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의 시비
02년 10월 14일(월) 전형적인 가을날씨인데 좀 추움
오늘부터 동계 작전 준비에 들어간다. 그래서 지뢰인 막걸리통, 철항공 그런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 일과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운 좋게도 사리비 작업을 가게 되었다.
오후에도 열심히 싸라비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부소대장님이 3분인 홍원기와 HQ분인 김영주가 직업을 하는 황목 작업에 나를 넣은 것이다. 솔직님 걔네들하고 같이 작업하는 게 부담되었고 오전에 했던 싸리비 직업이 오히려 좋았던 터였기에 싫기만 했다. 하지만 부papa가 능력을 인정해 준 것이기에 하려던 찰나 3분이 “개종환. 너 되게 빠꼼하잖아. 그리고 작업도 못하고, 그니깐 싸리비 작업해”하고 나의 입장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거두절미했으며, 거기에 더 떠 HQ분인 김영주는 “늘 띵까는 새끼 3p 주은석, 2p 이종환”이라며 편드는 누이역을 아주 충실히 담당했다. 화딱지가 나서 죽는 줄 알았다. 개새끼를 너희는 직업을 잘해서 좋겠다. 그러면 작업병(作業兵)이나 하지 그러나~ 메롱이다! 그 한마디에 모든 의욕은 꺾였고 사람들과 격의 없이 친해지지 못하는 내 자신이 서러웠다.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시영아!
그런데 직업을 하는 도중 눈을 가지에 심하게 찔리는 사건이 있었다. 조금만 빗나갔으면 실명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였겠지. 난 하찮은 불만들은 하나님께 일일이 열거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늘 그렇게 보여주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 어리석은 이 죄인 용서하소서. 그렇지만 3분(병장 홍원기), HQ분(병장 김영주) 너네들은 내가 두고 두고 미워할껴. 잊지 않으리~
동계작전과 연대군종집체교육
02년 10월 20일(일) 하늘이 딥따 흐리다 비라도 내릴듯이
14~19일까지 통계작전 준비기간이여서 빡신 하루하루를 보냈다. 싸리나무를 꺾느라 산을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고 분대작업으로 철항공 작업이 지시된 바람에 하루 나절 하우스 안에서 스티로폼과 씨름해야 했다. 나머지 분대 사람들은 지뢰를 만드느라 겨와 막걸리 통과 씨름해야 했다.
그리고 엊그제부턴 실제 33M 자리에 200X200의 지뢰지대를 설치해야 했다. 난 재수 좋게 일직 근무 후 취침하는 바람에 지뢰 설치엔 빠질 수 있었고 어젠 군중집체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빠졌다. 진지 공사 후에 바로 하게 된 동계 작전 준비는 진지 공사만큼 짜증나고 힘들었다. 다들 수고했다.
어젠 처음으로 2R 군종집체교육이 있었다. 아침에 휴가자 차량을 타고 교회에 도착해서 몸풀기 축구, 교회 청소, 예배 등을 한 후에 오후 식사 시간에 삼겹살 파티, 19R 목사님 강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2 등을 감상한 다음에 군중집체교육은 끝났다. 그리고 3BN 포차를 타고 와서 오랜만에 회식다운 회식을 했다. 술이 다들 적당히 취해서 재밌었고 재현이랑도 이 얘기, 저 얘기 많이 해서 참 좋았다. 즐거운 토요일이며 안녕!
성큼 다가온 철원의 겨울
02년 10월 22일(화) 올해 처음으로 영하로 떨어짐
드디어 찾아오는가 철원의 겨울이여! 그 매섭고 날카로운 칼바람의 전운을 온몸 가득 맞서며 이겨내야 하는 겨울이 어느덧 성큼 다가왔다.
점오를 받으러 나갔을 때 쌩하니 불어오는 바람은 지금까지 느껴오는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들었다. 이번이 철원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겨울이란 사실이 좀 행복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왠지 걱정스럽고 암담한 것도 사실이다.
여긴 왜 가을이 오는가 했더니, 그걸 인지하는 순간에 바로 겨울이 시작되는 거다. 나 따뜻한 남쪽으로 돌아갈래!
