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대장교육대 일주일 생활기
02년 8월 24일(토)~30(금) 무지 더움
어제 드디어 분반에 왔다. 분대장들의 그 강압적인 억압과 중대 생활 (태권도 단증이 목표가 되어 모든 통제가 이루어짐)의 빡셈 때문에, 그리고 모처럼만에 훈련병들의 생활을 엿보면서 훈련병시절을 추억하고도 싶어 그렇게 오고 싶어 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오자마자 얼차려 부여로 시작되었다. 군장을 메고서 선착순을 시키질 않나, 오리걸음을 시키질 않나. 특히 오리걸음을 할 때는 어찌나 힘든지 쓰러져 죽는 줄 알았다. 내 군 생활 얼차려 중 최악의 일차려였다. 그렇게 한번 호되게 당하고 났더니 대답 소리도 커졌고 행동도 즉각적이 되었다. 역시 우린 어쩔 수 없는 군인인가 보다.
여기 와서 신교대 아이들을 보았더니, 솔직히 불쌍한 맘만 들뿐이다. 그 길고 머나먼 2년여의 군 생활을 어떻게 해나갈까 하는 막막함에 한숨부터 나온다. 90도의 큰 걸음을 하고서 걸어 다니는 그네들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오고 나도 예전에 저랬지 하면서 그때의 그 암담함이 새삼 뇌리 속에서 상기되곤 한다. 그때 그 시절, 물론 지금이라고 모든 게 다 너그러이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 당시엔 더욱 닥쳐올 현실들에 회의적이었던 거 같다. 좀 짜증 나긴 하지만 이곳에서 신병교육을 받던 때에 비하면 무려 1년 6개월이나 훌쩍 지나 자대에서 생활하는 지금이 얼마나 평안한지를 느껴볼 수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포상휴가를 꼭 좋은 점수를 받아 따갈 것이다. Coming Soon!
28일(수) 벌써 이곳에서의 생활도 사흘째에 접어들었다. 이곳 생활은 빽빽하기 그지 없지만 그래도 자대의 그런 불규칙적인 생활에 비해 짜임새 있기에 훨씬 재미있다. 그렇지만 여긴 신교대이기 때문에 예전에 보아왔던 그곳을 다시 한번 보면서, 지금 여기서 신병 훈련을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예전에 했던 암울한 생각들이 새삼 머릿속을 두서없이 방망이질하곤 한다. 그래서 좀 많이 혼란스럽지만, 어쨌든 다행히도 시간이 흘려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갑작스레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병교육을 받던 당시엔 정말 이곳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 싫었었는데, 이렇게 추운데도 밖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맘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렇게 싫었다. 자대에 가서 고참들의 갈굼에 기가 꺾이면서 나의 짜증은 더욱 커져갔지만, 그럼에도 꼭 이겨내야 한다는 신앙심과 내 주위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기만 하다. 좀만 버티자!
드디어 분교 생활도 일주일이 지났다. 빡세다던 사단장님 정신 교육, 대대장님 정신 교육이 끝났으니 이번 일주차는 성공인 셈이다. 하지만 오늘 목표가 생겼다. 저번만 해도 그저 일등을 해서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보답해야겠거니 하는 막연한 목표만을 가지고 있어서 열심히 노력할 만한 기반이 조성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작업 도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뚜렷한 목표가 정해지더라. 만약 내가 포상 휴가증을 딴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니 말이다. 어차피 난 포상을 따봐야 휴가를 못 간다. 이미 정기휴가를 올려놓았기 때문에 그럴 바에야 집 안 문제로 힘들어해서 다음 달쯤에 청원 휴가를 갈 허성태에게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로써 나의 목표는 명확화되었다. 나만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을 위해서 난 기필코 필승을 이루어내야 한다. 파이팅!
