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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군대 수양록, 일병 - 01.12.01~29 폭설, 화이트 크리스마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일병 - 01.12.01~29 폭설, 화이트 크리스마스

건방진방랑자 2022. 6. 3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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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폭설에 바뀐 감정

 

01121() 폭설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린다던 철원에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다. 작년엔 11월 초순에 첫 눈이 왔다던데 여긴, 아니 올해는 이상하게도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작업이란 의미 밖에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은근히 군에서 맞이하는 첫눈이니만치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사실 신교대에 도착하던 날에 눈이 엄청 내리긴 했다).

 

그렇게 나름의 조바심을 느끼게 하던 눈이 지금 밖에 엄청 내리고 있다. 그것도 화려한 신고식이라도 하려는 듯 진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다. 싸리눈이었기에 쌓이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렇게 작은 눈들도 계속적으로 많이 내리다 보니 어느덧 보지 못하던 사이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곳이 남한 최북단 철원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난 간혹 이곳이 정령 철원이란 곳임을 잊고 살 때가 있다. 많이 익숙해졌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그만큼 정신없이 산다는 얘기도 되리라. 우린 쏟아지는 눈살을 뚫고 탄박스를 가지러 갔고, 그렇게 싸리비를 가지고 돌아왔다. 투입로부터 교통호 구석구석을 후반야 및 비번자들이 다 쓸어야 한단다. 앞으론 그게 우리의 현실이 된 것이다. 사회에선 인공눈까지 만들며 눈이 가지고 있는 속성(차가우면서도 미끄러우며 뭉쳐지려는 본질)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고, 관계와 관계를 더욱 돈독히 유지케 해주는 하나의 관계물로 여길 것이며 하얗게 덮힌 세상을 하나의 관조물처럼 보듯이 관망할 것이다. 이 말을 쉽게 말하면, 사회에 있어서의 눈이 좋게 보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눈을 보고 있노라면(눈을 억지로 채우지 않는 곳이기에 관망할 때가 좀 많다). 예전에 나의 일기에 쓴 것처럼(눈으로 덮힌 세상을 평등한 예스런 세상이라 했다) 순수방울, 나의 옆구리 허전함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눈에 대한 사치스러울 정도의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내가 너무도 부럽다. 역시 모든 행복은 내 곁에 있을 때, 느낄 수 없나 보다. 뭐든 그것이 우리 곁을 떠났을 때, 그것이 얼마나 좋았던 것이었고 우리에게 거대한 의미였는지를 느끼게 되는 게 아니겠는가!

 

어제 전원투입 간에 후반야들이 제설작업을 했고 오늘 전원 투입 때부터 10시까지 거의 4시간 정도를 제설작업했다. B블로 전술도로 상에 쌓인 눈을 정신없이 다 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길목이었지만 오늘은 주말이었기에 이제 쉴 수 있다는 기쁨에 그 힘듦을 다 마다한 것이다. 하지만 그 힘듦을 감안하지 않고 회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깐. 정말 쉬엄쉬엄 작업을 했음에도 버거움이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다. 하긴 요즘 들어 빡세디 빡센 작업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싸리비로 쓸다 보니 거의 끝이 보였다. 끝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쓸었다. 그땐 눈이 별로 안 쌓였다는 현실에 그나마 감사를 했다. 쓸고 마무리를 짓고 정렬한 후 복귀를 했다.

 

그때까지 만해도 그게 끝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제 쉴 수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 중 오산이었다. 중대 복귀하자마자 새로운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연병장 전체 제설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넓디 넓은 연병장 눈을 어떻게 다 치우란 말인가! 정말 너무 헛짓 잘 시키는 군대임을 알지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작업을 하라는 데에 이르러선 혀를 내둘렀다. 처음으로 넉가래질을 해봤다. 처음엔 좀 폐급을 잡아서 힘들었는데 결국 좋은 걸로 바뀌어서 수월히 할 수 있었다. 진짜 너무 넓은 면적을 치워야 했기에 그렇게 힘들 수 없었다. 그 작업으로 인해 눈이 우리에게 끼칠 엄청난 비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였다. 이번 한 번의 경험으로 인해 처음엔 반가운 감정이 들었던 눈이 지겹다 못해 저주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게 바로 삶이다.