10월 10일 1중대 대항군 출발 전
태권도 단증 따기 광풍이 불다
02년 10월 24일(목) 여전한 영하권 날씨에 엄청 춥다
나중이 되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의 사건이겠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 그 어떤 훈련보다도 더 긴박감을 주고 짜증을 유발케 하는 사건이 요즘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로 태권도가 바로 그것인데, 이번에 적은 사람이 단증을 딴다면 바로 경고장을 먹일 것이고 그건 우리 소대 안에 태풍이 불게 될 것이란 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돌아보며, 긴장하고 있는 것이며 태권도, 태권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나도 이번 단증에 참여했으나 여지없이 대대 심사관한테 떨어지고 말았다. 별로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정말 맘만 먹고 한다면 될 것도 같은데 왜 이리 맘처럼 안 될까. 과연 사단 심사를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번 태권도 결과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기에 하루하루가 정말 옥죄는 것 같아 짜증스럽기만하다. 광풍이여 제발 우리만 비켜가다오! 제발!
태권도에 살고 태권도에 죽고
10월 25일(금)
요새 태권도 절정의 시간이다. 유단자가 적은 소대는 경고까지 먹는다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소대장들의 신경전이 하늘을 찌른다. 오늘은 사단 심사가 있었다. 난 이미 대대심사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쉽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도 중대장이 떨어진 인원들도 다 나와서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노발대발한 덕에 나도 아침부터 나가 연습을 하게 되었다. 활동화까지 벗고 맹연습을 펼쳤는데, 아직도 실력이 미흡한 터라 앞차기, 옆차기, 뒷차기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했다.
오후엔 김진민 중사(5소대 소대장, 신교)가 와서 승급 심사를 보게 되었는데 대대 심사에서 떨어진 우리는 옆에서 정심사원들이 심사를 마칠 때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몸을 떨어가며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우린, 그 무모한 도전은 참혹한 끝을 맺었다ㅠㅠ.
비참하고 비통했다. 하지만 소대장이 속을 뻗어 우리 소대는 9명 중 8명이 합격하는 쾌거를 이룩하였고 그나마 기분 좋게 오늘은 마쳤다. 감사! 감사! 꼭 군단 심사에 다 붙었으면 좋겠다. 태권도야!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좋은 선임이 된다는 거
02년 10월 25일(금) 서늘하지만 맑음
사병 최고의 계급인 병장을 단 지도 어느덧 25일이 지났다. 이제 6일 후면 물병장을 떼고 진짜 병장으로 거듭난다. 오늘 새벽 2시 30분 근무였는데, 글쎄 포반장에게 근무자 신고할 때 “상병 이종환 외 2명 근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 물병장이라 나도 아직은 내 계급에 적용이 덜 된 모양이다.
선임의 위치에 놓이게 된 지는 벌써 6개월 정도가 흘렀다. 중간 밑 선에서부터 중간을 달고, 그러다 중간 선임이 된 후, 중간을 놓고 지금에 이른 거다. 분대장을 잡기 전까진 말 그대로 말년이다. 선임이 되고 보니, 예전의 선임들과 다를 게 없다. 선임의 입장이 이해가 되어서라기보다 솔직히 조금이라도 군기를 잡기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내 동기들에게 미안하기에, 그리고 바로 윗선들에게 욕을 덜 먹기 위해서 나도 그렇게 한 것이다. 이때쯤 되니, 내가 예전에 썼던 ‘내가 바라는 선임병의 상’에서 열나게 얘기했던 선임병의 모습과 한참이나 거리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그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차이가 있는 걸까?
