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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수양록, 일병 - 01.08.04(토) 빗방울에 담긴 추억담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일병 - 01.08.04(토) 빗방울에 담긴 추억담

건방진방랑자 2022. 6. 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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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에 담긴 추억담

 

0184() 매우 더움

 

 

저번 주 토요일부터 그렇게 무덥게 내리쬐던 하늘에서,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지금까지 주말이면 늘 내렸던 비와는 달리 어두우리만치 아련한 추억을 던져줄 전주곡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쉽사리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긴 태풍의 영향에 의한 비였으니 쉽게 그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날이 아니었다.

 

주일 저녁, 전반야(前半夜)였다. 다행히도 비는 내렸다 말았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근무는 꽤나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합동 근무 시간 몇 분 전부터 감히 맞설 수 없을 정도의 비가 들입다 퍼붓기 시작했다. 그 비로 인해 우의를 입었음에도 전투복은 다 젖었고 전투화는 신은 게 더 불편할 정도로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런 짜증 속에서도 나름대로 희망이 있었던 까닭은, 이젠 잘 수 있겠거니 하는 안도감과 자고 일어나면 비가 어느 정도는 그쳐 있겠지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들어와서 현실을 잊어갈 꿈의 세계로 무한정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빨려 들어가는 도중, 난 삶의 뼈저린 아픔을 몸소 체험해봐야 했다.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은 둔탁한 기상이란 소리에, 이제 막 잠든 전반야 근무자들은 허겁지겁 일어나야만 했으니까. 시간이 무려 한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절로 일어나진 건 상황병이건 GOP 초병이건 간에 현실 사태의 긴박함을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우린 일어나서, 우리가 생각했던 거 이상의, 더욱 비참한 현실을 맞이할 수 있었다. 대교천 수위가 120cm에 육박했기 때문에 판망을 제거하고 크레모아를 수거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평소 35cm였던 대교천 수위가 그렇게까지 높아지리라 생각하지 못했을뿐더러 재해대비 매트릭스(Matrix), 대교천 수문 개방 행사시, ‘가끔 비 속에서 정령 이러한 행동들을 하고 있어야 하는 구나하고, 좀 비현실적이었음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그게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린 억수로 퍼붓는 빗방울 속을 헤쳐나갔다. 미처 탄을 수령 받을 여유도 없이 대교천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만큼 북한군의 위협보다도 비로 인한 우리 지역의 피해를 걱정하고 있을 정도니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감히 짐작해볼 만하다. 나는 동주와 같이 판망 제거조 엄호를 맡게 되었다. 대교천의 그 날카롭게 흘러내리는 거대한 폭포수 같은 냇물을 보면서 정령 자연 앞의 인간이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이며 얼마나 허례허식에만 가득 찬 존재인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떨어지는 장대비 속에서도 몇 분 못 자고 나온, 나는 비몽사몽간이었으니까 할 말 다 했다고나 할까. 그땐 오히려 추웠기에 삶을 더욱 비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과연 내일 아침, 아니 오늘 아침이 돌아올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가만히 있는 내가 이런 생각을 했을 정도인데, 과연 실전에서 뛰던 분대장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렇게 있자니 갑자기 대대장님께서 오시더니, 66초소 내로 들어가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 말 한 마디에 너무나 감사한 생각을 하며 동주와 난 초소 내로 투입했다. 우선 비를 피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았고 그 공통의 관심에서 열외될 수 있음이 좋았다. 그건 이를테면 열외의식의 극치였다고나 할까? 그런 와중에서도 밖에서 수위를 파악하고 있는 기영재 일병, 대교천 동초를 서고 있던 기성이를 보면서 가슴 한 곳이 아려오는 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초소 내에서 바람을 피하며 있자니, 더욱 잠이 밀려드는 것이었다. 그런 한 소대가 벌컥 뒤집어질 정도의 난리 속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욕구만을 충족하고자 하다, 사람이니 어쩔 수가 없다. 어찌 보면 너무 본능적인 욕구대로만 사는 동물 같은 생각이 들어서 왠지 찝찝한 생각이 든다. 작업조들이 분주히 움직이다 보니 동이 터서 철수를 하게 되었다. 얼마나 먹구름이 짙게 꼈던지 동이 트는지조차 모를 정도의 날씨였다. 그런 피로와 온 몸이 눅눅하고 축축한 짜증 가운데 오전 대공 근무까지 서야 했다.

 

그렇게 연이은 3일간 쉴새없는 비가 내렸다. 그러다 보니 젖어 있는 군복, 냄새 나는 군복을 입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만큼 각자가 기분도 좋을 수가 없어 소대 분위기는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꼭 이런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질 않더라도, 내 기분 역시 최악이라 부정적인 생각이 연거푸 들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날씨가 개어 해가 떴을 땐, 모두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해라는 여름에 있어서 만큼은 뭐니 뭐니 해도 짜증의 대명사요, 활동을 방해하는 방해꾼의 이미지다. 하지만 한 여름의 쏟아지던 빗줄기 가운데 구름은 어느새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화사로운(이러한 극단의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햇살은 더 이상 그런 안 좋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 희망을 선봉자요, 삶의 동반자일 뿐이다. 사실 너무 웃긴 거 같다. 같은 태양을 보는 관점이 이리 극단적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한 현상, 사물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다분히 주관적이며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빗 속에 맺혀진 아련한 추억은, 빗줄기 속에서도 삶의 의미와 삶의 활기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도록 해준 귀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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