 

 

1년 뒤인 02년 12월 2일에 페바에서 병장이 되어 동기들과 찍은 사진. 철원은 눈이 정말 많이 내린다. 짬이 안 되던 GOP시절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영하시대 개막과 다짐

 

011214() 무지 추움

 

 

어젠 영상의 날씨였다. 그래서 흐린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EENT일 땐, 눈 대신 비가 내린 것이다. 겨울에 비가 오다니, 얼마나 포근한 날씨인 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나의 은근한 바람대로 합동근무 투입하려 할 땐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도는 영상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바람으로 인해 체감 온도가 낮았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렇게 조금의 눈이 내린 밤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아침엔 그저 평이한 겨울의 날씨여서 별반 걱정이 없이 구보 후 잠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후였다. D조 근무 사수였기에 일찍 1250분에 일어나야만 했다. 그런데 다른 때완 달리 진짜로 침낭에서 나오기 싫다는 걸 느꼈다. 도대체 날씨가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중에 대공 온도를 알아보니, 영하 8도란다. 어떻게 햇살이 저렇게 내리쬐고 있는 오후에도 새벽의 그 어슴프레함보다 더 더 추울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우리들의 현실적 암울함을 더욱 배가시킨 말은 이게 시작이군, 앞으론 이런 날씨가 계속 될 거야.”라는 김솔잎 상병의 말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선 것이며 영하 시대로의 진입을 한 것이리라.

 

여름과 그 짜증 나는 비와 무더위 속에서도 내 자신을 돌이키며 느낀 거지만, 난 그러한 더위와 찌꺼분의 짜증이 겨울 속의 힘듦보다 배나 나은 것이다. 그러한 나이기에 지금은 그저 걱정스러울 뿐이다. 이렇게 암담하고도 참혹한 겨울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걱정인 것이고 이 추위 가운데서 참아내며 근무 잘 설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난 어떤 일이든 미처 몸으로 겪어보기 전에 걱정 먼저 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남들로부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단 소릴 듣는 것이고 걱정도 사서 한다라는 비아냥을 듣는 걸 거다. 하지만 나도 사실 그러한 사실을 알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날 자꾸 그렇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현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이 버겁고 힘들게 할지라도 결코 그대가 그걸 즐겨야 하는 까닭은, 나 하나로 인해 슬퍼하고, 기뻐할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들었을 듯한 이 말, 힘듦에 지쳐서 포기하고픈 사람들에게 결단코 세상은 살아야만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일 거다. 그대의 값어치를 그대 혼자 판단해 버리기 전에 주위 사람들을 통해 나의 가치, 그대의 가치를 바로잡아 가야 한다.

 

영하시대의 개막, 결코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 암담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것보다 더 혹한에서도 사람은 살았고 이런 가운데서도 군 생활을 잘 마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집중하며 이겨나가며 즐길 것이다. 이 추위를 이김은 결국 나를 이기는 것이고 이 어려운 세태를 이기는 것일 거니깐.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부심 아니겠는가! 군대엔 한 번 정도는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부모라는 온실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첫 경험을 하게 되는 계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보호의 틀을 떠나 잘 적응해왔으니 당연히 자부심이 쌓일 수밖에 없고 그런 자부심을 이 험한 세상에 도전케하는 용기로 변할 것이다. 영하의 시기도 잘 참아 나가자 이깟 걸로 무너질 내가 아니다.

 

 

02년 1월에 찍은 사진. 일병 말호봉 때 얼어붙은 강물 위에 서서.