신교대에서 미래설계를 하면서 나중에 상병, 병장이 된다면, 아이들과 얘기를 많이 하므로 고민 상담사가 되겠노라고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그 땐, 그저 후임들에게 선심만 베풀어주며 힘든 군 생활을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게 선임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군이란 곳에서 생활을 해보니, 그 당시 내가 가졌던 생각이 얼마나 현실성을 무시한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알 거 같다. 군이란 곳엔 계급이 존재하다. 계급이 존재하기에 계급 사이의 억압과 통제는 불가피하다. 이등병이나 일병이 그 계급에 맞게 신속히 움직여줘야 하며, 상병ㆍ병장이 그 직책에 맞게 조치해주고 명령을 내려주고 주도해줘야지만 소대가 잘 돌아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때 그런 직책ㆍ계급에 따른 서로의 행동에 대해 몰랐으며 그렇게 되어야지만 군이 돌아간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랬으니 그런 앙꼬 없는 찐빵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었겠지^^
그래서 이제 현실적인 것을 알기에 현실성 있는 선임병으로서의 자세, 다시 피력(披瀝)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펜을 들었다. 선임병의 입장으로 몇 개월간 생활해보니, 선임병으로서 후임병에게 좋은 모습 보이는 게 쉽지 않더라. 실컷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다가 나중에 가서 좀 개념 없다는 이유로 갈구긴 좀 그렇잖은가. 그렇기에 여전히 난 화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화를 내면 너희들 모두를 괴롭게 할 만한 파워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모두에게 익히 알게 하므로 함부로 거들떠보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테면 카리스마가 그것이다. 어제 명규와 같이 근무를 서게 되는 통에 얘기를 조금 할 수 있었는데, 그 아인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단점을 얘기해주는데, ‘전체를 주목시킬 만한 카리스마가 부족’하단다. 소대는 고사하고 우리 분대에서조차 내가 “주목!”이라 외쳤을 때, 몇 명이나 주목할지 걱정이 될 정도로 나는 단체 리더쉽이 취약하단다.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자연서 그렇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다. 그래 우리 소대에서 “주목”이라 했을 때 거기에 즉시 반응하는 사람들은 알고 보니, 병장 김영주, 병장 김상님, 병장 홍원기 모두 한 성질하는 사람 뿐이다. 무섭기 때문에 그 쏘아붙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알아서 기어야 하는 것이고, 알아서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나름의 힘을 가진 대상이 되어 아이들을 이끌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며 지식적인 면에서도 조금이나마 우월해야 한다. 그렇지만 난 애초에 어떤 카라스마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좋은 모습 보이면서 존경심을 유도해볼 만도 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확 갈구기를 해서 공포심을 유도해볼 만도 한데, 그것도 흐지부지 하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오질지 못한 우유부단한 내 성격에 문제가 크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간단하다. 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일이며, 나의 이미지에 대단히 신경 쓴 나머지 이도저도 못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화낼 땐 화를 내며 뒤에선 다시 편히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더욱이 상남이처럼 정말 나의 맘 속에 있는 비밀 같은 거나 진솔한 얘기를 후임들과 다 터놓고 얘기하므로 난 너희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더욱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쉽게 말해 혼낼 땐, 눈물 쏙 빼야할 땐 그렇게 혼낼 수 있어야 하고 뒤에서 서로 속 깊은 얘기도 나눌 땐 맘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식의 끊고 맺음이 확실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그러한 내 모습을 갖출 수 있다면, 예전에 신교대에서 얘기했던 그런 선임병상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할 땐 하고, 말 땐 말자!’ 우유부단함은 더 이상 없다~ Good bye!
그리고 예전에 했던 말과 같이, 진짜 아이들에게 방해되는 그런 존재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이젠 내가 청소를 안 한다 해서, 침상 바닥에 누워있다고 해서 나에게 뭐라고 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청소시간에 청소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조금 피해주십시오”라는 얘기도 해보지도 않고 건너 뛰어 청소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또한 이부자리를 펼 때,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나를 피해서 자리를 깔려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예전에 난 어땠던가? 그렇게 우리의 활동에 방해되는 선임에 대해서는 속으로 욕을 한가득 퍼부으며, 후딱 집에 가란 식으로 불만을 퍼붓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 나를 대하는 후임들의 태도도 별반 다를 게 없겠지. 그들도 그런 식으로 나에게 망언을 퍼붓는다면, 처음에 세운 그들과 친해지려는 조건이 위배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려야 조심하지 않을 수 없고, 배격하지 않으려야 배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예전부터 선임이 되어선 바꿔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지금에 이르러 편하게 생활하다 보니 어기게 될 때가 정말 많다. 그래서 새삼 그때의 각오를 되새기는 것이고, 이젠 정말 바꾸고자 하는 맘가짐으로 다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청소할 땐 최소한 청소를 도울 줄 알아야겠고 방해가 되어서 정말 안 될 것이다.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지어다.
나의 사고 전환과 행동의 전환을 통해 선임으로서의, 곧 분대장을 잡을 나로서의 입지 굳히기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러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이러므로 좀 더 소대원과 어우러질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해볼 것이다. 기대하시라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03년 2월. 제대를 2개월 앞두고 점오를 코앞에 둔 시점에 1분대원들과 함께.
중대ATT의 시작일에
02년 10월 31일(목)
가을이 오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겨울이 오고야 말았다. 이 겨울의 날카로운 칼바람을 뚫고서 훈련을 하게 되었다. 겨울이 되면 훈련이라곤 혹한기 밖에 없다고 들었기에 별 걱정을 안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10월 31일(목)~11월 2일(토) 중대 ATT, 그리고 11월 4일부터 11월 7일까지 대대ATT가 계획되어 있지 않은가ㅠㅠ 정말 싫었다. 군장을 메고 이동할 땐 더울 것이고 가만히 있을 땐 추울 것인데, 그 온도차에 의한 짜증을 어떻게 감당할까? 뭐 이런 걱정이 맴돌았지.