분대장교육대에서 맞이한 태풍 루사
02년 8월 31일(토)~9월 1일(일) 태풍의 간접 영향권
‘루사’라는 15호 대풍이 한반도 전역을 휩쓸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비가 서서히 내리며 바람이 마구 불어대기 시작했다. 그냥 조금씩 올 거라 생각해서 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오후가 되어서 뉴스를 보게 되니 이미 전역이 태풍의 피해권에 있으며, 앞으로 많은 피해가 있을 거란다. 많이 온 곳은 이미 350mm의 강우량을 넘어선 데도 있었다.
저녁이 되니 이곳도 태풍의 간접 영향권에 들어서인지 엄청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산들이 엄청나게 요동을 치고 있다. 벼들이 흔들흔들 거리듯 나무들이 그렇게 흔들흔들 거리듯 분다. 바람이 상상을 뛰어넘어 불고 있다. 과연 오늘 밤 엄청난 짜증의 역사는 이뤄질 것인가? 우선 난 GOP에 없다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애쓰고 있는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나 보내 보자.
9월 1일(일)이 밝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만 믿었었는데, 비가 오기는커녕 날씨가 풀려서 바람만 불고 있었다. 이런 날씨는 오후까지 계속되어 오후엔 해까지 떴다. 일기 예보를 들어보니 이미 태풍이 지나갔단다. 다른 지방에는 피해가 많다던데 다행히도 여긴 별 피해가 없어 다행이지만 과연 전주에 얼마나 많은 비가 왔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너무 별거 없이 끝났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 배부른 소리려니.

교수법 실기를 죽 쓰다
02년 9월 2일(월) 맑음
요즘 들어 이렇게 기분이 최악인 상황은 처음이다. 오늘 운명과도 같은 공포를 느끼며 ‘교수법’ 실기를 보게 되었다. 난 장차 선생님이 될 꿈을 가지고 있기에 이번 과목은 내 미래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난 어제부터 만전을 다해서 준비를 했다. 그렇게 실전을 기다리는 시간은 흡사 수능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았기 때문에 짜증이 밀려왔다. 그 시간에도 우린 목소리 높여 가며 연습을 했던 것이다.
오전엔 기다리다 못 보고 오후에 보게 되었는데 먼저 들어간 병환이가 나올 때 물어보니, ‘졸고 있어’라고 하는 거였다. 내가 들어갔을 때에도 조교는 졸고 있었다. 그래서 난 맘 편히 내가 연습한 그대로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고 나서 흡족한 표정으로 교관을 바라보았는데, 살며시 잠에서 해방된 교관은 “넌 백퍼센트 다시 봐라”라고 절망적으로 말했다. 그제야 그 교관에 대한 실망과 함께 나에 대한 상심이 얼룩진 채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정말 미치도록 짜증이 났다. 그래서 실습계획표도 대충 작성하게 되었고 자포자기(自暴自棄)했던 것이다.
잠을 청하고 있을 때, 또다시 교관이 재시험을 보라며 나를 찾았다. 난 잠을 물리치며 가서 재시험을 봤는데 거기서 문제점이 표출되었다. 교관이 잠결에 들어서 내 강의를 과소평가한 게 아니라, 내 톤이 책을 읽고 있는 투이며 계속 같은 톤이다 보니 듣고 있으면 지루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강약과 강조를 하려 노력해봤지만, 잘 되지 않아, 축 처진 어깨로 나와야 했던 거다. 나의 현실이었고 뿌린 만큼 거둔 참담한 결과였다. 교사가 되기엔 자질이 없는 것인가? 두고 볼 일이며 열심히 고쳐야 할 문제이다.
여기서 초등학교 때 친구인 ‘김민수’란 아일 만났다. 여기 중대 교육계였는데 저번 주에 왜 못 봤을까를 생각하며 그렇게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때 엄청 친하지 않았지만 이 외진 곳에서 만나게 되니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반가웠다. 그렇게 만나 군 생활의 힘듦에 대해 서로 얘기하여 서먹함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되어 너무 반갑고 군 생활은 어느 곳에서 하든 힘든 거니까 열심히 해서 얼른 전역해보자.