 

 

그저 이루어지는 건 없다

 

011217() 눈 조금 내림

 

 

성경 첫 구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라는 글귀가 써 있음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자연이란 어감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연적으로 누군가와 상관없이 생성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분명 그런 사람들은 인간의 출현 또한 누구의 입감이나 창조력이 없는 것쯤으로 생각할 게 분명하다. 과연 누군가의 의지에 의한 창조가 맞냐, 그렇지 않냐는 약간의 종교성과 비종교성 가운데 대립이요, 그저 불명확하게 끝날 형이상학적인 논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선 길게 논하지 않을 것이며 논쟁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여기서 일축하겠다. 하지만 이런 논쟁거리를 떠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어떠한 형상, 사물이든 그저 이루어진 건 없다는 사실이다. 분명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이룩되도록 만든 뒷 손이 있다는 얘기다. 하나님은 말씀이란 노력을 통해 인간과 천지, 그 모든 것을 이루고 만들어 내셨으며 그 속의 인간들은 인공 구조물을 인력의 노력을 통해 이룩해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뭐니 뭐니 해도 인간의 노력일 것이고, 그건 곧 인공물창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무심히 스쳐지나간다. 인천국제공항, 63빌딩 등 눈에 보기에 한없이 좋아보이는 것들을 보면서, ‘멋있네’, ‘대단해등등의 얘기 밖에 할 줄 모른다. 그건 그것이 만들어지도록 애쓴 사람의 노력까진 생각하지 못한 것이고 그저 보기에만 좋다는 사실에 관점을 얘기일 뿐이다. 나도 처음에 군에 왔을 땐, 전방의 대전차 방벽, 초소들을 보면서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지. 그걸 이룩해 놓은 손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역시 지금 생각해봐도 민간인적 사고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사고는 머지않아 바뀌게 되었다. 창조와 작업의 군대에서 그런 생각이 유지될 리는 만무했으니까.

 

전투시설물의 훼손된 곳 우리들의 작업이 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고, 모든 건축물들은 다 우리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요즘 우리 2연대 G.O.P 지역에선 대대적인 공사 중이다. 무슨 공사냐하면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나기 위해 초소 전방에 유리창을 다는 공사를 하는 것이다. 저저번주 토요일부터 대공에 유리를 다는 공사를 시작으로 이번 공사는 시작되었다. 그래서 고정적인 작업 인원을 배치시켜 작업을 하게 되었고 그 외에 인원들은 비번자 거의 없는 근무를 피곤함에 절어간 채 하게 되었던 것이다. 2주일 정도가 지난 지금 65초소를 뺀 모든 초소에 유리창문이 있고 대공엔 뒷문을 달고 있는 것이다. 이 작업으로 인해 모두 피곤하고 그걸로 인해 초소에 투입해선 그다지 추운 게 없게 되었다. 만약 이대로 3대대에게 인수인계를 한다면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원래부터 이렇게 있었거니 할 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의 시각은 180도 바뀌어서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볼 때 그것이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캐내어 내려 노력한다. 그건 비단 인공물, 자연물을 구분치 않고 나타난다. 분명 자연물을 보면서 저토록 신기하도록 만들어내신 신을 경외할 뿐인 것이고 인공물을 보면서는 기술의 신비와 함께 나였으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하는 존경심만을 가질 뿐이다.

 

스치다 보면 놀라워보이는 그 모든 것들은 다 그저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011224()~25() 구름 껴있다가 폭설

 

 

어느덧 올해 마지막 대축제인 크리스마스가 내일로 다가왔다. 이건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며 새해 또한 며칠 후에 다가올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다가오고 나니깐 내 군 생활도 일년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함이 느껴진다. 과연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시간이 흐르긴 흐르나 보다.