오늘 새벽 6시에 기상하자마자 상황이 걸렸다. 잠이 덜 깬 우리는 정신 없이 군장을 꾸리고 준비태세를 했다. 6월 25일에 6ㆍ25 상기 준비태세를 가상과 함께 한 이후, 처음인 거 같다. 그렇게 정신이 없이 움직이다 보니, 언제 집에서 허우적댔었냐는 듯이 정신이 멀쩡했다.
화생방 상황도 잘 마치고 아침을 먹은 후, 부대 이동을 시작했다. 우리 소대는 중대를 대표해서 지뢰지대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소대만 단독으로 이동해야 했다. 근데 더욱 짜증 나는 일은 어제까지 연습했던 50x50의 지뢰지대가 아니라 100x100의 지뢰지대 설치로 바뀌는 바람에 대전차 격멸장까지 이동해야 있다. 100x100, 무려 두 배나 늘어난 거리였지만 실질적으로 4배 늘어난 것이어서 몇 십대의 지뢰를 설치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지뢰를 배치하고 설치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서 짜증이 좀 났지만, 아무래도 50x50보다 넓은 지역이기에 짱박하기도 쉬웠고 재밌게 쉬엄쉬엄 지뢰를 설치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 100x100으로 조정된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역시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는 게 맞다. 좋은 상황 같아도 그 안엔 안 좋은 요소도 들어 있고 안 좋은 상황 같아도 그 안엔 좋은 요소가 들어 있다. 근데 중대장은 완료를 바라고 있었기에 하루종일 지뢰 지대 설치에 매달렸고 그렇게 4시 정도 되어 끝났다.
대위리까지 걸어갈 것을 걱정하던 하고 있었는데 60을 타고 간다는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 왔다. 다행이다 못해 행복이었다. 행군이 훈련의 백미인데, 이게 빠지면 앙꼬 빠진 찐빵인 셈이니 말이다. 대대로 복귀해서 2분대와 3분대와 HQ분대를 먼저 한 차로 보내고 우리 분대는 후방통제소에 투입하기에 중대장과 함께 다음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밥 추진 차여서 여기저기 들렀다 가느라 시간이 참으로 많이 걸렸다. 우리 중대원들이 맡고 있는 섹터가 그렇게 큰 줄은 꿈에서도 미처 몰랐다.
후방통제소에 투입하자마자 내복에 깔깔이까지 중무장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난 우주와 효근이랑 방벽에서 전방에서 오는 적만 보면 되었기에 여유로운 기분으로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끔씩 졸면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 추웠다. 중무장의 효과도 없는 것 같고 밀이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가 새벽 3시 정도 되어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대위리까지 이동해서 잠시나마 지연전을 펼치고 전 중대원이 일제히 관우고지로 이동했다.
10월 10일 1중대 전투모형훈련 대항군 수행 중에 박형국 분대장과
중대ATT 중 꼬바와의 일전
02년 11월 1일(금)~2일(토) 날씨 좋음
관우고지에 군장을 메고서 올라가려니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힘들 수가 있을까. 경사진 오르막을 군장을 메고서 오르려니, 장난 아니게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부분대장으로서 보여줘야 할 사명이 있었기에 어금니 꽉 깨물고 올라갔다.
거기서 바로 집결지 행동에 들어갔는데 아침을 먹구 텐트를 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직접 쳐본 텐트였는데 만족스럽게 완성되었다. 광화와 우주랑 한 텐트에서 자게 되었다. 씻지 않아서 끕끕한 데다가 발에서 된장 냄새가 구수히 올라옴에도 불구하고 너무 피곤하 나머지 잘 잤다.
오후에 일어나선 공격 예행 연습 등을 한 후에 다시 전투 휴식에 들어가게 되었다.
