져 아하페르츠교를 창시케 될지도 모르는 그런 소설이지만 그건 역시 소소한 말다툼에 불과할 뿐이다. 종교적 배경 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탐구하고 세세한 것조차 뒤집어 생각해보는 건 틀림없이 좋은 행동일 수만은 없다.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길을 놓고 가까운 고속도도로 갈 수도 있는데 그냥 국도로 빠지고 산보로 가서 더욱 멀리 삥 돌아오는 결과 밖에 초래하지 않기에 결국은 고속도로가 가장 빠르구나하는 후회스런 결과 밖에 알지 못하다. 이것도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이러쿵 저러쿵 따져서 기독교를 버렸다가 그 속에 쪄들어 있었던 자기의 모습 때문에 다른 종교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늦게서야 귀의하게 된다손 치더라도 그건 내 종교가 최고였구나하는 결론만을 얻어낼 뿐이다. 그러니 그동안의 시간 여하는 허무맹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

 

바로 민요섭이란 인물이 이 전형적인 예이리라. 절실한 신자로 신학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다니다가 회의를 느껴 좀 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신상(神像)을 찾아 떠난다. 그렇게 빈민구제, 노동쟁의 등의 실질적인 행동만을 추구하며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정립해 간다. 그 와중에 쓴 소설이 아하스 페르츠이다. 그의 대리인이자 하나님과 대립하는 악마로 성경에 묘사된 인물을 희화화해서 쓴 것이다. 그러던 중 여관집 아들인 조동팔에게 깊은 인식의 변화를 주어 자신의 추종자로 만든다. 물론 조동팔의 의지로 말이다. 그렇게 조동팔 혼자서 요섭을 깍듯이 모시며 지상낙원을 꿈꾸며 그렇게 살아가다가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정립해 나간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정립은 막다른 벽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들이 정립해 놓은 신은 그저 맘씨 넓고 모든 걸 다 들어주는 허상적인 바람일 뿐이었다.

 

그런 바람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알아버린 민요섭은 너무나 급진적으로 자기의 사상에 빨려 들어와 모든 것을 다 퍼부었던 조동팔에게 죽임을 당한다. 모든 걸 다 줄 만큼 급진적이었기에 그에 대한 실망 또한 더욱 컸으리라. 종교적 사상을 따지는 것은 올바른 신앙을 위한 척도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회의적으로 만드는 요소임엔 틀림없다. 하나님의 존재하심만 믿는다면 그것만을 붙들 것이지 인간의 문자화된 소치의 영역에서 그를 한정시키려 해선 안 된다. 진정 중요한 건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사실일 테니 말이다.

 

 

 

 

마지막 근무와 첫 행군의 기대

 

0237() 맑음

 

 

끝은 시작의 다른 말이다. GOP 생활의 끝, 그건 곧 FEBA 생활의 시작이란 말이다.

 

마지막 주간 대공근무’ ‘마지막 전반야 근무’ ‘마지막 새벽 취침등으로 GOP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렇게 끝이라 생각하고 나니 무척이나 아쉽고 무척이나 섭섭했다. 지겹도록 보아온 곳이고, 질리도록 굴러온 곳이련만 막상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새삼스레 더욱 주의 깊게 보게 되었던 것이다. 문득 몇 년 전에 수능을 볼 때 농고까지 버스를 타고 가던 어둠이 짙게 깔린 야경이 생각난다. 분명 별스럽지 않은 일상 속에서 늘 특별히 신경 쓰지 않던 주위 풍경이었지만 감정에 변화가 생기니 평이하던 장소가 한순간에 뭔가 의미 있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그러한 생각의 변화 속에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근무라고 생각되는 순간부터는 거의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더라.

 

난 여전히 전반야 근무였기에 덜덜 떨면서 근무에 투입해야 했다. 오늘 새벽에 철수를 하는데, 근무에 투입할 때 춥지 않기 위해선 당연히 깔깔이를 입어야 했지만 네 시간 동안 땀 흘리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조금 추운 걸 감수하고 깔깔이를 챙겨두는 게 낫다. 마지막 근무는 용철이와 함께 였고 엊그제 눈이 내린 후로 갑자기 추워졌기에 난 덜덜 떨면서 근무를 서야 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추워진 날씨 덕에 오히려 몸을 바들바들 떨며 자체 운동을 하니 어찌 보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전반야에 투입하기 전에 분대장님이 행군 도중에 낙오하지 마라라고 단속하면서 그렇게 걷는 건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힘든 거니까 아무리 힘들더라도 낙오할 생각은 하지 말고 꾹 참고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을 해줬다. 그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행군은 힘들기에 맘을 단단히 먹고 하다 보면 오히려 더 수월할 거라는 것이다. 사실 신병교육대에서 행군을 한 이후로 한 번도 행군을 해본 적이 없기에 걱정이 됐다. 그땐 정말 참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때보다 더 장시간이고 더 무거운 짐꾸러미를 들고서 가야 하니까 더더욱 힘들거라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늘 편안히 버스를 타고 갈래? 새우깡을 먹으며 걸어서 갈래(그 당시엔 버스비와 새우깡이 150원 정도로 가격이 같았다)?’라고 묻는다면 후자를 선택하는 나였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하게 될 오늘의 행군 또한 즐겁게 즐기면서 할 자신이 있었고 이 행군이 우리의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기에 당당히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이런 모양새로 우린 철수행군을 하게 된다. 그것도 야밤에 말이다.  