독도법 교육과 싸늘한 날씨
02년 9월 5일(목) 서늘함
평이한 날이다. 오늘은 독도법(讀圖法) 실습이 있던 날이다.
하지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하늘은 아침부터 매우 흐렸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오후엔 실습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산에 올라 보물 찾기하듯 찾고 있는데 온몸을 타고 쌀쌀함이 감도는 것이다. 그렇게 네 개를 다 찾고 부대에 복귀해서 샤위를 했는데, 그때 다른 때와는 다르게 으슬으슬 몸이 떨려오는 것이다. 샤워를 마치고 평가가 있다기에 밖에 잠시 나왔더니, 글쎄 부는 바람도 장난이 아니라서 그 추위는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9월로 달이 바뀐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 모양이 걸 보면, 여름에서 가을로의 계절 변화는 이렇게 뚜렷한 변화를 안겨주나 보다.
‘앞으로 이렇듯 온 몸을 움츠리고 살 겨울 밖에 안 남았구나’하는 생각에 정말 암담하게도, 또 다른 의미에선 ‘두 번째로 보내는 겨울이다’하는 생각에 정말 축복인 양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잖아 이번 겨울을 보내야만 내년 봄이 오고 덩달아 집에 가는 날이 오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입 꽉 물고 참아야겠다. 오늘 모처럼만에 여름 내내 접어 올렸던 군복 상의의 팔뚝을 내렸다. 이제 머지않아 야상을 입을 시기가 오겠구나ㅠㅠ
감기와 전화
02년 9월 7일(토) 서늘함
‘인생의 뒤안길에 서서’ 인생의 어둑어둑한 뒷골목에서 눈물 흘려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낭만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내가 이렇게 비극적인 현실에 동조해야만 하는 까닭은, 오늘의 내 뒷모습에 아련히 어린 외로움의 그림자가 쉽게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분명 어머니에게 사랑이 흠뻑 느껴지는 얘기를 들었지만 난 다른 데서 나의 존재감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바로 괜찮다 싶을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던 것인데, 정숙이, 은영인 여지없이 받지 않았다. 얼마나 초라하고 내 자신이 무기력해 보이던지, 한없이 작게 느껴지던지. 지금 내 몸 상태는 재정상이 아니다. 감기약을 먹은 이후, 열이 부쩍 많이 나고 코와 입에서 가래가 들끓어 호흡하는데 대단한 지장을 초래하는 건 그렇다쳐도 그것으로 정신까지 헤롱헤롱거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소선인 요즘 부쩍 아이들 한마디, 한마디에 열이 받는 것이다. 이렇게 신경이 피폐하듯 날카로워졌기에, 그렇게 초라한 나였기에 누구에겐가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그러질 못하네. 결과가 그토록 비극적이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때 나의 손은 또다시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차갑도록 차가운 아이 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진이에게 전화한 것이다. 그 아이는 다행히도 전화를 받아주었다. 그나마 숨구멍을 트여주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냉랭하게 들렸다. 매번 전화를 할 때마다 그랬으니까. 으레 그러려니라고 생각하련도 하건만 오늘은 부쩍 화가 났다. 그래서 “차차 고쳐야지!”라고 긍정적으로 말한 그녀에게 “그럴 필요 없어.”라고 말하며 그냥 전화를 끊었다. 원래 그 아이 성격이 그렇게 차가운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날 싫어하기 때문에 나한테만 그렇게 차가운 건지 그걸 정말 모르겠다. 아직까지 너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내가 바보다. 그렇지만 전화를 받아줘서 고맙고 괜히 신경질만 부린 거 같아 미안한 맘뿐이다. 인생의 뒤안길에 서서 난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하지 못하고 그냥 이것저것으로 나를 얽매이게 해서 혼자만 괴롭게 하는 자승자박만을 했을 뿐이다. 이제 날 회복하는 일만, 건강을 되찾을 일만 남았다.