저녁밥을 먹는 시기에 HQ분과 1s분은 근무자 때문에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HQ분은 시비조로 우리 부대장에게 말을 했고 평소에 불만이 많던 나는 짜증스럽게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시비는 끝났고 갑자기 꼬바가 나를 보더니 “몇 시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쌩깠더니, 바로 “누구냐?”라고 묻는 것이지 않은가? 난 그 녀석에게 관등성명 따윈 대기 싫어서 “접니다.”하고 말을 한 거였는데, 그것 때문에 되게 열 받았던지, 나에게 오더니 “따라와”하는 거였다. 난 끝까지 가지 않고 개겼다. 그랬더니 화가 난 꼬바는 발차기로 나를 때리고 펀치를 날리는 게 아닌가. 잘 걸렸다 싶어 바로 “뭐, 이런 개 같은 새끼가 다 있어!”하고 욕을 했고 거기에 충격을 받은 꼬바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계급장 떼고 붙자고 했다. 그때 우리 분대장은 그걸 말리면서 나를 보고 “미쳤는 갑다”라고 말했다. 분대장인 박형국 병장과는 동기니깐 서로 싫더라도 서로를 위해줘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서운한 건 눈꼽만치도 없었다. 단지 그로 인해 꼬바가 좋은 말로 날 타이르려 했다는 것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난 무슨 말인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참고 참았던 게 가장 큰 거 같고, 둘째는 한 번 정도를 개겨서 일부로 못하게 하는 것도 세상 사는 지혜라는 것을 일깨워 준 명규의 말에 있지 않나 싶다. 솔직히 신경 안 쓴다고 했기에 여전히 냉전이고 나도 말을 걸기 싫지만, 얘들이 다 보는 데서 했던 이번 개김에 대해 난 한치의 후회도 없다. 산뜻한 기분이 든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저녁엔 10시까지 침낭을 덮고 얘기를 하다가 공격을 나갔다. 전투화를 갈아 신어서 폭폭 바지는 곳에서도 물이 들어가지 않으니 정말 좋더라. 공격하다가 2일 새벽 3시에 복귀해서 모처럼만에 소대 안 침상의 침낭 속에서 죽은 듯이 잤다. 그리고 시영이 편지가 와서 기분도 한결 좋아졌다. 겨울 훈련은 고통의 연속이다.
10월 교회 앞에서 1대대 군종들과
대대ATT 중 일어난 일
02년 11월 6일(수) 비가 내리는 스산한 겨울 날씨
대종(대대 종합전술훈련)이 오늘부터 시작이다. 6시 30분에 가상하자마자 일제히 상황이 발령되었고 우린 정신 없이 준비태세를 하였다.
그렇게 여느 때와 똑같이 소산지를 점령했지만, 이상하게도 부대 이동을 하지 않더라. 지뢰도 치지 않고 이동도 하지 않았기에 군장을 지키는 인원 2명 외에는 내무실에 앉아 대기해야 했다. 내가 지금까지 훈련이란 이름으로 받았던 어떤 훈련 중, 이번 훈련은 월 중의 월이었다. 부대 이동도 한 시가 되어서야 하게 되었으며 월요일과 화요일은 탄피회수작전 때문에, 수요일과 목요일은 방어만 하면 끝난다는 게 생각지도 못한 행복이었는데 거기다 실질적으로 CⅢ를 넘지도 않고, 바로 대위리에서 지연전을 잠시 펼치면서 부대에 복귀했을 뿐이니깐 그냥 거점 정찰이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편했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추운 겨울에 방벽에서 시린 새벽을 견디어내야 한다는 건 미칠 것 같은 고통이었다. 피곤하기에 잠을 청하기라도 하면 날카롭게 파고드는 추위는 현실을 비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있으면, 온몸이 시려왔기에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정말 엿 같게도 비가 간간이 내려서 잠 또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도대체 왜 이래야 하는지 모든 게 불만투성이었다.
오늘의 에피소드라면 추진매복조가 죽은 사건이다. 추진매복조(상병 엄재현, 일병 차승권, 이병 민명규)가 근무를 서다가 대항군에 걸리는 바람에 최초로 아군에 대항군이 사살 당한 것이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기에 황당스러웠지만, 그땐 더욱 그랬다. 새벽 4시 정도가 되도록 철수하란 소리도 없고 매복조도 철수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는데 불현듯 검은 그림자 셋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추진매복조였다. 평소처럼 철수하겠거니 했는데, 그들의 첫소리는 “좆됐습니다. 저희 죽었습니다”라는 말이었다. 그 상태에서 96k를 물려받은 우리들은 두 눈이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소대장이 하도 열받아하면서 씨발씨발 했기 때문이다. 꼭 한 대 팰 듯한 소리로 말이다. 다행히도 결국은 잘 끝나서 좋았지만, 생전 처음 겪는 황당함이었고 언제나 예외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엄쥐! 완전히 죽을 맛이었겠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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