 

오늘도 여전히 후반야다. 그것도 B블록 말대기인 B5조이고 부사수는 안전조장에서 벗어나 투입한 지 얼마 안 되는 현호이다. 잘 근무설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어김없이 1130분에 기상했다. 역시 매우 일상적인 평일이요, 그저 의식화된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맞이할 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상성에 조금이라도 특이성을 줄 만한 일이 생긴 것이다. 첫 대기를 마치고 오신 분대장님이 밖에 눈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수은등 쪽을 바라보니 새하얀 눈들이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호와 난, 계속 어둠 속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눈이라는 특이 현상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역시 인간의 시각이란 모든 것을 다볼 수 있을 것 같이 하지만 어떤 것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것은 미처 눈치 채지 못하는 편협성을 가지고 잇다. 그렇게 내리던 눈은 금세 함박눈이 되었고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인 셈이다. 만약 우리가 사회인이었다면 끊이지 않게 전화했을 것이며 전화를 받음으로 벅찬 기쁨을 서로 나누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내리는 눈을 보면서 현호와 난 한숨을 연거푸 내쉬기 시작했으며 괴로워질 오늘에 대해 한탄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같은 날, 같은 현상을 보면서 처한 배경에 따라 전혀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인가?

 

감정의 희비극이 왜 생기는지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래도 같은 현실과 현상에 대해 너무 극단의 감정이 드는 게 난 더 흥미롭고 신기하다. 민간인들은 눈을 눈으로서 즐길 뿐이고 군인들은 눈을 전투방해물 정도로 느낄 뿐이다. 이 차이가 결과적으로 민간인들에겐 재미있는 놀잇감 정도로 생각하게 하는데 반해, 군인들에겐 금세 치워야 할 버거운 방해물 정도로만 생각하게 하기에 군인들은 그게 미쳐 쌓일 겨를도 없이 치워야만 한다. 그러한 생각과 행동의 차이로 인해 서로의 극단의 감정이 드는 것이다.

 

난 열심히 눈을 쓸었다. 첫 대기는 포기할 정도로 열심히 쓸었고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새벽을 그렇게 연 것이다. 그렇게 계속 두 시간 가량 눈이 내렸고 초소에 투입해서까지 눈을 쓸어야만 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 여기서 발생한 것이다. 눈이 내리는 것에 따른 감정의 희비극, 그리고 눈을 치움에 따른 힘듦.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생동력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눈이 내릴 때, 이게 내 삶에 얼마나 큰 방해물이 될지 정말 많이 답답해하고 짜증나라 했지만, 막상 이게 내 현실이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열심히 쓸어보자라고 의식을 바꿔 눈과 대면한 결과 눈이 휩쓸려 뿌듯함을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회피와 대면, 그건 크나큰 행동성향의 차이이면서도 커다란 격차의 의식을, 감정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나름대로 뜻깊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맞이한 것만 같아 너무나 행복했고 그저 일상성에 절어버릴 대로 절어버린 그런 평이한 크리스마스가 아닌 뭔가 나에게 의미 깊고 뜻깊었던 오늘이었기에 기분이 좋았다.

 

오늘 겪게 된 일련의 감정 변화, 그건 오늘이 적어도 내 의식 속에서 오늘이 얼마나 큰 날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으며 직접 대면했을 때의 그 쾌감이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군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뜻깊게 보낼 수 있어 무지 좋았다.

 

 

 

 

선임병의 상()

 

011228() 맑음

 

 