9월 14일(토) 차방문을 준비하며 교회 앞에서
분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다
02년 9월 10일(화) 따스함
분반에 오면 소대의 빡센 일정 한 두개 정도는 열외되도록 있는 게 기정 사실이다. 3주간의 교육 일정이다 보니 그 기간 중에 훈련이든 뭐든 끼어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박상호 병장 때는 그 힘겹던 전투지휘검열 준비기간을 다 하지 않았으며 은석이 때는 대대ATT와 그 준비기간을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또한 그런 희망에 부풀어 있게 되었다. 원랜 우리 분반 기간동안 유격이 있었고 중대 ATT도 있었으니까 그걸 알게 됐을 때 엄청 좋아하기도 했다. 근데 그 모든 게 다 수포로 돌아갔다. 유격이 한 주 뒤로 밀리므로 우리가 분반에서 복귀하면 바로 뛰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더더욱이 어제 최악의 소식을 들었는데 일요일부터 유격을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정비할 겨를도 없이 하루를 자고 바로 유격장으로 가는 강행군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죽여라 죽여ㅠㅠ
그리고 괜히 짜증 나는 일은 중대ATT를 뛰지 않았다고 한다. 괜히 그것 때문에 9월 5일의 휴가가 잘린 아이들이 불쌍하고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열외하지 못한 3중대 분반 동기들이 불쌍할 뿐이다. 우린 이렇게 예외없이 유격을 뛰게 되므로 밑지는 장사처럼만 느껴지니 짜증이 난 거다.
이런 상황이니 딴 대대 아이들은 벌써부터 우리들에게 유격이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기에 분주하다. 이럴 바에야 차리라 유격을 분반으로 인해 하지 않게 될 거란 기대를 갖게나 하지 말지. 그랬다면 예전의 생각대로 유격도 군에 온 이상 한 번 정도는 뛰어볼 만하겠거니 할 텐데 말이다. 지금 우리 대대 아이들은 아폴로 눈병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그 병을 우린 ‘신이 내린 축복’이라 부를 정도로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유격을 가기 바로 전날에 눈을 비벼서라도 눈병에 걸려야겠다는 게, 그래서 유격에서 열외된다는 게 우리들의 계획이었다. 과연 몇 명이나 그 혜택(?)을 보게 될까? 난 유격을 잘 마치고 상병휴가를 제대로 갔다올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살려줘!
분반에서 느낀 나의 한계
02년 9월 12일(목) 비옴
드디어 분반 끝을 향해 다가간다. 오늘은 짜증 나서 죽을 뻔했다. 오전은 특별한 일정이 없이 정비시간이기에 삭발할 시간과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을 준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시험을 보질 않나 퇴소식 예행 연습을 하지 않나. 정말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뭘 시켰으면 그걸 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다. 분반에 와서 오랜만에 머리를 써가며 공부를 했더니 사회에 있을 때의 느낌이 들었다. 여기 올 때, 그리고 일주차 때 일등을 해야겠다고 목표를 세우긴 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선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대학교에 갔을 때도 이와 비슷했다. 1등을 목표로 갔지만 1등은커녕 3~4등에 그칠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땐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여기에 와서 있으니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 거 같다. 최초의 열정 하나만은 대단하긴 하지만 그게 오랜 시간을 가지 못한다. 그리고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뭔가 확실하게 진행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생 시절엔 눈치만 보며 살았다. 그래서 발표하고 싶은 거랄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도 선뜻 나서서 얘기하질 못했다. ‘과연 아이들이 이 얘길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공부벌레,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는 놈으로만 봐서 멀리하지 않을까?’ 뭐 씨잘 데기 없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난 그런 게 두려워서 늘 뒷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렇게 흐지부지가 된 거겠지.