 

 

철수의 순간을 기록하다

 

0237() 맑음

 

 

후반야 근무자와 비번자들은 대기막사에서 쉬면서 7중대 아저씨들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도착하면 바로 탄띠를 바꾸고 군장끈을 결속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하면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반야들은 여전히 상황에 상관없이 근무에 투입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들의 기분은 한결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기에 보통 때 근무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들떠서인지 시간이 무지 더디게 갔다. 원랜 여섯 타입 근무제지만 오늘은 22시까지 근무하고 그 뒤로 A형 근무였기에 세 타임 근무만을 서면 되었다.

 

마지막 근무지인 대공에 올라갔더니 벌써 2대대 사람들이 입성했댄다. 다른 때는 전혀 볼 수 있던 거무스름한 무리떼가 신3번 도로로 북상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이미 왔다고 하니 아쉽더라. 과연 우린 어떻게 근무를 서다가 어떻게 철수 준비를 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런 걱정을 뒤로 하고 근무 교대자들이 올라왔다.

 

교대를 하고 우린 뛰어서 내려갔더니, 역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7중대 아저씨들이 A형 투입을 위해 군장 검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우린 철수와 함께 A형 투입을 위해 마지막까지 빈틈 없이 점검하고 있었다. 철이와 난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탄을 인수인계 해주고 탄띠를 인수인계 받았다. 모두의 군장을 등에 짊어지고서 투입로까지 이동했다. 그곳에 군장을 놓고 소총만 가지고 투입하므로 A형 투입 철수와 함께 바로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왔다. A형 투입진지는 B3조답게 68초소였다. 가서 보니 이미 중대 아저씨들은 투입해 있었다. 그 아저씨들하고 이러쿵 저리쿵 얘기하면서 앞으로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1130분이 되자마자 일제히 철수했다. 이젠 영영 안녕이다. 7중대 아저씨들은 오늘 새벽 내내 한숨도 자지 못하고 A형 투입이란다.

 

그래서 우리 중대만 철수해서 탄약고 앞에 잡합했다. 이미 내려져 있던 군장을 매고 그 위에 총을 얹은 뒤에 우리 중대원들은 전망대 앞에 도열했다. 기다리던 순간에 왜 그리도 추웠는지 오히려 빨리 철수하고플 뿐이었다. 드디어 행군 시작! 당연히 신3번으로 남하할 줄 알았다. 그렇게 말해왔고 그 길은 잘 닦여진 길이었기에 걷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모든 예상과 구설수를 깨고 전혀 아닐 거라 생각했던 구3번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비포장 도로길을 따라 가다니, 전혀 생각지 못한 만큼 더 힘들게 느껴졌다. 10kg에 육박하는 군장을 메고 그 위에 K3까지 얹고 걸어가는 길은 조금의 굴곡에도 쉽사리 흔들렸으며 움푹 들어간 곳이 걷다 보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다. 역시 힘들다. 신교대 때 행군을 하면서 힘들었던 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1년 만에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가다가 총 두 번 쉬었다. 첫 번째는 대대 CP 후방에서였고 둘째는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그곳이자 고등학교 졸업 여행에서 왔었던 폭파된 철원 노동당사에서였다. 두 번 쉬는 동안 한결 같았던 건 움직이는 동안엔 땀이 날 정도로 더웠지만 그렇게 쉬는 동안은 매서운 칼바람에 등골이 오싹해져 오히려 쉬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꼭 행군하는 게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행군 자체도 힘들었지만 특히 왼쪽 군장끈이 자꾸 미끄러져 풀리는 바람에 계속 그걸 조절하며 걷느라 그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노동당사에서 쉴 때 대대장님의 훈시(訓示)가 있었다. GOP에선 순찰자로만 보여 좀 요원해 보이던 그분이 막상 이 자리에 서서 훈시를 하고 있으니 꼭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더욱 맘에 드는 건 다른 지휘관들에 비해 우리들에게 지시하는 투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경어를 써서 충분히 우리를 예우해주는 듯한 말투로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런 아주 사소한 예우가 그 사람을 더욱 존귀해 보이도록 했다. 아무래도 이런 이유 때문에 사소한 것에서부터 다른 사람을 예우하면서 살라고 하는 거겠지.

 

잠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둠을 뚫고서 여전히 똑같은 배경의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진짜 수면 중에 걷는다는 게 뭔지를 체험해 볼 수 있었고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사단장님이 있다던 율지리 삼거리에 드디어 도착했나 보다. 앞에선 군악대의 군악이 새벽의 적막함을 깨며 연주되고 있었다. 그곳에는 사단장, 연대장을 비롯한 예하 참모들이 우리를 환대하고 있었다. 새벽 잠도 쫓아가면서 우리들을 그렇게 맞이해야 하는 그네들의 입장도 참 가련할 뿐이었고 그만큼 GOP 순환은 사단 내의 중요한 일정임을 알 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 간에 동병상련을 느끼는 걸 테니 말이다.

 

거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무려 30분이나 더 걸어서 율지리 대대에 입성하고 나서야 끝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내무실도 좋았고 대대 전경도 좋았다. 특히 우리 중대 뒤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왜인지 맘이 놓이더라. 이제 새로운 군 생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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