선임병과 후임병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어 갈등을 겪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하지만 이곳은 사회와는 달리 느슨한 시간 뒤에 서서히 입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단시간 뒤에 입장이 바뀌는 것이기에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입장적 행동에 대해 오류를 일으킬 때가 있다. 군이란 계급 사회가 원래 그렇다라는 관념에 의해 군대의 입장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임병은 지존의 하늘이요, 후임병은 비하의 땅이요라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는 것을 입장적 행동에 대한 오류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적인 무의식 속의 괴리가 숨어져 있기 때문에 선후임병은 같은 존귀한 인간임에도 일방적으로 먹고 먹히는 그런 양육강식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후임병일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내가 신교대 때 적어냈던 미래 설계가 생각난다. 그때 난 선임병이 되면 후임병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며 서로의 공통점을 찾으며 위로하면서 그렇게 살겠다고 했었다. 정령 그때의 내 생각은 그랬다. 자대에 와서도 내 생각은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여기선 모든 게 개념이라는 것으로 일축되어진다. ‘개념다른 말로 하면 통제이다. 후임병이 하면 무개념이라 욕을 먹을 행동도 선임병이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린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군가 개념이란,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라고 전혀 그럴 듯한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건 전혀 수긍할 수 없는 정의이리라. 개념이란 단어로 얽매어져 버린 우리들.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편함을 찾고 나름대로의 안위를 찾겠지만 여전히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과는 요원한 삶의 모습이요, 계급이란 것에 억눌린 삶의 양태이기에 힘듦과 추리함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무언가 뚜렷하지도 명확하지도 않은 그것을 향해 참고 인내해나가는 시기가 후임병 시기이다.

 

이제부턴 이런 원론적인 어투를 그만두고 실질적인 얘기를 해보도록 할까. 후임병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뭐니 뭐니 해도 개념 없냐’ ‘미쳤냐라는 말이었다. 그저 나는 그렇게 행동한 것뿐인데, 자기들의 인식 내의 행동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사람을 한없이 바보, 이기주의자로 만들어버린 말들이다. 난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만 받아들인다는 게 짜증났다. 그렇기에 난 그런 걸 인정치 않고 그러했던 개연성들을 일일이 설명하려 하면, 선임들은 말 많네.”라는 말로 일축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고참들과 말이란 걸 하기 싫어지는 건 당연하다 못해 당연한 일이리라. 그렇게 또한 잘못을 해서 지적을 받게 되면, 지레 말 길어질 것이 짜증나서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먼저 하므로 너무 쉽고도 간편한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벽들을 쌓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자잘한 잘못들과 흔한 사죄로의 끝맺음은 진실한 인간관계가 진행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의 치부의 말들을 자기들의 좀 더 편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후임병들의 갈구고 억압하기에 전혀 좋아보일리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언어적 횡포 속에서 속 많이 상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나왔다.

 

그렇게 지나다 보니 지금은 많이 풀어주는 것 때문에 그러한 억압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게 지금 내가 전면적으로 잘해서 그러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예전보다 더욱 개념 없는 행동들을 지금 훨씬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예전에 비해 갈굼이 없는 것은 계급이 조금이라도 상승했음을 선임들이 인정해주는 것이며, 내 윗 선임들이 그만큼 적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씩 편해지는 맛이 군 생활한단 얘기가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난 그래서 지금 역시 이런 건 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가끔씩은 진실함이 오고 갈 수 있는 대화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며 누구처럼 별 시덥지 않은 것들로 갈구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가 정말 어려운 과제인데, 그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 게 선임병이 될 나의 과제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아주 순차적인 단계로 몇몇 아이들과 맘 편히 얘기하려고 많이 하긴 하는데 아직은 미흡한 단계라 아직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할 거란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이곳은 군대이기에 순임병이란 예우란 것을 해줘야 하면서 진실을 통하기 위해선 친구와 같은 친근감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상반된 두 가지를 만족시킬 무언가를 찾아야 하기에 힘이 매우 드는 것이다.

 

어떻게 친구처럼 편해지면서 선임병으로써의 예우를 해줄 수 있겠는가! 그 적당한 선을 찾는다는 건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고 머릿속 꽤나 복잡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시간을 투자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갖추어야 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해야 하는 것과 나의 선임으로서 예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을 어느 정도 현실화 시키는 게 중요할 것이다.