규경이가 “나 같았으면 일등이 목표라면 어금니 꽉 깨물고 2소대 아이들처럼 할 거야?”라고 충고를 하더라. 난 그게 안 된다. 내 목표를 향한 나의 뚜렷한 주관이 없는 것만 같다. ‘남에겐 타협하되 자신에게 타협하지 마라’라고 하던데 솔직히 나 자신에게 너무나 잘 타협한다. 이번 일만해도 나의 의욕과 열정은 있었는데, 주위의 환경에 쉽게 타협해버린 나 자신 덕에 결국 죽도 밥도 아닌 게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핑계를 대자면, 2소대 41번, 44번처럼 너무 나서므로 주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그런 존재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 난 나서지도 않을 것이고 단지 필기시험만을 열심히 봐야겠거니 하는 정도겠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기엔 열심히 하려는 나의 의지가 과연 있긴 한 걸까?’하는 의문도 들고 그렇다 해서 또한 필기 시험에 최선을 다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결국 난 여기서 재밌게 놀다 나간 이들보다도 못한 존재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에게 제시해 주고자 하는 것은 ‘너의 열정을 모두 다 인정하도록 모두에게 펼쳐 보이고 그에 따라 정말 최선을 다하는 너의 자세를 보여라.’ 아마도 이걸 원하고 있는 거겠지.
두 번째 문제는 현실에 대한 과분한 만족이랄지, 지금 나온 결과에 대한 질책은 없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다. 고등학교 시절 보통 전체 120등 정도는 했다. 그러면 좀 더 높은 점수를 추구하며 열심히 할 만도 할 텐데 그게 아니라 난 그러한 성적이 나온 것에 대해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잘 해야지라는 생각은커녕 다음엔 이런 성적이 안 나오면 어쩌지 하는 비관적인 생각만을 하였다. 말하긴 뭐하지만 솔직히 이게 내 현실이다. 진규는 “넌 내가 보기에 꽤 괜찮은 놈인데, 왜 늘 자기가 못 났다고만 생각하나?”라고 늘 말한다. 솔직히 난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도 없고 남 앞에 떳떳하게 다가설 자신이 없다. 그래서 늘 주눅 들기 일쑤였고 무슨 일을 하던 남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했던 걸 거다. 이러한 소심증은 고스란히 공부에서도 나타나 못 오를 나무 정도의 상위 점수를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적이 늘 그 자리였던 것이다.
이런 식의 현실에 대한 과도한 만족 및 불안은 날 성장시키긴 커녕 오히려 퇴행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에 이젠 미래에 대한 확신과 그에 따른 책임으로 날 성장시켜 나가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남을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고 난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필요하겠다. 나에게 기대를 가지고 이곳에 보내준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맘도 들지만, 난 몸살 감기로 시름시름 앓아가는 가운데서도 열외 의식도 별로 없이 여기까지 왔으니깐 그것만으로 기대에 충족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정말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낯설지만 설레는 자대의 분위기
02년 9월 15일(일) 구름 낌
분반 퇴소식을 어제 마치고 자대에 왔다. 8월 24일(토)부터 시작된 분대장 교육은 3주간의 시간을 빼곡하게 채우고 9월 14일(토)에 끝난 것이다. 올 때 황당하게도 K-2 가스마개가 없어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잘 찾았고 전투화도 어떻게든 잘 처리되어 지금은 걱정이 별로 없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자대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고 정말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풀린 군번에 상병 말호봉이 되고 보니 밑의 아이들이 많아져 엄청 편하기도 하고, 교회에 가선 오래도록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 해도 3주란 시간은 역시 짧은 시간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하려니깐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를 정도로 감을 잃어버렸다. 청소할 때도 그렇고 자리를 펼 때도 그렇다. 다시 신병의 그 어리버리함이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지만 싫지만은 않다. 다시 옛적을 회고할 수 있을 뿐이니깐. 빨리 유격도 끝나고 자대로 적응하고 상병휴가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9월 15일(일) 분반이 끝난 주말이자, 유격을 떠나기 하루 전날에, 종교활동 마치고 3중대원들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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