 

전화가 온다. 전역한 고참들에게 간혹 그렇게 전화가 온다. 그들은 간혹 이 지옥 같은 곳이 그립긴 한가 보다. 그러고 보면 사회가 이곳보다 더 지옥일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납득은 된다. 그렇게 이곳과 이곳의 사람들을 그리며 전화를 하는데, 전화가 올 때 너무나 기뻐하고 반가워하며 받는 사람이 있는데 반해, 오고 나선 전혀 신경을 안 쓰며 오히려 전화 받기를 꺼려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이 소대 안에서 얼마나 인간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는지를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최고참이 되고 전역할 때쯤 되어서, 그 사람이 떠날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나가지 않게 되길 바랐던 사람이 몇 되지 않는 거 같다. 거의 태반은 빨리 나가길 바랐으며 빨리 사라지길 바랐으니까. 그 사람이 나가므로 나의 서열이 상승한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있었지만, 그 사람이 우리 소대나 나에게 있어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팽배했으니까. ‘짬으로 민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짬 안 되는 사람들은 피해를 입으며 산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짬대우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군 생활을 해나가면서 나름대로 고생도 했을 거고 우리보다도 더 심했을 그런 부당한 행위를 많이 당했을 테니까. 그만한 입장이 되어선 좀 편해져야 오히려 당연할 테니깐. 그렇지만 그 누구의 말대로 짬으로 밀 게 있고 그렇지 않을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의 열외, 통제의 열외 등과 같이 후임들에게 그다지 피해가 오지 않는 것들이 바로 밀어도 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근무 대기 시간의 고참 이익적 변경, 청소 중임에도 일어나지 않고 느그적 거리며 있기 등과 같이 후임병들에게 방해적 요소만 남겨주는 것들은 밀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바로 후자와 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질 때, 그 선임이 평소 엄청 좋은 사람이라 할 지라도 신임도의 추락과 함께 불평이 증폭될 것이며 그에 따라 결국 빨리 전역하기만을 바라게 되는 불필요적 존재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전역하고 나서 소대로 전화를 하게 된다고 해도 그 누구도 반갑게 받아주는 사람이 없게 될 테지. 사실 그 얼마나 비극인가? 자긴 그리운 사람들과 그리운 곳에 대한 향수로 전화했을 텐데, 그 향수를 느끼게 해줄 만한 그 사람이 부재라는 현실 말이다. 그 어려운 말들을 집어치우고라도 군대 또한 사교의 장이라 불려지지 않던가? 팔도 사나이들이 자기의 순익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여서 여러 악재를 동고동락해가면서 진정한 인간애, 전우애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이기에 이 곳만큼 진정한 인간관계를 이어갈 만한 곳도 없으며 이곳만큼 마음과 마음이 연결지어지는 곳도 없다. 그럼에도 후자와 같은 그런 모습으로 후임들을 대하게 되면 이곳에서조차 외면 당하게 되니 어지 이 아니 비극인가! 그렇기에 난 감히 나에게 충고를 한다. ‘다른 걸로 빠지는 건 그렇다 쳐도. 어쨌든 너도 인간이기에 누구 못지 않게 니 편함만을 찾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밀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을 잘 파악해서 행동하고 실천해라. 그게 결국 올바른 군 생활의 첫 목표니깐.’이라고 밀이다. 난 절대 내 후임이니까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고, 그에 따라 그런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 특히 여긴 GOP이다 보니깐 근무 교대 시간에 정확히 밀어줄 것이고 혹 진짜 말년이 되어 늦게 일어난다손 치더라도 아이들 청소하거나 방해가 안 되도록 조심조심 할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만 잘 통제하고 그렇게 나를 바꾸어 나간다면, 정말 뜻깊고도 알찬 군대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싫으나 좋으나 이곳에 와서 거쳐 가야만 하는 과정이기에 정말 나에게 유익한 시간으로만 보내야 하는 건 나의 지상과제이자 지금 이 시간, 이 시기에 충실한 게 아닐까! 좋은 추억들과 좋은 인간관계만을 형성하기 위해서 난 오늘도 열심히 충성심과 절제심을 하늘 높이 의기양양 드높이며 알찬 군 생활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선임으로 대우해주길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그런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자질을 키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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